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오병(아썸 대표, 생태학박사)
최근 들어서 유난히 성폭력 뉴스가 많아졌다.

조폭들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기업형 폭력조직으로 진화하고 있고, 학교폭력은 이전보다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IT시대에 사이버 폭력까지 등장해서 폭력의 양상이 복잡해지고 있다. 흉악범죄가 늘어나니 공권력도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 국가 간의 폭력사태(전쟁)도 첨단기술의 발전으로 대량살상무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문명의 발전과 폭력의 증가는 등가식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든다.

‘폭력(violence)’의 정의는 사람이 사람의 신체에 가하는 물리적 강제력을 이용한 공격행위이다. 광의의 폭력에는 신체에 위해를 가할 것이라 예고하여 정신적 공포감을 주는 협박도 포함된다. 그래서 인간폭력의 본질은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철학, 신학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생태학적 시각에서 보면 인류역사는 곧 폭력의 역사이다. 생태계에서 모든 생물은 먹이경쟁과, 생식경쟁이 필수이며, 그 수단은 대부분 폭력이나 위협에 의존한다. 같은 종내경쟁에서도 좀 더 덩치가 크거나 강한 힘을 가지거나, 두뇌를 써서 폭력의 기술을 갖게 된 자가 경쟁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며, 이는 DNA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되어 진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동물생태계에서 먹이사슬은 폭력적이다. 폭력 그 자체가 생존수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태학적 시각에서 생존을 위한 섭식폭력은 생태계 균형을 이루는 유기물의 이동일 뿐이다. 인간도 예외일 수 없다.

한 사람이 평생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영양물질을 끊임없이 섭취해야 하며, 성장과 생식에 필요한 영양분은 대부분 동물과 식물의 체내에 축적된 유기물을 통해서 얻어진다. 이러한 이종 간의 섭식폭력은 너무나 일반화되어 있어서 아무리 끔찍한 도살행위도 인류학에선 폭력에서 제외하고 있다.

단지 인간이 인간을 먹는 식인행위 만큼은 대부분의 사회에서 금기시되고 있지만, 이도 인류학에서 보면 비교적 최근에 정립된 개념이다. 3~5만년전의 네안데르탈인들의 유골을 보면 그들 사회에선 식인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음을 추측할 수 있는 증거들이 밝혀졌다. 내장과 살코기는 물론, 두개골속의 뇌수와 뼛속의 골수까지 꺼내 먹었던 흔적과 이를 불에 조리했던 명백한 증거가 발견되고 있다. 그들 이후 크로마뇽인의 후예인 현생인류의 문명에서도 식인행위(Cannibalism)의 흔적들은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이러한 식인행위의 폭력이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으로 행하여 졌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고대사회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졌던 살인의 폭력은 성(聖)스러운 제의(祭儀)폭력이거나, 피지배자들에게 공포감을 주기위한 정치적 행위의 정점에 있었다.

고대 이스라엘에 있었던 희생제의(구약에서 아브라함이 아들인 이삭을 신에게 바치려한 제사)나, 고대 인도에서 행해졌던 동물희생제의(Vedas경전에 의하면 브라만 계급은 카스트의 최상위 계급으로서 희생제의의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들)나, 고대중국의 요순시대에도 동물희생제의는 물론이고 사람까지 희생 제물로 바친 기록이 있다.

최근 미국 록키산맥 남부지방에 살았던 아나사지(Anasazi)문명의 유적에서 발견된 인간의 유골을 놓고 인류학자들은 당황함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AD1세기경에 시작되어 14세기경 사라진 아나사지 문화는 콜로라도 계곡 암벽에 거대한 동굴가옥을 짓고 도시국가 형태를 이루었던 북미의 푸에블로 인디언족의 문명이다. 여기에서 출토되고 있는 수많은 인골은 바수어진 두개골, 불에 그을려진 뼈(조리를 한 흔적), 골수를 먹기 위해 깨부순 정강이뼈 등이 수없이 출토되고 있다. 수렵채취생활과 농경생활을 병행하며, 훌륭한 도자기와 벽돌을 만들어 냈던 아나사지 문명은 필시 평화로운 사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수많은 인간을 희생 제물로 삼았던 고대 마야인들과 잉카인들이 침입하여 들어오면서 공포정치를 위한 식인행위가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고 있다. 많게는 1년에 수만 명씩 인간을 희생 제물로 신에게 바치는 행위를 통해 신의 대리인인 왕의 통치를 공고히 하기위한 공포에 기초한 신정정치에 익숙했던 잉카의 난민들은 아나사지에 들어와 지배계층으로 군림했다. 그들은 푸에블로 인디언들을 잡아다 죽이고(1차적 모욕) 그들의 인육을 먹는 행위(2차적 극단의 모욕)를 통해 무자비한 지배를 하였고, 이는 결국 오래가지 않아 문명의 붕괴를 가져왔다.

폭력은 타자를 지배하는데 가장 즉시적이며 효과적인 수단이다. 심지어는 매우 경제적이기도 하다. 1년 내내 농사를 짓거나 힘들게 수렵을 하는 것보다, 거친 폭력을 써서 단숨에 그들의 소유물을 빼앗고, 지속적으로 공포감을 주어 노예로 만들면 자신의 노동력은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聖)스러움의 가면을 쓴 정치적 폭력은 인류사회의 한 특징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오늘날 만연되는 폭력의 근원은 이러한 생태적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코 사형제도와 같은 또 다른 공권력의 폭력만으로 통제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적 우월계층의 무한질주의 탐욕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제도와, 광범위한 사회보장제도의 실현을 통해 사회적 긴장감을 덜어주어야 한다. 1등만이 대접받는 사회 즉, 승자독식의 사회구조에선 난무하는 폭력사회를 치유하기 어렵다는 비관적 생각이 든다.

꿈과 희망을 품고 마음껏 뛰놀며 자라야할 이 땅의 10대들을 경쟁의 지옥으로 몰아넣고 숨조차 쉴 수 없도록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가. 경찰력으로 학교폭력과 폭력사회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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