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숭고의 개념에 기초하여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의 미적 특질을 해석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조경사적 맥락에서 숭고의 미학적 역할을 밝히고, 이를 통해 도출된 논점들을 바탕으로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의 미적 특질에 접근하였다.

먼저 숭고의 개념사를 고찰하여 이 연구에서 주목할 ‘감동적 효과, 이중적 정서, 재현 불가능한 것의 재현’으로서 숭고의 의미를 개관하였다(Ⅱ장).

이어서 이 연구는 조경사적 맥락에서 숭고의 미학이 중요하게 작동한 시기와 사조를 통시적으로 검토하여 숭고의 미학이 조경사에서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를 진단하였다(Ⅲ장).
18세기 말 낭만적 픽춰레스크 이론가들의 픽춰레스크 개념은 아름다움에서 숭고로의 이행 과정에 위치한다. 낭만적 픽춰레스크 이론가들이 픽춰레스크의 속성이라 여긴 거칠음, 갑작스런 변화, 불규칙함은 이전의 브라운 양식의 정원이 지향한 부드러움 및 단조로움과는 다른 특질로, 야생 자연의 거칠고 황량한 특성인 숭고의 특질을 지닌다. 즉, 낭만적 픽춰레스크 개념은 이전에 향유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거칠고 갑작스러우며 불분명한 숭고의 특질을 정원 내에 향유의 대상으로 도입하고자 한 이론적 시도였다. 물론 이들이 도입하고자 한 야생은 무시무시하고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실제 야생이 아니라 길들여지고 완화되어 미적으로 향유 가능한 야생이었다.
 

▲ 뒤스브르크 노드 공원

19세기 미국에서 숭고의 개념은 의미의 변천을 겪는다. 신대륙의 황야(wilderness)를 대면함에서 오는 장엄하고 거칠고 난폭한 속성을 설명하는 개념이었던 숭고는 기독교적으로 수용되어 초월주의와 결부되면서 평온, 평정심, 투명성, 순결 등의 종교적 특성을 포괄하게 되었고, 이 초월적 숭고(transcendental sublime)는 신대륙의 황야와 관련한 미적 범주였다. 옴스테드는 황야의 초월적 숭고함을 찬양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공원 설계에서는 목가적 풍경화 양식을 채택했다. 숭고는 야생의 자연이 지닌 압도적 힘의 재현이므로 길들여질 필요가 있으나, 한편으로 숭고는 인간을 넘어선 힘과 연관시키고자 하는 열망이기 때문에 설계 행위라는 길들임은 인정될 수 없었다. 이러한 모순의 결과, 숭고는 아름다움이라는 형식 미학에 어느 정도 포섭되는 초월적 숭고라는 혼합물로 나타나게 되었고, 이것이 설계 기작 즉 인간의 손길이 최대한 보이지 않는 옴스테드식의 자연주의적 경관을 생산해낸 추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옴스테드가 다룬 숭고한 대상지는 픽춰레스크 시대의 정원가들이 다뤘던 부지와 그 성격이 달랐다. 「센트럴 파크」 부지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쓰레기로 뒤덮인 도시의 버려진 곳이었다. 조경가가 순치해야 할 숭고한 대상지는 이제 원생의 자연뿐 아니라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파괴된 부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옴스테드는 이러한 부지를 목가적 풍경으로 채색하여 감추어 버림으로써 18세기 픽춰레스크 미학의 회화적 관행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지예술가들은 자연에 대한 낭만적 신화에서 벗어나 자연에 대한 인식의 확장을 이루어냈다. 로버트 스미슨은 그의 후기 작품에서 녹색 신화가 덧씌워진 자연이 아니라 산업화에 의해 파괴된 자연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기존 대지예술 작품의 무대가 되어 온 사막이 아니라 광산이나 채석장처럼 산업화에 의해 파괴된 장소에서 작업하였고, 산업화에 의한 훼손을 낭만적 자연의 신화로 숨기거나 위장하려 하지 않고 이를 보다 가시화하려 하였다. 파괴되고 유기된 자연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환경에 대한 인식을 확장했던 것이다. 숭고함은 이제 원생의 자연에서 드러나는 공포심이나 신성의 발현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파괴된 공간에서 드러나는 추함과 공포심이다. 옴스테드가 유기된 공간을 ‘그림 같은 자연’의 환상으로 은폐하려 했다면, 스미슨은 유기된 공간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회화적 자연관을 벗어났다.

마지막 장에서는 전반부의 조경사적 고찰을 바탕으로 하여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에 잠재된 숭고의 계기를 발견하고 해석하였다(Ⅳ장). 특히‘야생 식물’과 ‘노화되어가는 산업 구조물’의 관계로부터 감각적 체험, 시간성의 현시, 감동적 체험을 논의하였다.

첫째, 노화되어가는 산업 구조물의 감각과 야생 식물상의 감각은 변증법적 충돌을 일으켜 독특한 ‘감각적 체험’의 장을 조직한다. 노화되어 가는 금속과 콘크리트의 물성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은 생명을 담지하는 식물이라는 감각과 변증법적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변증법적 관계에서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은 조화(harmony)를 이루고 있다기보다 상호 작용(interaction)을 주고받는다.‘자연―식물의 침투―에 저항하는 산업 구조물의 건축적 힘’이 드러나며 동시에 ‘식물이 산업 구조물에 침투―생태적 전략―하는 힘’도 명백히 드러난다. 즉 산업 구조물과 식물상은 상호 작용을 주고받으면서도 각각의 정체성이 손실되지 않고 긴장 관계를 이루는 감각적 장을 조직한다. 「뒤스부르크 노드 공원」의 식재는 생태적 교란 상태에 있는 부지에 외래종이 침입하고 적응하여 자연선택과 유사한 프로세스를 갖도록 유도되어, 토착종과 외래종은 톡특한 아상블라주를 이루게 된다. 「뒤스부르크 노드 공원」은 ‘공업적 교란의 기억’과 ‘공업적 쇠퇴의 생태적 회복’모두를 반영하고 있다(그림 1 참조).

둘째, 산업 구조물과 식물이 맺는 관계는 시간에 대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여 방문객들에게 ‘불확실한 시간성’을 체험하게 한다. 산업 구조물은 산업 시대의 유산이라는 과거의 것이다. 동시에 폐허 상태의 구조물은 건축물의 부분이나 파편으로서 현존하는 실재이자 미래에도 남아 있을 물질이므로 미래적 자각을 가능하게 한다. 한편, 야생이라는 식물상은 과거와 미래의 시제를 동시에 갖는다. 야생은 부지의 기원 상태라는 점에서 과거적이고, 동시에 야생의 식물은 생성과 생명의 상징이자 산업 부지를 생태적으로 치유할 것이라는 구원의 실체로서 미래적 자각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대지는 야생의 상태로 시작하여 인간에 의해 개발되고 소임을 다하면 유기되어 황무지가 되었다가 다시 야생지의 상태로 돌아오는 주기를 갖는다. 이러한 주기 내에서 야생의 식물은 과거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지표가 된다. 과거와 미래에 대한 자각을 내포하는 산업 구조물과 야생의 식물은 서로의 토대가 되면서 불확실한 시간성을 조직한다. 산업 구조물에 야생 식물이 결합된 풍경은 산업 구조물이 있던 당시의 시간대이면서 그 이전의 원시적 대과거이기도 하며 야생 식물이 점거할 부지의 미래까지 한 번에 형상화하고 있다. 즉,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은 여러 시간대를 한 공간 내에 물질적 실체를 통하여 구현해냄으로써 현대적인 숭고한 시간을 조직하고 있는 것이다(그림 2 참조).
 

▲ 선유도 공원

마지막으로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은 오염으로 얼룩진 부지가 끊임없이 본래의 상태로 회복하려는 ‘자연의 치유력’을 형상화하여 방문객들에게 숭고한 감동을 준다.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에서 감동의 효과는 산업 구조물의 장엄한 스펙터클의 위용이 아니라 생명감에 의해 발생한다.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은 유기되고 퇴락한 후기 산업 부지를 생태적 수단으로 치유하려는 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경관으로, 자연 본유의 끊임없는 소생 능력의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이 자연의 치유력의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해석은 전통적 자연관에 대한 비평적 시선을 제기하는 최근 생태비평(eco-criticism)의 경향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시의 타자로서 황야를 인식하는 관례에 대한 대안으로 도시 내에서 녹색 자연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있다.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에서 공업 부지 위에 야생적 식물이 솟아나있는 광경은 문명에 의해 개발되어 기능이 다하여 버려진 공간이 생명을 싹틔워 본래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자연의 회복력을 형상화하고 있고, 이 생명감이 유기된 부지의 회복 가능성이라는 감동적 효과를 일으킨다.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은 퇴락되고 유기된 공간을 그대로 드러내고 동시에 생태적 수단을 이용하여 자연의 회복력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광경은 방문자로 하여금 산업 경관 내에서 녹색 자연을 체험하게 하면서 놀라움과 감동의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포스트 인더스트리얼 공원에서 발견되는 숭고의 마지막 계기이다.

*게재권호 :  한국조경학회지 제40권 4호, 통권 152호 p78-89

 

저자 : 이명준 서울대 환경대학원 협동과정 조경학
           배정한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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