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병(아썸 대표·생태학 박사)

동물의 세계에서 폭력은 생존을 위한 기본수단이다.

개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섭식폭력’은 생태계 먹이사슬로 포괄되고, 자신의 DNA를 후세에 남기기 위한 ‘생식폭력’은 짝짓기 싸움으로 표현된다. 섭식폭력은 대개 이종 간에 행해지며 생식폭력은 동종 간에 행해진다. 이 두 개의 폭력은 생존과 진화의 필연적 현상이자 자연의 섭리에 가깝다. 개미보다 더 작은 미물부터 몸무게가 54톤이 넘는 귀신고래에 이르기까지 살아있는 모든 동물에게 거의 공통적으로 이 두 가지의 폭력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인간을 비롯한 영장류와 동물계의 상위 포식자들인 맹수나 맹금류 종들에게는 이 두 가지 폭력의 상위에 위계질서를 위한 지배폭력이 하나 더 있다. 무리의 지배권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는 고릴라, 원숭이, 사자, 악어, 물개, 바다코끼리 등이 있으며, 지배권을 획득한 자는 섭식과 생식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인간에게도 이는 예외이지 않다. 단지 다른 동물들 보다 좀 더 복잡한 형태를 띨 뿐이다. 결국 지배폭력의 궁극적 목표도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태계 존속법칙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우리가 경험했던 학교와 군대에서의 폭력양태나, 조폭영화를 살펴보면 지배폭력의 효율적 진화에 의한 몇 가지 일반법칙을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제일 약해보이는 “한 놈만 패라” 이다. 둘째는 여럿이 보는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패라”이다. 셋째는 효과를 높이려면 “매우 잔인하게 패라”이다.

옛날 고등학교시절 별명이 ‘깡패’인 체육선생님은 이 세 가지 일반법칙을 잘 깨닫고 실천에 옮겼던 분이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타계해서 이 세상에 없는 분이지만 그 시절의 무서웠던 기억은 지금까지 생생하다. 

대개 운동장 수업을 했던 체육시간이 되면, 선생님이 나오기 전에 미리 대오를 정비하고 기다리다가 반장의 구령에 따라 “차렷! 경례!”로 시작되기 마련이다. 학기 초 첫 시간에 이 구령이 끝나자마자, 반장은 예외 없이 가혹한 구타를 당했다. 구령 소리가 작다든가, 복장상태가 불량하다든가 등의 비교적 사소한 이유를 들어 솥뚜껑만한 무술 유단자의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거나, 구둣발로 쪼인트를 사정없이 가격했다. 이 잔인하고 치명적인 공격은 반장이 쓰러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래도 리더십도 있고, 건강상태 양호하고, 성적도 괜찮은 반장이 저렇게 당하는데, 그보다 못한 나머지 학생들은 가슴이 떨리는 공포감에 절대 복종을 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체육시간에는 경례할 때 부동자세가 조금 흐트러졌다고 대열 중간에 한 놈을 불러내어 개 패듯이 팼다. 십대 후반의 혈기 왕성한 고등학생들은 한 학기 내내 깡패선생의 수업시간만큼은 육군훈련소 훈련병보다 더 순한 양떼가 되었다.

제발 다음 학기에는 다른 학교로 전출가기를 바랐지만 우리가 졸업할 때까지 그는 우리학교에 근무하였다. 물론 요즘 같으면 그런 교사가 안녕하기는 어림도 없겠지만, 그 시절엔 한 학교에 한둘은 존재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여튼 그는 지배폭력을 대단히 효율적으로 행사한 것은 분명하다. 여러 명을 구타하는 부담을 줄이고, 초기에 공개적으로 한 명만 가혹하고 잔인하게 때리는 방법으로 본인은 좀 더 수월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졸업한 후 그 선생은 자기 아들을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에 체육특기생으로 부정입학 시킨 것이 탄로 나서 불명예 퇴직을 하였다고 들었다.

1816년 남아프리카의 줄루족(Zulu)의 왕이 되었던 샤카줄루(Shaka Zulu, 1787~1828)는 위대하면서도 잔인한 통치자, 검은 나폴레옹으로 불린다. 오늘날 남아공에 1000만 명 정도 살고 있는 줄루족은 당시 남아공 북부의 이름 없는 씨족 집단이었으나, 잔인하고 용맹스러운 한 전사의 출현으로 남부 아프리카의 드넓은 지역을 지배하는 줄루왕국을 건설하였다.

샤카가 등장하기 전 작은 부족이었던 줄루족은 이웃 종족들과 평화를 지켜나가며 살던 평범한 집단이었다. 그들은 부족집단 사이의 갈등을 풀기위해, 매년 전통적으로 축제일을 정해서 부족 간에 전쟁하는 흉내를 내는 행사를 하며 평화를 유지하였다. 이날 여러 부족들은 화려한 전사의 몸치장을 하고 서로 위세를 겨루되 진검을 쓰지 않았고, 서로 살상을 하지 않는 불문율을 지켜왔다.

그러나 어린 시절 어머니가 시댁과 친정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고 유난히 강한 복수심을 키우며 성장한 샤카줄루가 기골이 장대한 전사가 된 후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뛰어난 완력과 지략을 가진 샤카는 190cm의 장대한 체격에, 단단한 갑옷처럼 보이는 광택 나는 검은 피부와 아름다운 근육질을 가졌고 19살에 표범을 때려잡은 눈초리는 매서웠다. 갈등상태에 있던 이웃마을과의 전쟁놀이에서 자신과 어머니를 쫓아낸 이웃 추장(자신의 생부)이 내보낸 전사(이복동생)를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살상하지 않는 불문율을 어기고 스스로 만든 ‘이클와’라 불리는 짧은 창으로 살해하였다. 피를 본 샤카의 전사들은 단숨에 상대방을 공격하여 이날 50여명을 살해하고, 도주하는 이웃부족을 끝까지 추격하여 거의 대부분을 전멸시키는 잔인함을 보였다. 이후 그는 사나운 전사들을 훈련시켜 생부 부족 뿐 아니라 어머니를 쫓아낸 외가의 부족도 전멸시키는 잔인함을 보였다.

20대 후반의 용맹스럽고 잔인한 샤카의 전사들은 오랫동안 전쟁을 금기시해온 이웃부락들을 초토화 시키며 2년 만에 남부 아프리카의 대부분을 점령하고 1816년에 줄루왕국을 건설하고 왕이 되었다. 그의 군대는 25만으로 늘어났고, 그는 잔인한 독재자가 되어 자신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머리를 쪼개 죽였다. 1827년 어머니가 죽자, 여인 10명을 산채로 순장시키고 죄 없는 주민 7000명을 때려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샤카는 모든 백성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의 측근이나 전사들도 사소한 잘못으로 즉결처형 되기 일쑤였다. 그는 지배폭력의 법칙을 잘 활용한 셈이다. 역사학자들은 그의 냉혹한 잔혹성이 불우한 어린 시절에 기인한다고 했지만, 어쨌든 그는 아주 짧은 시기에 광대한 지역을 지배한 왕국을 건설하였다. 그때까지 매번 백인 이주민들과의 전쟁(보어전쟁)에서 백전백패하던 아프리카 원주민 부족들이었지만 샤카의 등장 후 줄루족은 두 번이나 전쟁에 승리하기도 하면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샤카의 잔혹함에 두려워하던 이복형제들에 의해 즉위 12년 만에 자신의 거처에서 암살되어 생을 마감하였다. 지배폭력의 세 가지 법칙을 철저하게 활용하면서 국가를 건설하는데 까지 이른 샤카줄루의 이야기는 폭력의 기작과 원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인류역사를 통 털어서 볼 때, 대부분의 왕조나 국가는 지배폭력의 기반에서 출발한다. 지배권을 강화하기위한 수단에서도 일벌백계주의는 매우 효과적인 통치수단이 된다. 비교적 약자나 소수자들을 대상으로 공개적으로 잔혹하게 처형함으로써 대부분의 피지배자들을 공포와 두려움으로 복종시키는 방법이 통치의 효율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국가에서도 이 근본적인 법칙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유효한 것 같다. 단지 사법권이라는 국가권력의 형태를 갖출 뿐이다. 평범한 시민이 사법권을 두려워하는 시대는 행복한 시대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요즈음 우리 언론에 일벌백계, 단두대, 검찰수사, 헌재판결, 감찰 등의 기사가 일면에 자주 등장하는 걸 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권력이 상대적 약자보다 기득권 세력에 편향하는 쪽으로 흘러가면 소외된 사람들은 추운 벌판으로 내몰리게 되고 사회는 불안해 진다. 역사는 발전하는 것인가? 아니면 역행하는 것인가? 진정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권오병 집필위원(아썸 대표·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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