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인간은 손바닥만한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카렐 차페크 1890~1938)

‘정원가의 열두 달’은 체코의 대표 작가로 알려진 카렐 차페크(Karel Čapek 1890-1938)가 쓴 정원 수필집(1929년)이다.

‘체코어의 마술사’라 불릴 만큼 유려한 문장으로 체코문학사에서 위대한 작가로 꼽히는 차페크는 나찌를 고발하고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현대를 비판하는 SF소설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오늘날 통용되는 ‘로봇’이라는 단어도 그의 소설에 기원한다. 그러나 차페크가 한때 정원을 가꾸는 열혈 가드너라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그의 주요 이력에서 간과됐다.

손수 정원을 일구며 정원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로 차페크의 또 다른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는 책 ‘정원가의 열두 달’은 국내에서 두 차례 번역돼 출간된 적 있지만 이후 절판돼 정원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재출간이 반갑기 그지없다.

작가는 일 년 열두 달 정원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을 작가 특유의 관찰자적 시선과 위트 넘치는 문체로 그렸다. 무엇보다 책장을 넘길수록 ‘정원 마니아’인 작가의 수집 욕심, 그리고 정원일에 대한 열정과 집착이 행간에서 읽힌다.

작가는 정원가가 단순히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며, 가드닝은 온 마음을 바쳐서 하는 “열정 그 자체”라 말한다. 구약에 등장하는 에덴동산에서도 부엽토를 외치며 한겨울 창에 핀 성에를 보며 식물학적 관점을 대입시키는 등 책에 수록된 많은 에피소드는 백년이 지난 지금도 정원일이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설명해준다. 때로는 시시때때 변하는 날씨에 몸이 분주하고 계절마다 할 일이 산더미 같지만 자연의 시간을 오롯이 정원에서 체감하고 일상과 연결시키는 정원일은 그 자체로 삶의 철학인 것이다.

또한 작가는 ‘정원일’이 가진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찬양한다. 19세기 아트앤크래프트 운동을 이끈 윌리엄 모리슨은 모멸감을 주는 노동으로 만들어진 물건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차페크도 노동 그 자체가 아닌 노동으로 일궈낸 산물에 자부할 수 있는 노동의 가치를 ‘즐거운 정원일’로 설득한다.

작가의 친형인 요제프 카렐의 생동감 넘치는 삽화(초판에 실린 원본 수록)도 책이 선사하는 커다란 재미다. “정원가는 온힘을 다하여 열망하는 존재다.”는 작가의 말처럼 잠들 때조차 씨뿌리기, 잔가지 다듬기, 삽질 등 수많은 정원일에 사로잡힌 잠든 정원가의 모습, 농장 안마당에 수북이 쌓아올린 수고로운 거름더미 작업 장면 등 글과 함께 수록된 삽화만 봐도 정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무한 상상할 수 있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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