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과정과 경관조례
통상의 정책과정을 보면 [ 과제의 인지 ] → [ 과제 설정 ] → [ 정책안의 책정 ․ 검토․ 결정 ]이라는 흐름으로 전개된다(또한, 정책론, 정책과정론 등의 학술분야서적에서도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과제를 인지하는 단계이다.

어떠한 것이 문제가 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곧 실효성이 있는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그렇다면, 경관조례는 어느 단계에 해당할까. 바로 세 번째 단계인 ‘정책안의 책정 ․ 검토․ 결정’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이 흐름에 비추어 아주 짧은 가상 시나리오를 써보자.

 

과제의 인지

과제 설정

정책안의 책정 검토 결정

경관의 훼손 및 파괴

경관조례 제정에 의한 대응

경관조례 제정

 


각 단계에서는 여러 주체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주민, 행정, 전문가, 기업, NPO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이 관여하게 되는 것은, 경관의 보전 및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지역의 주체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단계별로 행해야 하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의견수렴과정이 필요하게 된다. 설문조사나 인터뷰, 타당성 분석 및 조사, 자문 및 심의 등의 회의 등이 그것이다.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의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인데, 그것은 현장에 거주하는 주민이나 그 현장에 현재 영향을 끼치고 있거나 과거에 끼쳤거나 앞으로 끼칠 예정이 있다고 판단되는 당사자들에게 의견을 묻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의 연구용역주체나 업체에서 길어야 며칠간 행해지는 설문조사나 인터뷰, 사진촬영 등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게 해준다.

행정에서의 정책과정이 이러하다면, 민간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과제의 인지

과제의 제기

정책 형성 요구

경관의 훼손 및 파괴로 인한 삶의 터전의 붕괴

과제해결을 위한 법제도의 미비

경관조례 제정


민간과 행정과 기업에서 행하는 일련의 행위로 인해 경관의 훼손 및 파괴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 주민들이 인지하고 그 정도에 대해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훼손 및 파괴가 발생하는 원인 중의 하나로 관련 법제도가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과제로 제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마지막 단계에서는 경관조례를 제정할 것을 행정에 요구하는 것이다.

간략하게 행정과 민간에서 정책과정상에서 경관조례에 이르기까지 가상 시나리오로 표현해보았다. 물론, 실제 현장에서는 더 섬세하고 정교하면서 부드러운 수법들이 동원되거나 구사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문가(혹은 전문가 집단)나 기업 측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돕는 일’ 뿐이다. 대개 이들은 지역주민이 아니기 때문에 해결 주체가 되지 못하므로, 고작 할 수 있는 일이 ‘돕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 역할을 구분하여 그 역할에 맞게 행동할 때 지역 고유의 경관을 형성해 나가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역할 분담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마을과 도시는 어떠한가? 여러분들의 지자체는 어떠한가?

경관조례의 제정에 이르기까지 여러분들은 소위 ‘해당 주체’에 속하는가? 아마 십중팔구는 아닐 것이다.

경관조례의 제정은 대개 행정에서 행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이러한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경관조례의 제정은 행정에서 담당하는 것이라는 통념 때문에, 조례를 제정하는 공무원(대개 주무관)도 피상적으로 조례를 제정하게 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지자체에서는 경관계획 수립 연구용역의 끝부분에 경관조례(안)를 제시하도록 요구하기도 하지만, 연구진조차 ‘경관’에 대해 식견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일본의 특정 지자체의 경관조례를 베끼거나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역할분담의 예 : 2013년 주민이 만드는 의왕시 마을만들기 지원조례
필자는 최근 2월~3월 초까지 총 7회에 걸쳐 ‘주민이 만드는 의왕시 마을만들기 지원조례’를 진행하였다(주민이 만드는 조례로는 국내 최초일 것이다.). 딱딱한 느낌의 조례를 주민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필자의 몫이었지만, 실제로 의왕시에 필요한 내용으로 조례를 구성하는 것은 참여한 주민들의 몫이었다. 필자의 글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급하였듯이, 전문가에 해당하는 필자는 의왕시 주민이 아니어서 의왕 지역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작성할 수 있는 주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례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총칙에는 대개 ‘목적, 정의, 시장의 책무, 시민의 책무’ 이렇게 4가지를 규정하는 조항이 포함되는데, 이 4개 조항으로 구성되는 총칙을 작성하는 데에는 무려 10시간이 소요되었다. 토요일 오전 10시 반에 시작하여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끝난 것이다.

조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조례의 총칙이 정해지면 나머지 조항들은 총칙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과 같다. 그만큼 중요하기에 ‘총칙’을 정하는 데에는 참여한 시민들의 상당한 토론과 발표가 있었고, 조례 문구를 다듬어 당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문장으로 다듬는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3번의 짧은 모임과 3번의 종일 모임, 그리고 최종 검토모임을 거쳐 조례가 만들어졌고, 의왕시에 전달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자리에는 공무원이나 시의원은 인사만 하고 도망가기 바쁘다. 80년대부터 그래왔듯이 시민들이 자신들을 향해 무언가 지적을 하고 불만을 얘기하려고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임에 두 번 참여한 시의원과 공무원은 스스로 손을 들고 나서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할 정도로 마음의 빗장을 열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차후에 조금 자세히 다룰 예정이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제정되는 경관조례나 마을만들기 관련 조례는 일부 소수의 민간 활동가, 전문가가 관여하지만 대개 행정에서 제정하고 있기에, 의왕시의 사례는 기존의 제정과정과 다른 특징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주민이 만드는 의왕시 마을만들기 지원조례’ 진행 모습왼쪽 : 조례 ‘제1조 목적’을 만들고 있다. / 오른쪽 : 조례 제정 배경에 대한 주민간의 논의 기록

 ‘경관조례의 운용’을 마치면서

경관조례에 관하여 최대한 다양한 시각으로 정리해보았다. ‘경관’이라고 해서 ‘시각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곧 지역과 도시의, 마을과 동네의 역사와 문화와 환경과 삶이 함께 어우러져 나타나는 고유의 표상으로써 ‘경관’을 정리하고자 노력하였다.

‘경관조례’가 있는 국가가 일본과 우리나라에 불과하여, 부득불 일본의 사례를 많이 정리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일본가 우리나라의 법체제가 유사하여 행정을 담당하는 독자에게는 실무적 차원에서의 도움이 조금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아울러, ‘경관’을 만들어가고, 가꾸어 나가고 하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가에 대해 궁금해 하는 독자에게는 그 흐름에 대해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 호 부터는 경관과 관련하여 인접 분야별로 우리에게 필요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소개할 예정이다. 어찌 보면 ‘경관을 말하다’의 1부를 마치는 셈이다. 필자의 졸고를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린다.

 

오민근(한국조경신문 편집주간·지역과 도시 창의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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