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백두대간 육십령 생태축이 88년 만에 다시 연결됐다.

전북 장수군과 경남 함양군을 연결하는 육십령(六十嶺)은 백두대간의 연결 능선 중의 하나로 여러 가지 전설과 역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생태적, 지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88년 전 일제는 대한민국의 정기를 끊겠다고 육십령 고갯마루를 깎고 길을 내어서 그동안 백두대간의 기운이 잘리우는 형국이었고 생태계의 순환에도 장애가 됐다. 그랬던 것이 친환경터널을 조성하고 성토를 해서 원래의 높이대로 조성하고 주변 식생과 같게 복원하여 생태축을 연결했다.

육십령은 해발 700m가 넘어서 구름도 쉬어 넘는다고 하며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악인이라면 반드시 다녀오는 코스가 되며 영호남이 소통과 교류를 하는 고개이다.

육십령에 새겨진 전설과 역사가 많다. 옛날에는 고개가 하도 험하고 도적떼들이 많아서 재물과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아서 산 아래 주막에서 며칠씩 묵었다가 60명 이상의 장정이 모이면 죽창과 몽둥이로 무장을 하여 무리를 지어 넘어야 했던 고개라고 해서 ‘육십령’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육십 개의 고개를 넘어야 된다고 해서 ‘육십령’이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안의감영에서 이 고개까지가 60리가 되고 장수감영에서도 똑같이 60리가 되어서 ‘육십령’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경상도 신랑이 전라도 규수에게 장가를 들어서 살다가 고향에 다니러 갔다가 사고를 당하게 되자 부인이 육십령을 바라보는 망부석이 된 전설도 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 국경의 요새지로 할미성터와 봉화대 자리가 지금도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조억영이라는 장수가 그 할미성과 봉수대를 지키며 왜병을 주살, 수차례 격퇴시켰으며 나중에 왜병이 쏜 유탄에 맞아 육십령에서 전사를 하였고 그의 부인도 이전에 육십령에서 숨지는 일이 발생해서 나중에 같이 육십령에 모셔졌고 조억영 장수의 전적비가 세워졌다는데 이제는 없어지고 기록으로만 남아있다고 한다.

이번에 복원된 육십령에는 아직 복원해야 할 것이 더 있다.

할미성과 봉화대를 다시 만들어서 역사를 배우게 하고 전설과 역사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완성하여 육십령에 새로운 생명을 넣어주는 일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육십령의 복원이 완성되는 것이다. 육십령을 지나가는 관광객이나 등산객들이 막연히 통과하는 장소보다는 의미를 알고 가면 더욱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소백산맥에는 육십령을 비롯하여 죽령, 조령, 추풍령, 팔령이 대표적인 고개로 알려져 있다. 작년에 복원된 이화령 이후로 두 번째 복원된 백두대간 생태복원 사업이 앞으로도 계속 된다고 한다. 생태계 복원을 위한 물리적인 사업도 필요하지만 그곳에 담겨진 역사와 전설에 대한 스토리텔링도 함께 복원하면 더욱 빛이 날 것 같다.

▲ 김부식(본사 회장·조경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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