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철 한국도로공사 조경팀장
‘힐링’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도, TV 속 다큐에서도, 심지어 힐링이 필요하다는 노랫말에서까지도 온통 세상살이에 지쳐있는 사람들을 위한 치유수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내면의 깊은 상처를 어루만지며 숨 가쁘게 달려왔던 지난 시간, 버겁기만 한 걱정과 지쳐버린 관계를 조심스레 내려놓게 만드는 달콤한 그 ‘힐링’이라는 단어에 너 나 할 것 없이 참 열심히도 빠져들었다.

갑갑한 도심에서 벗어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쭉 뻗은 도로를 달리는 상상, 사실 그것만으로도 힐링은 멀리 있지 않다. 그래도 ‘힐링’이라 하면 자연스레 숲 속에서 느끼는 평온함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우리가 잃어버린 궁극의 낙원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근래에는 수목원에서도 ‘힐링’을 접목시킨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시민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어 이 같은 현상을 실감케 한다.

삶에서 묻어난 피로를 완화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는 수목원의 효과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최근 대전의 한밭수목원에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수목원에서의 긴장감 해소와 심리적 안정 정도가 도심지보다 4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으며, 보기만 하는 것보다 직접 산책할 때 그 효과가 배로 늘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다. 수목에서 방출하는 피톤치드는 사람에게 흡수되면 인체에 해로운 균을 살균하는 작용을 하며, 수목의 향기와 수액에 포함된 테르핀계 물질은 소독제, 완화제로도 뛰어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학으로 증명된 것보다 더 큰 치유효과는 내면으로 집중하게 만드는 자연의 힘이 아닐까 싶다.

힐링(치유)은 사전적으로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한다’는 의미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병은 몸이 아니라 도시민들이 가진 마음의 병이다. 마음의 병을 치료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바로 자연 속에서 가지는 사색과 명상의 시간이다. 일상을 벗어나 자연이 주는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삶을 가만히 관조하는 여유를 가져본 적이 언제였던가.

필자가 몸담고 있는 직장에도 힐링을 통해 방문객들의 마음의 병을 다스리도록 도움을 주는 수목원을 운영하고 있다. 국민에게 자연을 돌려주기 위해 다양한 생태체험을 할 수 있는 녹색문화컨텐츠를 개발하여 수목원의 기능을 다하고 있는 고속도로의 숨은 진주, 한국도로공사수목원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도로공사수목원은 1973년 호남고속도로 건설 당시 발생된 유휴지를 활용하여 전주나들목 인근에 30만여㎡ 규모로 조성되었다. 초기에는 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훼손된 생태복원용 수목과 잔디의 생산, 공급을 위한 순수 묘포장 기능으로 출발하였다. 1983년 이후 식물종을 수집하여 부지 일부에 전문수목원을 조성, 1992년부터 일반인에게 무료로 개방한 것을 계기로 점차 자생식물 중심의 식물원과 자연학습원으로 발전하였다. 2004년 산림청에 정식 수목원으로 등록된 이래 2011년에는 멸종위기종의 보호와 증식을 위해 환경부에서 지정하는 ‘서식지외보전기관’의 역할을 수행하며 오늘 날 연간 25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공기업 유일의 수목원으로 발돋움하였다.

수목원은 무궁화원, 장미원, 들풀원, 약초원 등 15개의 주제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13년 현재 192과 3410종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어린이들을 위한 여름생태학교를 열어 생태체험을 통한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매달 시민단체와 함께 생태해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지역사회를 위한 친환경 사회공헌에도 앞장서고 있다. 작년에 새롭게 단장한 로도덴드론가든도 올 여름 시원하게 내린 비를 맞아 내년 봄이면 장관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에는 멸종위기종을 위한 서식처 조성공사가 한창이다. 종 보전은 물론, 지역민의 지친 일상까지 위로해주기 위한 수목원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수목원 방문객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수요에 부응하고자 올해 5월부터는 개방시간을 연장하고, 가족단위 방문객들을 위해 주말까지 확대 개방하여 더 많은 지역민들을 위한 치유와 행복 추구 열풍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

여름 내 뜨겁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언젠가부터 귀뚜라미 울음으로 바뀌더니, 노랗게 물든 계수나무 잎 달달한 향기가 코 끝에 맴도는 가을이 왔다. 이번 주말에는 자연의 생명력이 주는 살아있는 위안, 도심 속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 가까운 수목원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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