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서 살아 온
갈순이와
산야에서 살아 온
억돌이가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억돌이는
태산 같은 역경을
갈순이는
억수 같은 시련을
목이 메도록 이야기하고 있다

갈순이는
벅찬 물길을 아늑히 포용했고
억돌이는
험한 청산을 포근히 포옹했던
작지만 위대한 민초의 아량

억돌이는
산속의 야옹처럼
갈순이는
물가의 노파처럼
은빛머리 갈색머리 날리며

갈순이는
순정을 다 바쳐 물을 사랑한다고
억돌이도
충정을 다 바쳐 산을 사랑한다고
소슬한 가을밤을 지새고 있다.

※ 갈대와 억새는 같은 벼과의 다년생 초본이지만 갈대는 물가나 습지에서 억새는 산야에서 생육하는 지표식생이다. 봄과 여름에는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다가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면 산야에 은색의 억새꽃과 물가에 갈색의 갈대꽃이 날리면 비로소 가을이 깊어 감을 느끼게 하는 전령이다. 마치 자연에서 산은 남성으로 물은 여성으로 비유되듯 억새는 억척스럽게 살아가고 갈대는 외유내강한 듯 살아가는 것으로 대비시켜 가을의 우화적 풍경으로 묘사하였다.

서원우(한국조경사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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