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목월 시의 정원<사진제공 디자인엘>

박목월(1915~1978) 시인 탄생 100돌을 맞아 고인이 안장된 용인공원과 시인의 아들인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76)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공원에 시비(詩碑)와 휴식 공간을 갖춘 ‘박목월 시의 정원’을 마련했다.

정원 조성은 (재)용인공원 측의 제안에 따라 진행됐으며 (재)용인공원 측은 공사비를 지원, 박 교수와 협의하고 ‘박목월 시의 정원’을 조성했다. 지난 5월 30일 열린 정원 개원식에서 박 교수는 “아버지의 묘는 물론이고 공원묘지에 오는 많은 사람이 시로 저마다 상처를 치유하고 아이와도 둘러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며 “시들어버릴 꽃 한 송이 놓는 대신 아버지의 시를 보고 쉬는 공간을 만들면 ‘살아 있는 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원식에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이건청·나태주·오세영씨 등 시인 1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시를 낭송했다.

박 교수는 선친의 기일이나 명절에 묘소를 찾아 꽃을 놓을 때마다 꽃이 며칠 뒤에는 시들어버린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고 한다. 그래서 꽃대신 시비를 생각했고 대표적인 청록파 서정시인으로 불리는 아버지가 시를 통해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랐다.

정원에 대한 구상은 2012년 12월쯤부터 나왔는데 계획 및 준비 절차를 거쳐 지난해부터 주변 토목공사를 시작하고 올해 3월부터 정원을 조성했다.

▲ 박목월 시의 정원<사진제공 디자인엘>

시의 정원은 용인공원 내 약 830㎡의 터에 조성됐으며 5개의 시비와 3개의 안내비, 진입벽, 휴게시설 등을 갖췄다. 시비에는 ‘나그네’, ‘먼 사람에게’, ‘어머니의 언더라인’, ‘임에게’, '청노루' 등 목월의 초기·중기·말기 작품을 고루 새겼다.

안내비에는 시인의 육필을 재현한 ‘가정’이 새겨 있다. 이는 시인이 1960년대 노트에 쓴 것을 옮겨 놓은 것으로 제목도 공식 발표 때와 달리 ‘겨울의 가족’으로 했고 내용도 일부 차이가 있다. 안내비 중 하나에는 헌시도 담겨 있다.

▲ 박목월 시의 정원<사진제공 디자인엘>

정원은 묘소에서 내려오면서 한 바퀴를 돌아볼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시인의 묘소 아래쪽에 배치된 시비 5개를 순서대로 보고 돌아오는 방향에는 앉음벽이 놓여 있어 나무그늘 아래에서 전체적인 경관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언덕에 앉아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시의 정원으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문설주를 나지막하게 세워 시골 마을의 집에 들어가는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식재의 경우 묘소 주변 숲을 그대로 살리면서 녹음을 주는 낙엽수와 흰 꽃이 피는 초화류로 구성했다. 산벚나무와 목련, 꽃사과 등을 심어 이른 봄부터 꽃을 볼 수 있도록 했으며 진달래, 옥매화, 찔레, 공조팝 등 대부분 흰 꽃이 피는 것으로 구성했다. 초화류도 마찬가지다. 이곳에는 마거리트, 구절초 등 국화과의 화초가 주를 이루고 있다.

설계를 맡은 박준서 디자인엘 소장은 정원 조성 과정에서 시인의 시가 가지고 있는 정서가 담겨야 한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에 따라 정형적이고 형식적인 정원이 아니라 자연의 서정적인 풍경 안에 시가 놓여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박준서 소장은 “묘지공원 안에 있다 보니 사람들이 의아해할 수도 있고 마냥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은 아니지만 이곳이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장소가 아니라 위로받는 그런 장소였으면 했다”며 “오는 이들이 슬픔을 안고 오겠지만 시인의 서정적인 시와 풍경을 보면서 위로받고 시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한편 박목월 시인이 창간한 시 전문지 ‘심상’을 사랑하는 모임인 ‘심상문학회’는 해마다 이곳에서 문학 행사를 열 예정이다. 일회성으로 장소를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의미 있는 공간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 박목월 시의 정원<사진제공 디자인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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