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 칼럼]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김부식 칼럼]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 김부식
  • 승인 2016.01.21
  • 호수 3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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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로 시작되는 겨울나무 동요는 고 이원수 선생이 작사한 노래로 나무는 찬바람 속에서 외로이 서있지만 꽃피는 봄을 기다리는 희망을 주는 가사가 겨울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훈훈함을 느끼게 한다.

며칠 전 쇠귀 신영복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맹추위 속에서도 쇠귀 선생의 사색과 깨우침이 겨울나무 동요처럼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쇠귀 선생의 기나긴 고통과 억압의 생활은 널리 알려져 있고 분노와 좌절을 성찰과 공부, 깨달음으로 승화시켜 옥중서신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통하여 세상을 향한 귀중한 가치를 제시했다. 그 이후 많은 저서를 발표하면서 시대의 지성, 마음의 스승이라는 애정과 존경이 담긴 칭호를 받았다.

쇠귀 선생의 저서 중 ‘나무야 나무야’는 20년 20일 동안 단절의 공간에서 벗어난 지 8년 만에 전국의 사연 있는 지역을 두루 답사하면서 국토와 역사에 대해 사색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선생의 생각에서 과거와 현재를 논하면서 과거보다는 현재에 무게를 두는 것이 현실적인 깨우침을 주는 것 같다. 

파주 임진강가의 반구정(황희 정승 정자)과 강남 한강변의 압구정(한명회 정자)은 둘 다 은퇴한 정객이 갈매기와 벗하여 여생을 보내는 정자를 뜻하는 이름인데 지금의 모습은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며 우리들이 헐어야할 피라미드로 규정하고 있다.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서 배우라는 말은 단종 유배지 청령포에서의 사색으로 파렴치한 정권과 아첨하는 정치인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로 여겨진다.

“생각 없이 잘라내는 것이 어찌 소나무만이겠습니까. 없어도 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하여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을 마구 잘라내고 있는가 하면 아예 사람을 잘라내는 일마저 서슴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는 쇠귀 선생이 20년 전부터 이 시대의 현대인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로 다가온다.

“옛 사람들은 물에다 얼굴을 비추지 말라고 하는 ‘무감어수(無鑑於水)’의 경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을 거울로 삼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만 그것이 바로 표면에 천착하지 말라는 경계라고 생각합니다. ‘감어인(鑑於人)’ 사람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고 하였습니다”는 조경 디자인에서도 새겨야 하는 원칙과 마음가짐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같이 징역살이를 한 노인 목수가 땅바닥에 그린 집의 순서에서 주춧돌을 먼저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렸는데 이는 지금까지 우리들이 그렸던 순서와는 거꾸로여서 충격을 받았다는 느낌의 표현은 지붕부터 그려온 우리들의 고정관념의 뿌리를 흔드는 질서의식을 주고 있다.

또 하나의 저서인 ‘더불어 숲’은 쇠귀선생이 ‘새로운 세기를 찾아서’라는 화두를 가지고 세계 22개국을 여행하며 사색을 기록한 책이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는 로마의 콜로세움, 베이징의 만리장성,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전,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이스탄불의 소피아성당 등 거대한 유적의 압도적인 규모와 화려함 이면에 수많은 생명의 희생과 피땀의 의미와 가치를 섬세히 사색하며 나온 ‘겸손과 공존, 인간의 논리’를 지키며 ‘더불어 함께’하는 쇠귀 선생의 타인 존중의 ‘관계의 철학’ 함축된 표현으로 보인다.

평범했던 육군 신영복 중위가 사형수와 무기수로의 감옥생활 그리고 자유인과 대학교수를 거치면서 점철된 모든 사색은 ‘통절한 깨달음’이라는 함축된 말로 감히 설명이 될까?

쇠귀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두 권의 사색은 장소성과 경관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화두를 던져준다. 쇠귀 선생의 명복을 빈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김부식
김부식 kbs3942@latimes.kr 김부식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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