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우리나라는 5000년 동안 외국의 침략을 931번이나 받았다고 한다. 지금도 외침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지만 우리가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도 있다. 그중 한 곳이 베트남전쟁 참전인데 전쟁은 늘 그렇듯이 침략군의 만행과 현지민의 피해가 공존하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이 우리의 경제성장에 밑바탕이 되는 아이러니한 목적 아닌 목적이 있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일본이 패망 후 한국전쟁의 특수로 경제를 일으켰듯이 우리는 베트남전 참전의 대가로 돈을 벌었고 경제발전의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우리의 국력이 커져서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일을 계속 벌이고 있지만 베트남에서는 전쟁의 상흔이 너무 깊어서 그마저 할 수 있는 힘이 없다.

베트남 중부지역은 전투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이라 전쟁 피해가 많았으며 그와 비례하여 한국군의 만행이 기록된 비문이 많이 서있는 지역이다. 세월이 흘러도 한국군에 대한 증오비의 기록은 지워지지 않는 곳이 있어서 의식 있는 한국인들의 미안한 마음을 자극케 한다.

한국군의 참전으로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피를 흘렸던 두 나라가 불행한 과거를 달래며 새 출발을 상징하는 ‘한-베 평화공원’이 2003년에 푸엔성 동호아현에 조성됐다. 후일 이규봉의 ‘미안해요, 베트남’이란 책의 제목이 된 ‘미안해요, 베트남’이란 캠페인으로 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국민모금운동을 했고 겨우 1억 원 남짓한 금액(10만 달러)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베 평화공원의 사진 자료를 보면 공원 안에는 베트남전 피해자들의 원혼을 달래는 위령비와 평화를 염원하며 지구를 두 손으로 보듬는 모양의 조형물이 있다. 준공식 때는 ‘한-베 어린이 문예대회’에서 입상한 작품을 한국과 베트남 화가들이 공동작업한 도자기벽화가 오픈됐다.

그런데 처음 공원이 건립되고 개방되자 현지 지역주민들이 이것을 다 부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국군 증오비가 있던 터라 평화공원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하늘에 가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한국군들은 이 작은 땅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저질렀다. 수천 명의 양민을 학살하고, 가옥과 무덤과 마을들을 깨끗이 불태웠다.”로 시작되는 한국군의 만행을 기록한 증오비의 글은 평화공원의 마음을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큰 상처로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이후 푸엔성 인민위원회가 복구를 했다고 하지만 상당한 시간이 흐른 최근에 검색해 본 공원의 모습은 거칠고 부서진 조형물과 손길이 닿지 않은 황량한 수목들로 남아 있어서 한-베 평화공원의 현주소를 대변해주고 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밑도 끝도 없이 베트남 국민들에게 너무 성급하게 화해와 용서를 구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일본에게 요구하는 사과와 배상요구에 대한 대 일본 감정은 국민정서와 다르지 않는 반면에 베트남의 경우는 역지사지의 범위에서 벗어나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다.

전국에 100개가 넘는 참전 기념비가 있다고 한다. 특히 파월장병 교육대가 있던 강원도 화천에는 180억 원이 투입된 베트남 참전 기념관과 공원이 2008년에 지어졌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다 희생된 병사를 추모하고 참전 전우들의 만남의 장을 조성하는 일에는 찬성을 하지만 피해국의 정서도 헤아릴 줄 아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 이다.

베트남 꽝응아이성에 세워진 증오비 기록에 의하면 1966년 12월 5일에 벌어진 한국군 만행이 금년 12월 5일이면 50주년이 된다. 올해 그곳에서 희생자 50주년 추모행사를 대규모로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예전에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이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2차 대전 당시 희생된 유대인 추모비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으며 폴란드 국민들도 같이 울면서 용서를 했다. 그렇게 해서 양국의 모든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다. 50주년 희생자 위령제에서 대한민국 각료가 나라를 대표하여 증오비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면 베트남 국민들도 용서를 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그런 후에 지금의 황폐화 된 한-베 평화공원을 시민의 휴식처로 확대 조성하여 화해를 구한다면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공원으로 재탄생 될 것이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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