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병(아썸 회장·생태학박사)

골프는 신사적인 운동이다. 골프전문 채널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방송하는 각종 골프대회에서 선수들에게 적용되는 골프 룰을 보면 엄격하기 그지없다. 골프의 진수는 정직성이며 자신과 싸움이기 때문이다. 연못에 빠지거나 숲속에 들어가 언플레이 볼을 선언했을 때 적용되는 ‘두 클럽 이내의 홀에서 먼 곳에 떨어뜨려야’ 하는 룰에서, 고의든 아니든 1인치만 홀 쪽에 가깝게 떨어뜨리고 쳐도 여지없이 벌타가 적용된다. 벙커샷을 할 때 자세를 잡다가 클럽헤드로 모래를 조금만 건드려도 벌타를 받는다. 그린에서는 더욱 엄격하여 다른 선수의 퍼팅에 방해가 되는 사소한 경우에도 벌타가 적용되며, 양해 없이 순서를 어겨도 안 되고, 자신의 볼 마크를 하다가 공을 건드려도 안 된다. 심지어 정해진 시간을 넘겨도 안 된다. TV 중계화면에 나오는 선수들은 대개 그 대회의 10위권 내에 드는 선수들이어서 단 한 번의 벌타도 우승을 놓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자신의 점수를 잘못 적어 내는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벌타가 아니라 아예 실격 처리된다. 이 모든 패널티에는 본의 아닌 실수나 착각도 결코 용서되지 않는다. 책 한 권 분량이 넘는 PGA 골프 룰을 보면 얼마나 구체적으로 디테일하게 적시해 놓았는지 아마추어 골퍼들 중에 이를 모두 읽고 숙지한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필드에서 동반자들과 하는 운동이지만 그 속내는 철저히 자신과의 싸움이며 정직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운동임이 분명하다.

필자가 골프를 시작한지도 어언 20년이 넘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10여 년을 넘기고 나서 주변의 권유에 못 이겨 남들보다 다소 늦게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부르조아 운동이라는 선입관 때문에 입문을 꺼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90년대 서서히 골프장이 늘어나며 골프 붐이 조성되는 때에 사업을 하는 사람이 골프를 도외시하기도 힘들어 마지못해 시작하게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동반자들과 골프를 쳐왔지만 막상 나 자신이 골프를 잘 치는 축에 들지는 못했다. 골프라는 운동에 특별한 소질이 있지도 않았고 골프마니아도 아니었다. 그저 이런 저런 친목과 교류와 사업 때문에 골프를 친 셈이다. 내기골프에 빠진 적도 없었다. 동반자들이 원하면 거절하지는 않았지만 늘 결과는 잃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많은 동반자들에게 돈 잘 퍼주는 만만한 ‘호구(?)’였기 때문에 나와 플레이를 꺼리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저 20년째 늘 ‘보기플레어’였다.

오래전에(비기너 신세를 겨우 면할 때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친구와 상해에서 골프를 친 적이 있다. 젊어서부터 한국에서 머문 시간이 거의 없었던 친구는 미국에서 처음 머리를 올렸고 주로 외국인들과 골프를 치는 편이었다. 어쩌다가 나처럼 한국에서 지인들이 출장을 오면 드물게 한국 사람들과 골프를 쳤다고 한다. 우리도 간만에 상해의 괜찮은 골프장에서 즐겁게 라운딩을 하였다. 내 딴에는 내 점수를 한 번 적어본다고 꼼꼼하게 성적표에 스코어를 적었다.(중국 캐디들은 대체로 스코어를 적어주지 않음) 낯선 골프장인데다 전날 저녁 마신 술도 있고 해서 점수가 신통치 않았다. 내가 적은 그날의 점수는 99타였다. 골프를 마친 후 클럽하우스에서 저녁을 하면서 내가 스코어카드를 꺼내어 복기를 하려 하자 친구도 그의 스코어 카드를 꺼내 놓았다. 놀랍게도 거기에 내 점수는 114타로 기록되어 있었다.

“야 ! 이런 엉터리 점수가 어디 있어.” 하고 내가 낯을 붉히자. 친구는 친절하게 차이 나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첫 홀에 OB난 것 빼고 적었으니 2타, 3번 홀에 연못에 빠진 공 적당히 페어웨이에 놓고 친 것 2벌타, 6번 홀에서 벙커샷 하면서 모래 건드린 것 2벌타, 9번 홀에서 더블파를 트리플보기로 오기한 것 1타, 10번 홀에서 페어웨이 패인 곳의 공을 옮기고 친 것 2벌타, 12번 홀 그린에서 혼자 오케이 선언하고 공 집은 것 2벌타, 15번 홀에서 러프에 빠진 공 임의로 꺼내놓고 쳤으니 2벌타, 마지막 홀에서 티오프 라인 앞에서 쳤으니 2벌타. 그래서 합이 15타 차.”

나는 그저 할 말이 없었다. 민망해서 얼굴이 붉히며 항변했다.
“한국에서는 다들 이렇게 쳐. 넌 로컬룰도 모르냐? 우리가 PGA 프로냐?” 
친구는 담담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가끔 한국 친구들 오면 너같이 말해. 그러나 그건 한국골퍼들만의 행태지. 세계 어느 나라 골퍼도 경기규칙을 어기거나 점수를 빼고 적지 않아. 그건 바로 실격이야. 고의든 실수든 관계없이 실격이며, 동반자에 대한 결례야. 맘대로 규칙을 어기고 점수를 적당히 적으려면 스코어 카드 없이 그냥 쳐. 그건 친선게임으로 괜찮아. 그러나 단 1달러짜리라도 내기를 하는 게임에선 반드시 규칙을 지켜야해. 이게 국제 룰이야.”

그날 나는 그동안 한국식 로컬룰에 익숙하여 골프를 쳤던 것에 깊이 반성하고, 반드시 내점수를 캐디의 스코어 카드와 상관없이 기록하여 달력에 적어두었다.

그날 이후 내 스코어의 올바른 점수는, 동반자들과 함께 기록된 공식(?) 점수와는 3년간 평균 오차가 6~8타 정도 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는 대체로 첫 홀 1파 만파에서 1~2타, OB 멀리건 2타, 캐디가 오기한 것 1~2타, 내가 착각하여 오기한 것 1~2타, 헤자드 빠진 볼을 남들처럼 적당히 놓고 친 것 1~2타 정도였다. 비교적 제대로 적으려 했지만, 엄격하게 규칙을 따르면 이러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골프인구는 많고 골프장이 부족했던 지난 시절에 우리나라 골프장에서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국식 로컬룰을 만들었다. 6~7분 간격으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최대한 많은 팀을 소화하여 극대 이윤을 올리기 위한 골프장 사업자들이 만든 룰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OB티를 만든 것, 연못에 빠졌을 때 건너편에 가서 치게 하기, 그린에서 적당한 거리에서 컨시드 주기 등이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편법이 허용되자, 용기를 얻은 골퍼들은 첫 홀에 1파 만파는 다반사요 트러블 샷을 쳐야하는 불리한 곳에서는 맘대로 터치 볼을 하는 습성이 생기게 되었다. 게다가 소위 접대골프를 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엄격하게 규칙을 지켜야하는 골프가 한국형 엉터리골프문화로 전락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OB나 삑사리는 무조건 멀리건이요, 터치 볼은 다반사고, 그린에 올라가면 3m 넘는 것도 OK에, 더블이상 적지 않기, 세컨 OB도 웬만하면 계산에서 빼주는 등 한국의 접대골프 로컬룰은 희한한 코메디일 뿐이다. 도대체 그렇게 모든 규칙을 무시하고 계산해서 80대 초반을 만들어주면 체면이 서는 걸까? 점수가 잘 나와야 기분이 좋고 체면이 선다면 아예 첫 홀부터 끝 홀까지 올 파로 적어 주면 되지 뭐하러 카운트를 하는지 모르겠다.

이러한 범칙의 행태는 접대골프가 아닌 친선골프에서도 보편적 문화처럼 굳어져서, 누가 점수는 제대로 적자고 말하면 왕따의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적당주의 봐주기 문화가 규칙과 정직함이 생명인 건전한 스포츠를 이렇게 엉터리 비열한 헬조선의 헬골프로 만든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통계에 의하면 세계의 골프인구가 대략 6000만 명 정도 되는데, 평균 타수는 107타 쯤 되고 90타 이내의 보기플레이어는 그중 10%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아마추어 골퍼들이 골프장에 적어내는 평균타수는 93타 정도라고 한다. 한국 골퍼들 90%정도가 자신이 보기플레이어라 주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베테랑 캐디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대로 정직하게 적으면 보기플레이어는 열 명중에 한명이 맞다고 한다. 즉 특별히 한국 사람들이 골프를 잘 치는 민족이 아니라 평균적으로 10타 이상을 관습적으로 빼고 적는다는 얘기다. 프로선수 이외에 규칙을 제대로 지키며 정직하게 스코어 카드를 적는 아마추어 팀은 한 달에 한 두 팀이나 될까 말까 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골프장 전체를 빌려서 하는 큰 친선대회에서도 결코 룰은 지켜지지 않으며, 팀별로 담합하여 적당히 빼고 적기는 다반사라 한다. 서로 봐주면 같이 점수가 낮아지고 그래서 우승하면 함께 좋고, 여기에는 어떠한 공범의식조차 찾아볼 수 없다. 법과 질서가 권력자의 자의적 판단으로 집행되는 걸 막을 수 없고, 뇌물이나 학연 지연으로 범망을 피해가며 사익을 추구하는 세상을 타락한 사회라 한다. 불법과 불공정이 가득하고, 속임수와 적당주의가 만연한 세상을 골프장에서도 똑 같이 보는 것 같아 찝찝하다. 그래서 필자는 골프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1. 필드에 나온 것 자체에 감사히 생각하자. 공과 점수에만 집착하지 말고 꽃과 숲도 보고 아름다운 코스 경관과 산과 구름도 보고 즐기자.
2. 가능하면 내기를 하지 마라. 핸디 차이가 8타 이상 나면 아무리 핸디를 주더라도 내기에 의미가 없다. 굳이 내기를 피할 수 없다면 내기에 나간 돈은 잊어버려라.
3. 단 한 타라도 부정직하게 적은 점수가 있다면 메달리스트나 우승상은 받지 마라.
4. 보기플레이어 이상의 골퍼는 자기 스코어를 정직하게 적자. 단 1타라도 잘못 적으면 실격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첫 홀 ‘일파만파’ 등에 동조하지 말고 멀리건은 한 라운드에 단 한 번 나머지 동반자 모두가 동의할 때만 받아라. 터치볼 하지 마라.
5. 80대 중반 이하부터 싱글플레이어는 멀리건이 없다. 컨시드도 없다. 동반자가 컨시드를 주더라도 퍼터 1클럽 이내를 확인하고 볼을 집는다. 하급자의 돈을 따서 주머니에 넣고 가지 마라. 굿샷을 했다고 자만하거나 자랑하지 마라. 미스샷을 했다고 동반자를 탓하거나, 특히 캐디를 나무라지 마라. 그린에서 캐디가 공을 잘못 봐주었다고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은 싱글의 자격이 없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비아냥거리는 말로 동반자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마라.

권오병 집필위원(아썸 회장·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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