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내큘러 디자인(Vernacular Design)’이란 풍토적이고 관습적인 지역성이 짙게 반영된 디자인을 일컫는다. 한 개인 디자이너의 독창적인 디자인이 아니라 해당 사회구성원의 풍토와 관습에서 발생한 디자인으로 디자인과정이 다소 불투명하고 익명성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버내큘러 디자인은 환경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반영되어 사회구성원의 역사적 배경을 유추하는데 주요한 자료가 된다.

다윈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들은 인위적인 선택과 실행이 있지 않는 한 자연의 변화는 다른 일반적인 변화에 비해 속도가 굉장히 느리다고 하였다. 온도변화가 1도만 변해도 해당지역의 자연물은 큰 변화를 겪는다. 현재의 식물군들은 몇 십 년 전이나 몇 백 혹은 몇 천 년 전과 같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곳들이 많다. 이는 거기서 세대를 바꾸면서 살아온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거의 같은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고 이에 적응하며 문화를 형성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풍토적 배경을 주요 역할로 한 버내큘러 디자인 개념에서 우리 ‘조경’이 ‘자연의 이론적·시각적’ 배경과 역할을 다루며 디자인에서 꼭 필요한 색과 선의 모티브를 근본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주요한 학문이라는 것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조경은 자연을 다루는 학문이다. 산업화 속에서 자연적으로든 인공적으로든 자연을 도심에 남겨놓기 위한 행위다. 자연을 도심에 남겨놓은 과정에서 우리의 풍토적 요소와 현대감각을 적절히 배합하여 조성한다면 좀 더 마음에 와 닿고 이야기가 있는 작업이 되리라고 본다.

한국적 색채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오방색’이다. 많은 문헌에서 언급되어 있듯이 오방색은 우리의 색이고 표현이고 중국에서 전해졌다고 기술되어 있다. 많은 문헌들이 기술한 내용을 별다른 이론적 배경 없이 부정하거나 의문을 던지는 것은 위험한 행동일 수 있다고 본다. 오방색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다음에 다시 한 번 자세히 언급하기로 하겠다. 몇몇 문헌에서 보면 오방색에 쓰였던 많은 색들이 중국에서 수입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서민들은 오방색의 재료라 일컬어지는 것들을 사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서민들은 사용하지 못하고 일부 귀족들이 사용하고 남겨놓은 유물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색을 운운한다는 것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색뿐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소유라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그렇다면 서민들은 좀 더 쉽고 싸게 구할 수 있는 염료를 열망했을 것이다. 쉽고 싸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찾다가 우리의 산과 들, 마을 어귀, 집 앞마당에 피어있던 꽃들과 풀들이 훌륭한 재료가 된다는 것을 오랜 세월의 경험에서 알게 되었다. 우리 조경은 다른 학문보다 깊게 이 부분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경관을 조성하는 소재로 다루어 왔다. 이에 한국적 디자인에 접근하는데 있어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만큼이나 좋은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걸 언급하고 싶다.

지난 글에서 우선적으로 ‘자생화종(443종)’의 색채분석결과를 언급했다. 풍토적 요소가 해당 사회 구성원들의 미의식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에서 본다면 자연에서 많이 분포되었던 흰색과 꽃이 가지는 특유의 난색에 우리민족은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다.

여기에서는 색상별 객관적 기준값, 표준명과 관용명을 표기하고, 색상별 소재와 활용분야를 이미지로 정리하여 자연에서 색을 가져왔던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여기에서는 지면상 적, 청, 황 3가지에 대해서만 나열했으나 자색, 갈색, 흑색, 녹색, 흰색 등에 대한 자료가 더 있음을 알린다.

옛 선조들은 자연 속에서 채취한 꽃, 나무, 풀, 흙, 벌레, 조개, 광물, 해초류 등을 이용하여 색을 만들고 생활에 사용하였다. 특히 ‘식물’에서 염료재료의 대부분을 가져온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렴풋이 나마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겠지만 다음의 자료에서 보듯이 우리주변에 흔히 구할 수 있었던 혹은 조금만 노력하면 구할 수 있었던 식물 등에서 구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는 오방색을 기준으로 거론되었던 관념적·종교적 의미의 서술보다는 관과 민가에서 쓰였던 생활의미를 중심으로 쓰고자 하였다. 

 

 

적색의 소재
식물 : 홍화, 꼭두서니, 소목, 자초, 감, 살구나무, 매실나무, 회나무, 강수뿌리, 촉규화, 호장근, 산행목, 주목 광물 : 적토, 주사

적색의 의미
음양오행설에 의하면 방위로는 남쪽,
계절로는 여름
화(火)에 속하여 심장과 혈액순환계에 영향을 줌
양기의 표상과 벽사의 색으로 현대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무병과 화평을 바라는 ‘기원(祈願)의 색’
단청의 처음이자 마침의 색, 600년간 왕의 공간에 사용된‘궁(宮)의 색’
혼례의 중심색, 신부의 연지
금줄, 색동, 연지곤지, 부적, 적벽돌, 봉숭아물들이기
호적에 붉은 줄을 긋거나 죄인을 붉은 글씨로 표시

적색의 활용
삼국시대 : 관복 서열이 중, 중상위의 색으로 사용
고려시대~조선시대 : 왕의 복색, 상위의 색

궁에 붉은 칠을 한 것은 화재예방 때문이었으며 그 안료의 값이 비싸 일반 서민에까지 이를 수 없었고 사치한다하여 민가에는 이를 금하였다. [경국대전]에 의하면‘사가의 단청을 금한다.’고 전하고 있다. 이에 빨간색은 왕의 색으로 인식

[동국세시기]에 의하면‘붉은 팥죽을 쑤어 문짝에 뿌려서 액운을 제거한다’
[규합총서 1815년]에도 진홍색은 홍화로 [상방정례 1752년] 항례(恒例)의 입염식(入染式)에서는 대홍색은 홍화, 다홍색은 소목으로 염색한다고 한다. [탁지준절 1749년]에서는 다홍색과 홍색은 홍화의 오미자로, 목홍색은소목, 울금, 백반, 당황단으로 염색한다.

 

▲ (왼쪽부터)운학금환수(雲鶴金環緩) 중요민속문화재 제2-5호. 시대미상.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심동신금관조복 (沈東臣金冠朝服) 조선시대.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박물관-[출처] 서울디자인총괄본부. 2008. 서울색 정립 및 체계화

 

▲ (왼쪽부터)무령왕비 베개. 국보 제164호.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백제, 왕세자입학도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07호 고려대학교 -[출처] 서울디자인총괄본부. 2008. 서울색 정립 및 체계화

 

청색의 소재
식물 : 쪽, 닭의장풀, 누리장나무 열매
광물 : 청금석, 석청


청색의 의미
음양오행설에 의하면 방위로는 동쪽, 계절로는 봄
목(木)에 속하여 간에 영향을 준다.
태양이 솟는 동방을 의미, 강한 생명력을 나타내는 양기가 가득찬색으로 액막이에 사용
생명의 표현으로 불행을 쫓음, 복을 끌어들이는데 이용
혼례에 쓰임

청색의 활용
『한단고기』「단군세기」에 청색옷을 입었다는 내용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문헌상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삼국시대 : 관복 서열이 중, 중상위의 색으로 사용
고려시대~조선시대 : 왕의 복색, 상위의 색

[삼국지 위지동이전] 삼한시대 청색의복착용의 기록

 

▲ (왼쪽부터)담청색직령(淡靑色直領) 중요민속문화재 제3-1호. 시대미상. 해인사,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白磁 靑畵‘弘治二年’銘 松竹文 立壺) 국보 제176호. 조선시대. 동국대학교박물관-[출처] 문화재청

 

▲ (왼쪽부터)제갈공명초용병 삼국지연의도(三國志演義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39호. 조선시대. 서울역사박물관, 패옥(佩玉). 중요민속문화재 제2-6호. 시대미상.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출처]문화재청

 

 

황색의 소재
식물 : 치자, 울금, 황백, 석류, 귤, 갈대, 양파, 봉선화, 괴화, 물푸레나무, 옻나무, 노목, 팥배나무, 소귀나무, 조개풀, 황련, 금잔화, 뽕나무, 개나리나무껍질, 등황
광물 : 황토

황색의 의미
방위로는 중앙, 계절로는 6월
토(土)에 속하여 위장계통에 영향을 줌
빛의 색이면서 만물을 소생하는 흙의 색이라 하여 중국에서는 왕의 복색에주로 사용하며 우리나라의 사용을 금하였었다.

황색의 활용
고구려 : 악공과 무용가의 옷에 사용,
신라~고려 : 진덕여왕 이후 황색금지, 황색은 왕의 복색
[규합총서]
‘팥배나무 껍질을 벗겨 진하게 고아 백반가루 타 종이에 들이면 노란빛 곱기가 치자보다 훨씬 뛰어나다.’

 

▲ (왼쪽부터)전황후황원삼(傳皇后黃圓衫). 중요민속문화재 제49호. 대한제국시대. 세종대학교, 난봉화문단겹장옷. 중요민속문화재 제37호. 조선시대.국립경주박물관-[출처]문화재청

 

▲ (왼쪽부터)일월반도도 병풍(日月蟠桃圖 屛風). 보물 제1442호. 조선시대. 국립고궁박물관,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申潤福筆 風俗圖 畵帖) 국보 제135호. 조선시대. 간송미술관-[출처]문화재청

 

주미옥(가든 디자이너·아이비전솔루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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