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건축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공간건축사사무소가 장기적인 건설경기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지난 2일 최종 부도처리됐다. <사진: 최진욱 기자>

최근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가 장기간 건설경기 불황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부도를 냈다. 한국건축의 상징인 공간건축의 몰락으로 건축업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건설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이 뚜렷해지면서 건설업계를 넘어 설계업계 등 연관업계의 밑바닥 경기가 더 얼어붙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심지어 연쇄도산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우려는 건축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조경설계, 엔지니어링 등 설계분야 전반에 걸쳐 확산되고 있다.

특히 건축사사무소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조경설계 분야의 위기감은 그 어느때보다 높다. 건축사사무소와 고질적인 설계비 미수 문제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힘겹게 경영 위기를 이겨내고 있는 조경설계 회사들에게 공간건축과 같은 대형 건축사사무소의 붕괴는 더 큰 위기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공간건축은 우리나라 1세대이자 대한민국 건축설계 상징적인 건축사사무소이자 2011년 기준으로 매출액 496억 원을 기록한 업계 6위권의 대형 건축사사무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공간건축은 지난해 12월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데 이어 지난 2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이제 법원의 공간건축 기업회생절차 개시 여부 결정만이 남은 상태다.

공간건축의 부도는 금융위기 이후 장기화된 건설경기 침체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건설경기 악화로 전년도에 비해 미수금이 급증한데다 설계업체간 수주경쟁이 지속되면서 경영 위기가 찾아왔다.

국내 부동산 침체로 시장에 한계를 느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북아프리카와 중동 등 해외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이마저도 용역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 했다. 특히 서울 양재동 화물터미널개발사업(파이시티) 설계비용을 받지 못했던 것이 결정타였다.

결국 공간건축의 1·2 금융권 부채가 무려 550억 원 규모로 늘어나면서 결국 파국을 맞이하게 됐다. <3면으로 이어짐>

공간건축의 몰락을 맞은 건축업계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경영 악화로 직원 월급을 제때 못 주는 대형 설계회사 많다”는 이야기는 업계에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건설경기 위축으로 할 일은 많지 않은데 건축사사무소는 계속 늘어나며 경쟁은 치열해 졌다. 대한건축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중 건축사사무소 한 곳이 수주한 설계 건 수가 평균 세 건도 채 안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고 있는 상태다.

대형 업체들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는 턴키방식 도입 확산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활성화 등에 따른 취약한 발주 구조와 설계업체들 간의 양극화 등 환경적인 문제로 설계사무소들의 경영 악화를 가져왔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건축사사무소의 위기로 조경설계분야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당장 이번에 부도를 맞게된 공간건축과 함께 일했던 조경설계업체들의 받지 못한 설계대금 문제가 불거졌다.

공간건축으로부터 제대로 설계대금을 받지 못한 조경설계사무소만도 최소 20여개 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액수만도 적개는 수 천 만원에서 많게는 5~6억원 가량된다.

공간건축에 설계 미수금 문제를 안고 있는 한 조경설계 회사 관계자는 “그동안 받지 못한 설계 대금을 다시 받을 수 있을지 답답하다”라며 “일단 공간건축의 법정관리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 뿐 아니라 조경설계 업계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사실 조경설계회사들의 건축사사무소에 대한 설계대금 미수 문제는 비단 공간건축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이 더 큰 문제다.

조경설계업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의 경우 집행이 나름대로 되지만 건축사사무소의 경우 설계대금을 제대로 받기 힘들다. 1년은 고사하고 2년 이상 지급이 미뤄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고 발주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기에 강력하게 대응하기도 어렵다”고 하소연 했다.

그나마 늦게라도 약속된 설계비를 지급받으면 다행이다. 결국 약속된 대금에 훨씬 못미치는 설계비로 조정되 지급받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이는 조경설계 대가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탓이 크다. 발주처별 조경 설계비 대가 기준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비현실적인 설계 용역비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건축사사무소와의 협력 사례에서 이같은 문제는 더욱 빈번히 발생하고 있어 조경설계 회사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는 건축사사무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 밖에 없는 조경설계 회사의 발주 구조 때문이다. 

대부분 조경설계회사들이 대형 건축사사무소들로부터 수주를 받아 설계를 수행하는 비중이 높다. 공원 하천 등 조경 단독 설계 발주 규모가 적고 대형발주의 경우 건축사사무소와 함께 설계를 수행해야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컨소시엄 형태가 아닌 대부분 하도급 발주 형태로 업무가 진행되기 때문에 부당한 하도급 관행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조경계 일부에서 조경사회나 환경조경발전재단 등 조경단체에서 회계법인이나 자문변호사를 두고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13일 열린 ‘제9회 조경기술세미나’에서 박명권 그룹한 어소시에이트 대표는 ▲국내 조경설계시장의 축소와 수주기회 감소 ▲발주제도의 문제점 ▲국내 조경설계 대가의 문제점 등을 꼬집으며 조경설계 위기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국내 조경설계사무소도 좁아진 건설시장에도 불구하고 약 800여개의 사무소와 2만여 명의 조경기술인력이 포진해 있는 등 포화상태인 조경설계 시장에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나마 일감을 주던 건축설계 회사들이 무너지고 있어 조경설계 회사들은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이번 공간건축 몰락 소식을 접한 박명권 대표는 “이는 건축사사무소 만의 위기가 아니라 엔지니어링, 설계업계 전체 위기다”며 “때문에 분야를 막론하고 머리를 맞데 설계업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건축설계회사와 조경설계회사의 수평적 관계형성과 건축사사무소에 대한 의존율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지금과 같은 하도급 형태의 구조에서 벗어나 조경설계 회사가 발주처로부터 직접 설계비를 받을 수 있는 직발주 시스템 등이 조경에 적극 도입될 필요가 있다. 또 조경설계의 발주처와 방식, 설계 영역 등을 점차 확대해 수주 스펙트럼을 넓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간건축 부도 사태를 맞아 야기된 건축설계 시장의 위기의식이 조경설계시장을 타격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응해 조경계에서도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에 대해 모두가 고민해야할 시점이다.

공간건축은 1960년 건축가 고(故) 김수근(1931~1986) 씨가 설립한 이 사무소는 우리나라 현대건축 1세대 사무소로 1960~80년대에 활발히 활약했다. 대표작으로는 세운상가, 타워호텔, 서울올림픽 주경기장,광주월드컵경기장, 경동교회, 주미 한국대사관, 서울중앙우체국청사, 인천 투모로우시티 등이 있다.

김원, 민현식, 류춘수, 승효상, 이종호 등 현재 활동 중인 쟁쟁한 건축가들을 배출한 한국건축의 상징. 우리나라 최초의 건축전문지인 '공간'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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