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길공원 훼손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푸른길지키기 행진을 벌이고 있다.

한 여름 녹음보다 신록의 빛깔을 만들어내는 봄빛을 좋아하는 필자는 1년 중 푸른길공원이 가장 많은 감동을 주는 시기로 지금을 꼽는다.

그런데 새롭게 찾아온 봄이 주는 감상을 즐겨야 하는 이때, 푸른길공원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날마다 푸른길을 걷는 사람들, 푸른길을 함께 만든 이들은 푸른길에 찾아온 봄이, 올해 혹은 내년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푸른길에 해마다 봄이 찾아오도록 하기 위해 푸른길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푸른길공원에 위기가 닥친 것은 지난해 3월, 광주시가 도시철도 2호선을 도로를 이용해 고가경전철로 만들기로 했던 방식을 저심도 공법으로 변경해 도로와 접해있는 푸른길공원을 파헤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부터이다.

사실 광주시는 푸른길공원을 훼손하고 2호선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2011년부터 진행해왔지만, 지난해 3월 풍문으로 들리는 푸른길공원 훼손소식을 확인하기 전까지, 일절 시민들에게 푸른길공원의 훼손에 대해 설명한 적이 없었다. 이후 푸른길 훼손 문제가 제기되면서 시작된 간담회, 토론회에서도 광주시는 푸른길공원이 공공의 땅, 즉 광주시 소유의 땅이기 때문에 2호선을 공사를 위해 파헤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지금은 푸른길공원에 대한 가치는 인정하지만 공원에 접한 7차선 도로를 이용해 2호선 건설공사를 하는 것보다 푸른길공원을 이용하는 방식이 편리하고 예산이 절약된다는 이유로 푸른길공원 훼손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들은 푸른길공원 훼손을 반대하며, ‘푸른길은 푸른길로, 2호선은 도로로’ 만들자며 시민단체들이 모여 ‘푸른길지키기 시민연대’를 결성했으며, 남구의회에서는 ‘푸른길 훼손 반대 건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또한 이용자인 지역주민 76%가 푸른길공원 훼손을 반대하고, 지역원로 및 각계 전문가들이 푸른길의 시민참여가치를 존중해 줄 것을 요구 하는 등 푸른길을 지키기 위한 활동이 이어졌다.

이러한 시민들 반대목소리에도 푸른길공원 훼손에 대한 의지(?)는 변함이 없다. 전체 공사비 2조 원의 2%를 절약하기 위해 푸른길공원으로 2호선을 건설하겠다는 것인데, 푸른길공원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시민참여 역사와 문화공간으로써 광주를 대표하는 공원으로 사회적, 문화적 가치들이 있다.

날마다 시민의 일상과 함께 하는 도시숲길인 푸른길공원은 시민의 삶이, 문화가, 그리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곳이 공원이 되기 전에는 하루 30여 차례 이상 기차가 다니던 폐선부지였다. 주변은 슬럼화하고, 매일 소음과 분진, 진동으로 주민들은 갖가지 환경적 피해를 당한 채 70여 년을 살아왔다. 그 기찻길이 폐선이 결정되고, 폐선부지가 공원으로 결정되기까지, 모든 과정에 주민들이 삶의 환경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바탕이 됐다. 주민들과 함께 폐선부지를 푸른길로 결정하고 조성했던 과정에는 기다란 푸른길공원에 대한 시민들의 꿈이 뭉쳤고, 전문가들은 시민의 꿈을 디자인하고, NGO는 시민 아이디어를 모으는 등 광주공동체의 발현으로 푸른길공원 역사는 만들어졌다.

그 역사의 시작을 열었던 1998년, 광주역에서 남광주역, 효천역에 이르는 10.8km 경전선 철도의 외곽이설 공사가 진행 중이던 때, 광주시는 폐선부지를 경전철부지로 활용할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폐선이 되는 기찻길을 푸른길로 꿈꾸었던 지역주민과 민간단체, 전문가들은 포기하지 않고 3년 동안 폐선부지를 푸른길로 만들어줄 것을 요구하며 시민행동을 펼쳤다. 그 결과 당시 광주시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폐선부지를 푸른길로 만들겠다고 시민들에게 약속했다. 이후 푸른길공원은 시민 참여로 만들기 위해 ‘푸른길100만그루헌수운동’을 전개했으며, 해마다 봄과 가을에 시민 수백 명이 내 나무 한그루를 푸른길공원에 직접 심고 가꾸어왔다.

광주 푸른길공원은 전국 처음으로 폐선부지 전 구간 공원 결정과 시민참여형 공원조성의 모범사례로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 발생한 폐선부지 공원화를 이끌었다. 푸른길공원은 나주, 목포, 여수, 동대구, 마산, 부산 등지의 폐선부지를 푸른길로 결정하는데 큰 몫을 했다.

이러한 광주시민의 자존심이 담긴 푸른길공원을 시민들이 지키려 나서는 이유는 단순하다.

첫 번째가 ‘푸른길은 푸른길로, 2호선은 도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성한지 10여 년이 지나 이제 푸른길공원은 시민 휴식공간이자 문화공간으로 도시재생을 견인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푸른길공원 주변 주민들 일상 공간이 됐다. 2호선 건설을 위해 도로를 이용할 수 있음에도 공원을 거대 토목사업을 위해 마음대로 훼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하는 광주시의 사고가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시민참여 역사와 뜻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4만여 평이 채 안 되는 8km의 푸른길공원을 만드는데 10여 년 세월이 걸렸다. 광주시가 공원 조성에 많은 예산을 쏟아 부을 수 없었기에 조성기간이 오래 걸렸지만, 이는 시민참여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해마다 조금씩 광주시와 시민들이 함께 푸른길공원을 설계하고, 나무를 심고, 가꾸어가는 활동에 함께 할 수 있었다. 행정은 시민을 믿고 기다렸고, 시민들은 푸른길 조성과 관리를 위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푸른길공원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마다 시민들 사연이 담겨있다. 그래서 훼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한번 훼손되고 파괴된 푸른길공원은 다시 회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저심도로 만들어지는 2호선은 지상에서부터 지하로 7m를 파내려가 선로(3차로)와 승강장을 만든다. 광주시는 2.8km 푸른길공원에 상하행 선로와 승강장 5곳, 승강장 진출입구 10곳을 푸른길공원 내에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푸른길공원을 광주시가 복원해서 지금보다 더 좋게 만들겠다고 한다. 승강장 주변에는 30m정도 흙이, 선로에는 3m정도의 흙을 덮고 그 위에 나무들을 심는다고 하나 지금과 같은 수령 30년 이상 느티나무들이 살 수 없는 환경임에는 분명하다. 도시숲은 사라지고 우리에게는 화단과 보행의 단절만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근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공간 훼손, 시민이 만들어온 도시 공공성의 훼손 등 푸른길의 훼손을 반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주 많다.

우리는 자동차 공간인 도로는 편리하게 놓아두고 보행자, 교통약자들 공간인 푸른길을 훼손하는 것이 민주, 인권, 평화의 가치를 지향하는 광주의 현재 모습이 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푸른길을 지켜나가고자 한다. 생명, 녹색공간을 훼손하고 토목 제일주의로 회귀하려는 광주시가 그릇된 결정을 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시청 앞에서는 1인시위를, 출근시간에는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

푸른길 지키기에 함께 하고자 하는 이들은 (사)푸른길 누리집(www.greenways.or.kr)을 통해 서명과 소식을 볼 수 있다.

이경희 푸른길지키기시민연대 사무국장 겸 (사)푸른길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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