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승범(이우환경디자인(주) 대표·(사)한국조경사회 부회장)

식상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복지(福祉)’가 우리 시대의 중요 키워드로 자리 잡으면서 조경계에선 황폐해진 국토를 살리고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녹색(綠色)복지’라는 조어를 만들어 복지시대의 조류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는 것이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며, 또 현실이다. 복지,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한 필수적이고 중요한 개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대상이 죽어가는 환자라고 할 땐 복지보다는 치료행위인 ‘의술(醫術)’이 더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아무리 좋은 복지라도 생명이 다한 뒤에는 소용이 없어지므로.

우리나라는 아직 그 심각성을 잘 못 느끼고 있지만, 지금 전 세계는 기후변화(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건강 악화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구 온난화의 주범은 인간의 활동이며, 이를 해결 할 수 있는 주체 또한 인류의 노력과 의지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인 셈이다.

유명한 '가이아 가설(Gaia Hypothesis)'의 창시자인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2007년 저술한 <가이아의 복수(The Revenge of Gaia : earth's climate crisis & the fate of humanity)>에서 이렇게 말한다.
“20세기의 많은 문명은 종말을 맞을 것이다. 지금 구급상자를 준비하는 일에 나서지 않으면 우리는 곧 극소수의 서식 가능 지역에서 근근이 목숨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종에 속하게 될 것이다. 아마 가장 서글픈 일은 가이아가 우리보다 더 많은 것을 잃는다는 점이리라. 야생생물들과 생태계 전체가 사라질 뿐 아니라, 고귀한 자원도 하나 잃게 된다. 바로 인류 문명 말이다. 인간은 그저 하나의 질병이 아니다. 우리는 지능과 의사소통을 통해 이 행성의 신경계가 되어 있다. 가이아는 우리를 통해 우주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자신이 우주의 어디에 있는지 알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구의 질병이 아니라 심장이자 정신이어야 한다. 따라서 인류의 욕구와 권리만 생각하는 짓을 당장 그만두고 우리가 살아 있는 지구에 피해를 입혀 왔으며 가이아와 화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지나치게 겁을 주고 있는 것이라며 다소 폄하하려는 시각이 있으나, 과거의 지구 생태계의 진화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매우 신빙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태계의 진화과정에서 기온의 변화 속도는 기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지구의 평균 기온이 상승하면 등온선(等溫線,isotherm)이 극지방 쪽으로 이동하고, 수많은 동식물종은 살 곳을 찾아 이 등온선과 함께 이동하게 된다. 만약 이와 같은 이주 과정을 따라갈 수 없는 종이라면 그 종은 결국 멸종하고 이 종이 속해 있던 생태계의 파괴라는 결과가 뒤따른다.

1만 5천 년 전 마지막 빙하기의 종말을 가져온 지구온난화는 기온이 5℃ 상승하는데 5천 년이 걸렸다. 10년에 0.01℃씩 기온 상승이 이루어 졌던 것이다. 매머드(Mammoth), 메갈로케로스(Megaloceros), 동굴사자(Cave Lion) 등 매우 넓은 지역에 우세하게 존재했던 수많은 종들이 이 시기 동안에 지구상에서 사라져 갔다. 그러나 작금의 기후변화추세는 이를 훨씬 뛰어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UN 산하 기후변화 관련 국제협의체인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가 예측한 보고서에 의하면 금세기 중 10년에 한 번씩 0.3~0.4℃ 정도 평균 기온이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보다 15배에서 20배 정도 더 빠른 속도다. 이 보고서대로 기온이 10년에 0.4℃가 상승할 경우, 등온선은 극지방 쪽으로 10년에 120㎞ 이동하게 된다. 지난 25년간 ‘열대지방’이라고 일컫는 지역이 남북으로 위도 약 2.5° 확대됐는데, 이는 10년 동안 110㎞ 올라간 셈이다. IPCC에서 예상했던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에서도 2100년에는 위도가 2° 정도 상승할 것으로 봤는데 그 보다도 진행 속도가 더 빠른 것이다. 이러한 속도라면 생태계의 거의 전부가 파괴될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지구가 병들어 죽게 되면 인류도 함께 사멸한다. 아니, 지구보다 먼저 멸종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니다. 우주의 주인은 더더욱 될 수 없다. 생태주의 운동 진영에서 인간이 지구에서 보낸 기간과 우주의 나이를 비교하여, 우주의 나이를 1년으로 보고 월일별로 몇 가지 놀라운 시간들을 제시한 것이 있다.

먼저 1월 1일 0시에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한다. 그 후 9월 10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태양계가 태어난다(따라서 45억 년으로 추정되는 지구도 이때 생긴다). 9월 29일엔 지구에 최초의 생명체가 출현하고 12월 15일, 최초의 해조류가 나타난다. 12월 30일 11시, 지구에서 공룡이 사라진다. 12월 31일 22시 15분이 되어서야 인류 최초의 조상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lopithecus)가 나타난다. 같은 날 23시 58분 36초가 되면 인간은 비로소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가 되고, 신석기 시대는 23시 59분 39초에 시작된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건 불과 23시 59분 59초의 일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 자정이다.

이 비유를 접하면 우주의 광대한 시공간에 대하여 무한히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 가치를 느끼게 된다.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의 인류는 너무 빠른 속도로 지구의 건강을 악화시켜 왔다. 백만 년이 넘는 세월에 걸쳐 생성되고 보존되어 온 석유를 단 두 세기(200년)만에 고갈의 상황에 이르게 한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그러고도 앞으로 닥쳐올 위기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신석기 인류보다 더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잠에서 깨어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료행위를 시작할 때다.

과연 누가 집도(執刀)할 것인가? 지구를 살리는 ‘녹색의술’을...

진승범(객원 논설위원·이우환경디자인(주) 대표·(사)한국조경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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