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 칼럼] 슈틸리케, 차두리 리더십
[김부식 칼럼] 슈틸리케, 차두리 리더십
  • 김부식
  • 승인 2015.02.05
  • 호수 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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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이어진 정부 정책의 혼선과 각종 비리 때문에 온 나라가 뒤숭숭한 판에 호주에서 열린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보여준 우리 대표팀의 선전은 잠시나마 국민들의 마음에 큰 위로가 됐다.

그중에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하는 차두리 선수의 활약에 많은 박수를 보냈고 일부 팬들은 은퇴를 반대한다는 서명까지 벌렸다고 하니 대단하기는 하다. 모두 알다시피 차두리는 차범근의 아들이다. 차범근은 온갖 수식어가 모자랄 정도로 대한민국 축구에서 불세출의 영웅이다.

지금에야 대한민국 축구가 세계무대에 명함을 내밀지만 1960년대만 해도 한국축구는 변방의 이방인이었다. 한국축구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예선에서 북한에 질까봐 예선 참가를 안했다가 FIFA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그 대회에서 북한은 아시아 국가 최초로 8강에 오르는 파란을 연출했다. 아시아 국제축구대회가 태국에서는 ‘킹스컵’이 오래 전부터 있었고 말레이시아는 ‘메르데카컵’을 개최하여 인기를 끌고 있었다. 조금씩 승리를 쌓아오던 한국축구는 ‘박스컵’이라는 국제축구대회를 신설(1971년)했지만 정치적 이유가 더 강했던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와 함께 없어졌다. 하지만 1976년 박스컵에서 보여준 차범근의 위력은 지금도 전율이 올 정도로 대단했다. 말레이시아에게 1-4로 뒤지던 후반전에 차범근은 경기 종료 7분을 남기고 기적 같은 해트트릭을 성공시켜 무승부를 이끌어 냈다. 이후 차범근의 축구인생은 화려함과 불명예가 교차됐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축구선수의 대명사로 부족함이 없다. 그런 차범근의 아들인 차두리는 항상 아버지의 그림자 때문에 좋은 소리보다는 비교 폄하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차두리에게는 아버지가 스트레스 대상이었는지도 모른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차두리가 보여준 오버헤드킥은 비록 골인은 안됐지만 차두리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이후 유럽에 진출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올해 축구선수로는 환갑이 지난 나이인 35살에 보여준 그의 경기력은 온 국민의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27년 만에 한국 축구를 아시안컵 준우승으로 이끈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대표팀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며 발탁한 이정협이 성과를 냈고 경험이 많은 차두리를 전격 합류시키는 소신이 빛을 보았다. 또한 쿠웨이트에 힘겹게 이긴 뒤 “오늘을 계기로 우리는 우승후보에서 빠질 것"이라며 솔직히 실력인정을 했다. 이것이 선수들에게는 자극제가 됐을 것이다. 유소년축구부터 K리그까지 즐기는 축구를 강조하는 것이 정말 동감이 간다.

환한 미소의 노장 차두리는 띠동갑 후배들을 특유의 친화력으로 보듬고 소통을 통하여 팀을 한 몸처럼 이끌었다. 또한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며 솔선수범했으며 자신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모두 전수하려했다. 그리고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아는 박수 받는 퇴장을 선택했다.

“정말 우리가 한 팀으로 얼마만큼 강하게 경기할 수 있는지, 우리가 다 같이 뭉쳤을 때는 상대가 얼마나 우리를 이기기 어려운 팀이 됐는지를 보여 줬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많은 사람에게 큰 실망을 줬다. 이번에는 졌지만 박수 받고 감동을 준 경기라고 생각한다”는 차두리 선수에게 주문하고 싶은 것은 그간의 선수 경험과 유럽무대에서 얻은 축구 지식과 전략을 잘 발전시켜서 머잖은 장래에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되어주면 참 좋겠다.

수고하고 떠나는 그에게 한마디 던지고 싶다. “차두리 고마워!”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김부식
김부식 kbs3942@latimes.kr 김부식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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