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기 (사)한국조경협회 회장
노환기 (사)한국조경협회 회장

[Landscape Times] 존경하는 조경인 여러분. 

지난 한해는 유난히도 정치사회적으로도 조경계에서도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과거의 데자뷰처럼 조경분야에 대한 타 분야의 법제적인 우월성을 이용한 접근은 내부적으로 많은 상처를 우리 내부에 남겼지만 상대적으로 조경에 대한 존재감을 재확인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동안 평범한 법조문 하나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는 자괴감에 힘들어 했고 법제와 대외협상 무대에서 조경분야의 대응을 한탄하기도 했으며 건강한 분야로 살아 남기위한 선결조건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절실하게 느낀 일 년이었습니다. 그 와중에서도 낮은 가능성임에도 최선의 노력을 통해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고자 한 정책적 결정은 곧 시련과 고통의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서로 간 상처받는 고통의 나날임에도 긍정적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각자 역할에 충실한 것만이 최선의 전략으로 전환되는 과정도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렝이질 기법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조금은 생소한 단어 같지만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흙바닥 위에 세운 기둥은 상식적으로 깨지고, 썩고, 미끄러워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옛 시절 집을 지을 때 기둥 밑에 주춧돌을 받쳐 놓고 집을 짓는 방법인데

자연에서 얻는 다양한 돌들의 모양은 울퉁불퉁 제멋대로이기 마련입니다. 톱과 대패를 이용해서 만든 나무 기둥의 단면은 평평해집니다. 그러면 주춧돌 위에 기둥을 얹기 위해서 단단한 돌을 어렵게 평평하게 깎는 것보다 옛 장인들은 더 깎기 쉬운 나무 기둥의 단면을 울퉁불퉁한 주춧돌의 단면과 꼭 맞도록 깎아내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렇게 주춧돌의 표면과 나무 기둥이 꼭 맞도록, 기둥의 단면을 깎아내는 것을 ‘그렝이질’이라고 합니다. 그렝이질이 잘된 기둥은 못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쉽게 넘어지지 않고 단단하고 꼿꼿하게 서 있습니다. 그리고 지진이 났을 때 주춧돌이 매끈한 돌이라면 기둥이 밀려갈 수 있지만, 한옥의 경우 울퉁불퉁한 주춧돌 위에 서 있어서 쉽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울퉁불퉁한 면이 기둥을 안전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바람이 강한 제주의 돌담들이 밀리지 않는 이유는 다르게 생긴 돌들끼리 아귀를 맞추기 때문에 서로를 자연스레 잡아주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두 개의 것이 만날 때 하나의 모양이 거칠고 울퉁불퉁해도 다른 하나의 모양이 그 거친 모양에 맞추어 감싸 줄 수 있다면 그 둘의 만남은 세상 무엇보다 더 견고한 결합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올 해도 평탄하지는 않는 한 해가 되리라 봅니다. 줄어드는 인구와 사회가 가지는 불평등은 포용도시란 개념으로 생활SOC와 도시재생 등 기존에 조경분야가 접근한 방식과는 다르게 사회적 요구도로 다가올 것입니다. 최근에 뉴욕의 그린뉴딜정책이 보여주는 당면과제는 불평등과 기후변화로 요약되는데 핵심은 다양성, 포용성, 공정성을 기반으로 하여 강하고 공정한 도시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조경계에 시사하는 관점이 많은 정책이고 우리의 나아갈 방향이기도 합니다.

2020년 경자년은 한국조경협회 창립 40주년이기도 합니다. 지나간 40년보다 다가 올 40년을 기대하며 조경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분들, 특히 젊은 조경인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덜어드리는 단체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조경인 여러분 새 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는 일마다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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