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균(순천대 조경학과 교수)

한국은 ‘갑’과 ‘을’의 사회라고 한다. 조경분야도 ‘갑’과 ‘을’의 사회라고 한다. 참으로 경직스러운 말이다. 최근 ‘갑질’ 하면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항공기 불법회항 국제 망신 사건이 떠오른다. 조경업계에서도 ‘갑질’ 행태에 대하여 크고 작은 사건들이 보도되고 있어 안타까운 일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간부가 조경공사 감독과정에서 ‘갑질’을 하여 조경계의 부끄러운 일면을 드러냈다. 권력이 센 ‘갑’이 성실하게 업무를 수행하는 ‘을’에게 횡포를 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갑’과 ‘을’이란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서상 사업 발주처를 ‘갑’이라고 하고, 사업을 수주 하는 쪽을 ‘을’로 지칭한다. ‘갑질’이란 계약관계에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억압하거나 부당한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하여 접미사인 ‘질’을 붙여서 만든 신조어 이다. 수주산업인 조경에서는 일반적으로 발주처인 ‘갑’이 상대적으로 권력이 많고, 공사수주를 받아야만 기업을 존속시킬 수 있는 시공업체인 ‘을’은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다. 이에 따라 본의 아니게 발주처에 근무하는 감독은 ‘갑’이 되고, 시공업체에 근무하는 시공기술자는 ‘을’이 되기도 한다.

조경에서 갑질 행태는 공사대금결제 지연, 어음발행, 기성금 지연, 까다로운 준공검사, 부실설계 책임회피, 무보수 설계변경 또는 자료제공 요구, 지나친 고품질 수목구매 요구, 공사 지연, 준공 후 무관리에 따른 하자에 대한 억지 하자보수 요구 등으로 나타난다.

조경은 소위 말해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감독이 많다. 특히 조경수목의 경우 보는 사람마다 수형이나 규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시시비비가 많이 발생한다. 이러한 경우 감독과 시공자가 원만한 합의를 이루어 합리적으로 수목을 구입한다면 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식재설계서가 현장에 적합한 경우가 거의 드물기 때문에 현장에서 ‘갑질’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확한 설계와 시방서를 작성해 두지 않았다면 시공현장에서는 대부분 ‘을’의 의견이 무시되고 감독의 일방적인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은 ‘갑’의 오만한 무한권력을 ‘슈퍼 갑’ 또는 ‘울트라 갑’이라고 한다. 조경계에도 ‘슈퍼 갑’ 또는 ‘울트라 갑’이 있다고 한다. 원칙대로만 하면 현대판 ‘울트라 갑질’과 ‘비감한 을’은 없을 것이다.

‘갑질’을 당하지 않는 조경가들도 있다. 오히려 ‘갑’이 ‘을’에게 통사정하는 경우도 있다. ‘갑질’을 당하지 않는 조경가들은 대부분 진정한 실력가들로 ‘갑’이 품질 좋은 작품이나 작업이 잘 될 수 있도록 환대를 한다. 감독관과 시공자는 ‘갑과 을의 관계’라는 과거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상부상조 하는 수평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생각해보면 감독관이 일을 잘하면 뭐하려고 조경시공기술자를 비싼 돈 주고 모시겠는가? 감독관이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조경시공기술자에게서 도움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기술자들이나 작업원들을 우대하는 미덕이 있었다. 집을 지을 때 목수들에게 최고로 맛난 것들로 푸짐하게 대접 하였다. 우리네 부모님과 이웃들은 농사지을 때 인부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찬을 준비하려고 꼭두새벽 4시에 5km 떨어진 법성포까지 걸어가서 최고로 싱싱한 생선과 갓 빚은 틉틉한 막걸리 그리고 제일 좋은 담배를 사다가 대접해 주었다. 인부들은 고된 노동이지만 그 맛난 음식과 대접에 고된 노동도 즐거움으로 승화시켜 서산에 해가 저물었을 지라도 끝까지 성심성의껏 작업의 마무리를 잘해주는 미덕이 있었다.

필자가 20여년 전 광양제철소에서 조경현장소장을 할 때에 감독관과 나무 수형이나 자재 사용 등으로 시시비비 마찰이 많았다. 하루는 감독관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위에 언급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감독관이 시비를 많이 걸면 법적으로 2년간 하자기간은 나무가 잘 살지만 2년 이후에 나무가 서서히 비실비실대며 생육이 불량하게 할 수 있다는 엄포도 쏘았다. 20년 전 감히 ‘을’인 시공현장소장이 ‘갑’인 감독관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사업포기’에 가까운 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아마도 감독관과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막서기’를 했던 것 같다. 그 다음 날부터 감독관은 현장 작업원들에게 주라고 제과점 빵과 우유를 듬뿍 사왔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자주 사왔다. 그 시기에 인부들의 간식은 주로 우유와 공장에서 만든 빵 하나씩이었다. 현장에서 작업원들이 제과점 빵을 먹는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시기였다. 작업원들은 처음에는 모두들 어안이 벙벙했었다. 감독관이 자주 맛있는 음식과 함께 “노고가 많으시다”는 격려에 현장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작업원들은 거칠기 짝이 없는 막노가다판 조경현장에서 마치 자기 집 정원 가꾸는 것처럼 조경식물들을 정성껏 다루었다. “이제 그만 사오셔도 된다”고 해도 “이것은 내 즐거움”이라고 하였다. 그 때 우리들이 심은 광양제철소 나무들은 이 꼭두새벽에도 잘 자라고 있다.

조경목적물을 잘 생산하려면 감독관들은 조경시공기술자들을 잘 모시면 된다. 인정해주면 없는 나무도 가져다가 더 심어주기도 하는 것이 조경시공기술자들의 천성이다. 감독관의 칭찬 한마디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질’이란 도둑질, 깡패질 등과 같이 무엇인가 바람직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접미사다. ‘갑질’ 또한 부끄럽고, 바람직하지 못한 ‘질’이다. ‘갑’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을’이 대신 해준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을’을 존경할 필요가 있다. 조경계에서는 ‘갑’과 ‘을’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서로 지식과 정보 그리고 기술을 교환하여 진정한 조경계 발전에 일익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김도균(객원 논설위원·순천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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