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로 이용되는 청와대가 걷잡을 수 없는 격랑 속에 빠져 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과 두뇌가 집결된 우리나라 역사의 심장부인 청와대는 잘못된 일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청와대 터가 안 좋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초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망명, 윤보선 대통령의 단기 재임, 박정희 대통령 내외의 총탄에 의한 죽음,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의 구속과 자격박탈,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구속, 노무현 대통령 자살, 이명박 대통령의 자원외교실패와 형님 구속으로 이어지는 수난사가 청와대 터의 길흉에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조선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이자 신의 영역으로 조성됐다. 제사를 지내고 무예를 연마하는 연무장과 과거시험을 보는 과거장, 그리고 왕이 시범으로 농사를 짓는 친경지가 있었던 곳이다.

일제는 강점기에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광복 후 중앙청)를 짓고 지금의 청와대 자리에 총독 관저를 지었다. 이곳을 거쳐 간 일본 총독들의 말로도 좋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이곳의 터줏대감인 백악신의 노여움이 컸던 것이 아닐까?

해방 후에는 미 군정청이 사용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 대통령의 관저로 경무대라는 이름이 생겼고 윤보선 대통령은 독재의 대명사로 인식된 경무대를 청와대로 개명을 했다.

청와대 본관에서 대통령 관저로 가는 길에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바위표석이 있다. 1991년에 새로 건설된 지금의 청와대 공사 중 발견된 이 표석은 300년 이상 땅 속에 묻혀 있던 것으로 발견 당시에는 대한민국의 국운이 열리는 것으로 해석되어 가벼운 흥분까지 일으켰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그 뒤의 우리 대통령들은 국민 대다수에게 실망과 오명만 안겼다.

신축된 청와대의 집무실과 관저의 공간구조는 겉모습은 우리나라 전통건축의 모양과 곡선을 잘 표현하고 있지만 소통을 위한 공간구조는 아니다. 수석비서관이 대통령집무실로 가려면 500m를 이동해야하므로 자동차로 이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사이 초소도 두 군데나 거치므로 소통과 효율의 측면에서 보면 한참 떨어지는 건물인 셈이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이 국민의 소리를 제대로 못 듣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 백악관은 대통령이 참모들과 옆방 혹은 위 아래층에 있어서 수시로 소통을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얼마 전에 SNS에 올라온 청와대와 백악관의 사진을 보면 상징적으로 소통의 단절과 개방을 느끼게 해준다.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서류에 결재를 하는 도중에 멀찍이 떨어져 두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서있는 수석비서관들의 모습(사진1)과 백악관에서 여비서 앞 의자에 양복 상의를 걸쳐두고 VR(가상현실) 헤드 셋을 착용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사진 2)이 대조를 이룬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효율적인 문제로 청와대 이전을 생각했다고 한다. 고려시대 남경의 이궁이었고 조선시대에는 경복궁 북문(신무문) 밖의 후원인 청와대 터는 융문당(문과 과거시험장), 융무당(무과 과거시험장)과 경농재, 경무대(군사시범훈련 참관장)와 오운각, 중일각 등의 전각이 있던 곳이다.

청와대 터를 창덕궁의 비원처럼 다시 경복궁 후원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가 된다면 300년 전에 조상들이 예견한 ‘천하제일복지’로 거듭나서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장소로 재탄생될 것으로 생각된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 [사진1] 청와대 모습<사진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 [사진2] 백악관 집무실 모습<사진출처 백악관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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