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네 번째 태풍 ‘산바’가 한반도를 관통하던 지난 17일. KBS 9시뉴스는 전국 현장에서 올라온 태풍피해 기사들로 특집 편성됐다. 그러나 숨가쁜 뉴스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준비된’ 기사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뿌리 묶인 가로수 강풍에 취약’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 뉴스는 이미 지나갔던 세 번의 태풍을 거치며 많은 가로수들이 쓰러진 것을 지적하고자 ‘산바’ 북상시기에 맞춰 사전 기획된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날 9시뉴스 시작부터 연이어 편성된 태풍 관련 특집기사 22건 가운데 20번째에 배치돼 1분49초간 보도됐으므로, 재해뉴스의 성격을 갖는다.

뉴스는 ‘고무밴드를 제거하지 않아 뿌리가 활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태풍으로 나무가 쓰러졌다’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태풍 앞에서 조경수가 쓰러진 원인을 ‘고무밴드 미제거’에서 찾고 있는 기자의 목소리는 ‘부조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이를 뒷받침해 줄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최근 강릉원주대 대학원에서 “고무밴드 미제거구와 제거구를 놓고 4년간 생장량과 발근량을 비교분석한 결과 그 차이가 없었다”는 내용의 박사논문이 발표되었다. 박현 박사의 이 연구논문에 근거하면 고무밴드를 제거하지 않아 뿌리 활착이 덜 됐다는 논리 전개는 타당하지 않은 게 된다.

뉴스에서는 2010년 9월 태풍 ‘곤파스’ 때 뿌리째 뽑힌 조경수 제보화면을 내보내며, 고무밴드를 클로즈업했다. 고무밴드를 제거해 뿌리가 더 빨리 활착했더라면 쓰러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조인 것이다.

그러나 화면에서 보면 쓰러진 대형 소나무들 옆에는 이를 지탱해주고 있던 지주목들도 함께 쓰러져 있었으니, 얼마나 바람이 세차게 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뿌리 활착여부와 관계없이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임을 증명하는 상황이다. 땅 속에 박힌 지주목마저 뽑아버리는 위력 앞에서, 심은 지 1-2년된 소나무의 세근이 힘쓸 여력은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이날 9시뉴스의 다른 기사에서는 태풍 앞에서 나무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쓰러지는지를 보도함으로써 묘한 대비를 이루기도 했다. “강한 바람으로 인해 나무들은 물론 1m 가량 묻혀있던 철제 지주목도 뽑혔다”고 리포트했다. 이처럼 다른 기사는 나무 쓰러진 원인을 강한 태풍에서 찾고 있는데, 정작 문제의 뉴스에서는 고무밴드를 주범으로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현 박사는 석사 때 연구결과를 제시하며 “고무밴드를 제거했을 경우 뿌리분이 힘을 가질 수 없어 태풍에 쓰러질 확률이 더 높았다”고 밝혔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기사가 표면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고무밴드를 제거하지 않아 뿌리가 활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태풍으로 나무가 쓰러졌다’는 메시지와 달리, 기사의 구성은 철저하게 ‘고무밴드의 폐해’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뉴스의 초점이 태풍에 쓰러진 나무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고무밴드를 풀지 않고 심어서 죽은 조경수’에 맞춰졌다. 이는 언론사들이 단골메뉴로 보도했던 일반적인 ‘고무밴드 프레임’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만큼 9시뉴스 태풍특집 기사 22개 가운데 20번째로 방송된 재해뉴스의 모양새를 갖추기에는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

또한 이 기사의 출발은 지역의 한 민간단체의 제보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소재한 환경동식물보존협회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를 근거로 취재가 시작됐고, 제공받은 화면이 그대로 방송을 타기도 했다. 이 협회는 방송 이튿날 자체 블로그에서 ‘동행취재’ 사실을 공표했다.

우려되는 부분은 이 단체의 역대 활동상을 볼때 조경수에 대해 전문적으로 문제제기할 만한 자격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뉴스에도 등장하는 이 협회 관계자는 본보 취재기자가 “고무바가 뿌리 활착을 저해한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데이타를 제시하지 못했다.

또한 협회가 공개하고 있는 각종 동행취재 사례 9건을 살펴보면, 하천수 무단취수, 위험한 부탄가스, 승마연습장 분뇨, 그린벨트 불법훼손, 폐장비 관리 부실, 군 물자 커넥션, 쉼터 뺏은 음식점 등 환경분야에만 국한되고 있지 않았다. 특히 동행취재로 보도된 장소 대부분이 협회가 소재한 경기도 남양주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고 이번 뉴스에 등장하는 곳도 역시 남양주시 호평동 경춘로였다.

정리하면, 지금까지 고무밴드와 조경수목 고사의 연관관계가 입증되지 않았고, 최근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오히려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온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지속적으로 ‘고무밴드 고발론자’들의 언론플레이에 의해 왜곡보도가 계속되고 있으며, KBS의 이번 보도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의 활동 양상은 고무밴드를 제거하지 않은 사례를 적발해 해당 감독관청에 고발하거나 언론에 제보하는 네거티브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올해 유난했던 태풍과 엮으려고 했던 그들의 ‘태풍과 고무밴드로 인한 조경수 고사’에 대해서 KBS는 아무런 검증절차도 없이 편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로 인해 피해받는 선량한 조경시공업체들에 대한 고려도 없었다.

더욱이 기자는 “일부 업체는 땅에 심으면 6개월 안에 썩는 천연 소재로 뿌리를 감싸고 있지만 가격이 비싸 대중화되진 못하고 있다”고 클로징 멘트를 했다. KBS는 이튿날 아침 뉴스광장에서 새로 편집된 뉴스를 내보내며 천연 소재 밴드의 장점을 소개하는 현장 실무자의 인터뷰까지 내보내 해당 제품의 필요성과 우수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기자가 언급한 ‘썩는 소재의 밴드를 생산하는 업체’는 특허기술을 가지고 있어 독점생산 구조여서 특정 제품 홍보를 위한 고발이 아니었느냐는 오해를 살만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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