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에서는 도시 발달이 광장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도시구조를 특징짓는 중요한 공간이 바로 광장이었다. 고대 그리스 광장인 아고라(Agora)는 사람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고 도시국가의 중심지로 종교, 정치, 법률, 시장, 사교 등의 장소가 되었다. 광장은 건축과 도시계획, 조경에서 빼놓고는 담론을 꺼낼 수 없는 도시 조성의 핵심적인 요소다.

중세에서의 광장은 교회와 대성당 앞이 중요한 광장 위치로 등장했고 르네상스 이후에는 기능이 교통, 기념, 시장, 전정 등으로 다양해졌고 오벨리스크나 기둥을 세워서 권위와 상징성을 나타냈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에 건물과 공장이 들어서면서 광장의 조성보다 공원 조성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세계의 광장 중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산 피에트로 광장(성 베드로 광장)은 그 규모나 역사적으로 매우 유명하다. 세계 가톨릭의 총본산이며 성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워진 산 피에트로 대성당 앞에 펼쳐진 이 광장은 30만 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고 교황청에서 주최하는 크고 작은 많은 행사가 열린다. 일반인들도 이곳에서 교황 얼굴을 볼 수 있는 곳이며, 매년 1월 1일에는 각국의 언어로 교황이 새해 인사를 하고 있어서 축복을 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세계의 모든 광장이 축복과 즐거움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복자에게 지배를 받을 때는 핍박의 광장이 되기도 하고, 단두대가 세워져 피의 보복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한 후에는 독립과 민족의 혼을 담아내는 장소로 변모하고 영웅을 칭송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광장은 정치적 암투와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곳이 많으며 때로는 권력과 독재의 상징으로 보여 지기도 한다.

서울 여의도에 5.16광장이 있었다. 일제시대에 여의도 비행장 활주로로 사용되던 장소가 확대되어 거대한 콘크리트 벌판으로 조성된 5.16광장은 군사퍼레이드 장소로 많이 활용되었다. 5.16 군사정변의 상징성을 딴 이름이라 오래가지 못하고 1999년 여의도공원으로 변경되어 공원으로 개장됐다. 광장과 공원은 호환이 자유로운 불가분의 관계인가 보다.

옛날 우리에게도 광장의 모습이 존재했다. 조선시대에 유생상소 자리가 현대적 의미로 보면 광장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중종 때 임금의 제사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대신들의 건의가 묵살되자 성균관 유생들이 상소를 올렸다. “전하의 그 말씀으로 인해 행여 이 나라를 잃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입니다. 공론이 있는 곳에는 초야의 천한 사람이라도 가볍게 여길 수 없고, 공론이 없는 곳에서는 조정의 높은 대신의 말이라도 무겁게 여길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임금을 바로잡고 나라를 구제하는데 있을 따름입니다.”라는 상소는 참여하는 유생의 숫자가 많을수록 강한 파급력이 형성되었다.

1987년 6.29 민주화선언도 광장에서 비롯됐다. 6,29선언 발표 내용 중 대통령 선출방법을 기존의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뀐 것이 가장 큰 핵심인데,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간선제 헌법을 수호한다는 호헌 선언이 국민들의 광장 저항을 촉발시켰다. 평소에 움직임이 별로 없던 직장인들이 ‘넥타이부대’라는 애칭까지 얻으며 서울 시청광장에서의 활약이 독재자의 오만함을 무너뜨렸다.

지금 광화문광장이 가냘픈 촛불로 뜨겁게 달궈졌다. 잘못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또 다시 표출된 것이다. 광장에서 질서있고 활기차게 펼쳐지는 국민의 행태가 국가를 바로잡고자 하는 애국심과 시민의식으로 뭉쳤다. 해외에서도 감탄하고 박수를 보내고 있다. 광장에서 보여주는 질서와 소통 그리고 민주화를 이루고자하는 열망이 새로운 광장문화를 만들었다.

새로운 광장 문화의 메카가 된 광화문 광장의 조성은 설계경기를 통해서 조경전문가가 설계하고 조경전문가가 시공을 했다. 몇해 전 모 일간신문이 건축가들이 뽑은 'WORST 건축물' 1위로 광화문 광장을 선정됐다. 건축가의 참여가 안된 것도 선정 이유의 하나였다. 그런 광화문 광장이 새로운 가치를 가지게 됐다. 조경설계가가 펼쳐놓은 광화문 광장이라는 도화지에 시민이 그림이 되고 주인공이 되었다. 광장이 공간 이상의 가치를 발휘한 것이다. 이제 광화문 광장은 역사가 됐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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