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철 한국도로공사 조경팀장
근래에 들어 대부분의 학문과 기술 발전 분야를 위시하여 정치, 예술 등 모든 분야에 있어 통섭(consilience)과 융합이란 키워드가 신드롬처럼 인식되어 너나할 것 없이 앞 다투어 해당분야의 기조로 삼고 있는 추세이다. 서로 다른 다양한 학문 간의 경계를 허물고 융합하여 인문학적 지식이 경영학에 도입되기도 하고 경영학과 공학이 융합하기도 한다.

에드워드 윌슨에 의하면 인간의 지식은 본질적으로 통일성을 가지고 있어 자연과학, 사회과학, 예술, 종교 등에 이르기까지 지식의 대통합을 통해 지식혁명이 가능하다고 한다. 모든 학문의 바탕에는 과학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고, 때문에 과학으로 이들을 모두 설명 가능하다는 것이다. 과학이란 큰 틀에서 이들의 통합은 가능할 것이란 주장의 논거가 그럴듯할 수도 있고 다소 억지스럽다 할 수 있겠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분야에서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 위한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듯 싶다.

애초에 조경이란 학문의 출발이 독립적이지 못하고 한동안 표방해왔던 ‘종합과학예술’이란 단어에서 보듯이 다양한 지식과 기술이 종합적으로 동원되어야 하는 것에는 틀림이 없는 듯하다. 단순하게만 떠올려봐도 건축학, 토목공학, 생태공학, 도시공학, 순수예술, 환경공학, 심리학 등 조경학과 인접한 학문과 분야는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다양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조경설계분야에 있어서 크로스오버가 진행되어 왔으며 어느 순간부터 조경현상설계 분야에 수많은 유명 건축가들의 참여가 두드러져 그 경계의 구분이 모호해져 버린 것 또한 오늘날의 흐름인 것이다.

사실 이러한 흐름은 전통적 조경의 범위와 틀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문제와 이슈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관련자들의 욕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상지 주변 환경과 땅을 이해하고 읽어내어 설계가 혹은 시공가로서 말하고자 하는 스토리를 하나하나 잘 엮어내는 일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며 항상 성공적일거란 보장 또한 없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다양한 분야와의 통섭적 프로젝트(혹은 단순 협업적 프로젝트 일지라도)를 진행하다 보면 예상외로 인접 분야에 대한 편견의 벽이 높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필자 또한 조경인의 한사람으로서 지난 30여 년간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관리하면서 항상 고뇌에 쌓이고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 순간의 대부분이 프로젝트 자체에 대한 일련의 과정도 있겠으나 인접분야 혹은 타 분야에서 바라보는 편견을 이해 설득 시키는 과정 또한 만만치 않았다는 것이다. 동업자적 위치인 경우는 그나마 나은 경우이고 좀 더 높은 의사결정권을 가진 상대의 경우는 난감한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 같다. 프로젝트의 우선순위, 가치 평가, 심지어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한 당위성을 묻는 일차원적 질문에 부딪힐 때 마다 현실의 한계가 아직도 높고 많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통섭적 지식의 축적과 융합적 이해의 과정이 더욱 절실하다고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융합의 근본적 종착점은 단순하고 물리적인 더하기가 아닌 화학적 결합을 통해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나타낼 때 더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엮임만으로 만족하기엔 진정성이 부족하다.

편견에 대한 소름돋는 최근의 사례를 살펴보자. 몇 해 전 영국의 한 경연대회에 출전하여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수잔 보일의 사례를 보며 우리 모두 편견의 늪에 얼마나 깊이 빠져 있는 건지 새삼 되새긴 적이 있다. 무대 위에 올라온 뚱뚱하고 예쁘지 않은 시골 노처녀를 보며 전문 가수가 꿈이라는 그녀의 말에 모두가 냉소적 태도로 비웃었으나 노래를 시작한 순간 그녀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대중 모두가 얼어붙어 찰나의 정적에서 열광적 환호로 이어지는 장면을 보며 필자 또한 힐링의 느낌과 함께 창피함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이었다. 세상을 살아가며 가질 수 있는 편견의 덫에 빠지지도, 남을 빠트리지도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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