취미 커뮤니티가 인기다. ‘소모임’, ‘웬디’, ‘프립’등의 앱에서는 취미 기반 커뮤니티 기능을 제공해오고 있다. 기자는 몇 년 전부터 한양도성 성곽길 투어가 하고 싶었었는데, 친구들과 시간이 맞지 않아서 미루다 보니 마음속의 버킷리스트로 남아 버리고 말았었다. 기자는 올해 한국조경신문에 덜컥 입사하고, 기획 취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래서 오랜 소망이었던 한양도성 성곽길 투어를 취재하기로 했다. 종로구청에 연락해서 정중하게 취재를 요청하니 감사하게도 홍성규 해설사와 단독으로 동행할 수 있게 배려해주셨다. 날씨는 따뜻하고 하늘은 맑았던 지난달 31일 금요일 오후 2시부터 두 시간 정도, 한양도성 성곽길을 걸으며 역사적인 배경지식들을 들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성곽길을 걷는 체험을 일상적으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양도성에서 바라본 혜화문
한양도성에서 바라본 혜화문

해설사와의 첫 만남은 혜화문에서였다. 사소문 중의 하나인 혜화문은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에 자리하고 있다. 종로구에는 많은 문화유적들이 몰려 있어서 종로구청에서는 이와 같은 문화재 탐방문화 프로그램들이 많다고 해설사가 말했다. 나만 몰랐을 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인 문화유적지들을 꾸준히 사랑해 왔구나 생각하니 행복했다. (한양도성 성곽길 스탬프투어 프로그램은 여러 가지 코스로 “종로에 다 있다” 홈페이지에서 날짜별, 시간대별로 신청할 수 있다) 산뜻한 마음으로 기분 좋게 성곽길 투어를 시작했다.

 

개나리가 흐드러진 한양도성 성곽길을 이루는 돌들
개나리가 흐드러진 한양도성 성곽길을 이루는 돌들

개나리가 흐드러지는 성곽벽의 돌들을 보며, 성곽길이 오랜 역사를 거쳐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돌들의 형태와 모양이 구간마다 달랐는데, 이에 대해서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가 왕조의 새로운 수도를 찾다가 결정한 곳이 바로 한양이었는데, 외부의 침입을 막고 왕조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한양도성을 건축하기로 한다. 아주 오래 걸리는 축성공사였으므로, 기술이 점점 발전함에 따라 성곽의 모양새도 점점 변화해왔다. 조선 전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돌들이 쌓여진 모습이 반듯해진다. ‘각자성석’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었다. 조선은 기록의 나라였고, 행정적으로 기록을 중요시했다. 전국 각지에서 축성공사를 위해 투입된 인력과 지방의 이름을 새겨 넣은 돌들을 ‘각자성석’이라고 한단다.

 

한양도성 성곽길 중 낙산순성길의 모습
한양도성 성곽길 중 낙산순성길의 모습
한양도성 안쪽의 서울시내 전경
한양도성 안쪽의 서울시내 전경

기자가 걸었던 길은 ‘낙산 순성길’이다. 한양도성길 안내문을 읽어보니, “낙산은 풍수지리상 서울의 동쪽을 지키는 좌청룡에 해당합니다.”라고 쓰여 있어 흥미로웠다. 성곽길 안쪽으로 들어서면서 해설사가 “여기서부터 옛 한양이라고 보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한양사람’이 된 기분에 기분이 묘하고 설렜다. 그 먼 옛사람들과 같은 땅을 밟고 오래된 공기를 호흡하는 기분이 들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장관이었다. 높은 빌딩들과 아기자기하고 작은 집들, 가톨릭 대학과 서울대학교 병원, 높다란 인왕산과 북악산이 함께 어울려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오랜 시간에 걸쳐 수많은 민초들의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있을 거라 생각하니 감동적이었다.

 

한양도성 성곽길과 현대서울의 공존
한양도성 성곽길과 현대서울의 공존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청년, 관광 중인 외국인들, 소풍을 나온 어르신들 등등의 사람들이 몇백년의 역사를 이어온 한양도성 성곽길을 따라 걸었고, 그 너머로 현대의 건물들이 성곽길과 공존하는 모습이 좋았다. 산의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쌓여 올려진 성곽길이 곱다는 느낌 마저 들었는데, 먼 옛날에는 적들과의 전쟁에서 총과 화살을 쏘기 위해 지어진 군비시설이라는 점이 생경했다. 조선의 문화유산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지금 내가 운이 좋은 현대인 때문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을 해설사님께 말씀드렸더니 지금의 평화는 정말 행운이라고 답해주셨다. 이런 평화가 조상들이 국가적인 수난에 맞서 싸워 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자, 다음 세대를 위해 좋은 나라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희미하게 들었다. 성곽길을 따라 아름다운 산수유나무, 목련나무, 벚꽃나무들이 늘어서 있었고, 참 한국다운 자연의 모습이라 보기에 좋았다.

 

한양도성박물관
한양도성박물관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니 우리가 걸었던 2코스가 끝나가고 있었다. 한양도성박물관에 도착해 팜플렛을 받고 박물관 투어를 시작했다. 박물관은 한양도성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다양한 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게 기획돼 있었다. 태조 이성계의 그림을 보자 뭔가 가슴이 뛰었다. 한 나라를 건국한 왕의 운명을 타고 태어난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양도성 성곽길이 다 지어지고 나서 그려진 옛지도를 보는데에도 뭉클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알았을까? 이렇게 먼 시대까지 나라가 이어져 후손들이 평화롭게 살면서 수난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는 걸. 박물관을 방문한다는 것은, 역사와 문화를 공부할 수 있어 유익한 일이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기와에 올라가는 조각들의 상징과 의미를 알고 사대문을 본다면 보는 재미가 다르다.

 

흥인지문
흥인지문

흥인지문을 보는 것으로 이날의 한양도성 성곽길 투어는 끝났다. 풍수지리적으로 사대문은 물, 불, 흙, 바람을 주관하도록 지어졌고, 역사적으로 큰 화재나 홍수가 있을 때마다 의례를 지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아름답고 위풍당당한 건축물들을 보면서, 따사로운 봄날을 걸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코로나19 이후로 사람들의 여가문화가 많이 달라져 가는 것을 느낀다. 기자는 영화를 무척 좋아했는데, 최근에는 미술관과 박물관 나들이를 무척 좋아한다. 아무래도 코로나시기 동안 움츠려 있어야 했던 시간들을 훌훌 털어내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적인 변화가 아닐까. 이처럼 역사적 문화유적지들을 가까이하는 여가문화가 대중화된다면, 일반 개인에게도 사회적으로도 좋은 현상이 될 것 같다.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보러 가는 일이 ‘특별한 일’이라기 보다, ‘보통의 일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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