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세헌(가천대 교수/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회장)

선선한 가을바람 불어오니 벌써 처마 밑에 걸려있는 시래기와 무말랭이가 그려진다. 가을 햇빛과 바람에 잘 말린 무청으로 할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시래기 국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우리네 삶의 맛이며 정성담긴 가을 햇빛의 맛이다. 릴케의 시 ‘가을날’에서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빛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라는 구절이 나온다. 과일을 익게 하고 완성시켜서 단맛이 배게 하는 가을 햇빛의 놀라운 능력을 찬양하고 있다. 또한 햇빛과 바람에 말린 과일과 채소들은 영양학적 가치가 높으며 질병 예방 차원에서도 특히 대장암 발생을 줄인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참 햇빛은 여러모로 씀씀이가 좋으며 가을에 맞이하는 햇빛은 자연의 선물이자 축복인 것 같다.

‘햇빛’은 말 그대로 태양이 발산하는 빛을 말한다. 광합성의 에너지원으로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의지해 살고 있다. 비, 바람, 구름 등 온갖 기상현상도 햇빛의 에너지가 지구 대기나 바다에 흡수되면서 발생한다. 지상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약간만 줄어들어도 기후가 변동되고 이는 곧 식량 문제와 연결되어 엄청난 결과를 초래된다. 혹은 대기 중에 수증기, 메탄 등이 과도하게 분포해서 흡수한 에너지가 잘 빠져나가지 못해도 문제가 된다. 또한 인간이 현대에 사용하는 에너지는 대부분이 햇빛을 기반으로 한다. 석유·석탄 등의 화석 연료는 햇빛으로 살아갔던 고대 생물의 잔해이며, 파도와 바람, 물의 순환, 해수 온도차 등이 친환경적으로 꼽히는 에너지원의 근간도 햇빛이다. 다만 원자력과 지열 발전은 지구가 형성될 때 머금은 방사성 원소 자체를 연료로 사용하거나 그 자연적인 붕괴로 나온 열을 쓰고, 조석력은 태양과 달의 중력을 이용한다.

지구의 생명체중 하나인 사람의 몸도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햇빛’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의 몸에는 생체시계가 있는데 호르몬 분비와 조절, 대사작용 그리고 감정의 조절 등이 모두 생체시계의 주기를 따른다. 햇빛이 눈에 들어오면 시신경이 햇빛의 자극을 오른쪽뇌와 왼쪽뇌를 연결시켜주는 간뇌로 보내면 간뇌의 ‘송과체’라는 부위에서 ‘멜라토닌’을 분비한다. 멜라토닌은 외부 시간이 바뀐 것에 내 몸의 생체시계를 빠르게 적응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호르몬제이다. 성장호르몬, 부신피질 호르몬 등이 대표적인 생체 시계 주기를 따르는 호르몬들이다. 3교대 작업을 하거나, 비행기 승무원과 같이 시차를 무시하고 일하는 사람들에서 호르몬 균형 이상과 수면 장애, 그리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에 의해서 심혈관계 질환의 빈도가 높다고 한다.

‘햇빛’은 인간의 성장과 신진대사를 활성화 시키는데도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바로 비타민D 때문인데 비타민D가 함유되어 있는 음식이나 영양제를 아무리 먹더라도, 햇빛을 쬐지 않으면 체내에서 활성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타민D의 결핍은 곧 칼슘 결핍을 동반하며, 칼슘은 체내에서 필수영양소중 하나이므로 거의 만병의 근원으로 볼 수 있다. 사람들이 자주 혼동하는 것 중에 하나가 유리로 둘러싸인 건물에서 하루종일 일하니까 햇빛에 계속 노출되어 있으므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비타민D가 체내에서 합성하려면 20분 이상 햇빛이 살갗에 닿는 직접적인 노출이 필요하며 이를 일광욕이라고 한다.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자주 보듯이 잔디밭에서 비키니나 팬츠만 입고 드러눕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지만 한국은 여름이 아닌 계절에 햇빛이 집중되므로 비교적 덜 추운 낮에 공원 벤치에 앉거나 조깅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것 같다.

햇빛은 감정 조절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겨울에 햇살을 구경하기 힘든 북구에서 겨울에 우울증 환자가 많고, 햇빛이 풍부한 여름에는 우울증 환자가 적어진다고 한다. 일부 우울증의 치료에는 인공적인 자외선 치료가 이용되기도 한다. 또한 햇빛은 면역 반응을 개선한다. 3교대 작업자나 시차를 무시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에게서 면역반응저하로 인해서 감기, 과민성 대장염 등의 질환이 자주 발생한다. 과거에 결핵과 같은 만성 소모성 질환의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햇빛과 맑은 공기 그리고 충분한 영양소 섭취가 결핵을 치료하기 위한 최선의 처방이었다.

결국 현대인들의 각종 질병의 원인은 햇빛을 잘 쬐지 못해서 발생한다고 한다. 사람이 필요한 일조량은 하루에 1000럭스 정도인데 온종일 실내에 머물러 있을 경우에는 50에서 200럭스 밖에 받지 못한다고 한다. 지나친 직사광선은 피하는 것이 좋지만 가급적 충분한 양의 햇빛에 노출되어야만 우리 몸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공원의 나뭇잎 등을 통해 반사되어 비치는 간접 햇빛은 자극없이 행복한 느낌을 주는 세로토닌 분비를 활성화하고 비타민D 합성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제 공원에서의 산책과 일광욕은 일조량이 부족한 현대인에게 있어서 단순한 여가 활동이 아니라 질병 예방과 치유을 위한 필수적인 도시 삶의 한 부분이다.

기상청 일기예보는 9월 초에 가을장마로 인하여 계속 비 오는 날이 많을 거라고 한다. 비가 그치고 나면 고마운 가을 햇빛을 담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공원을 찾아 나서야겠다. 가을 햇빛 받을 공원의 단풍들은 얼마나 많은 사연으로 붉게 타오를까?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시청앞 노란리본정원으로 따뜻한 마음 전했던 대한민국 조경이여! 이제 청명한 가을 하늘 자비로운 가을 햇빛 속에서 국민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태어날 대한민국을 꿈꾸는 국민힐링 공간으로 새로운 공원을 준비 하자.

안세헌(객원 논설위원·가천대 교수·한국조경설계업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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