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희(서울시 공원조성과장)
1993년 은평구청 공원녹지과장으로 발령받아 봉산을 순찰하다 깜짝 놀란 적이 있었는데, 산속에서 갑자기 커다랗고 시커먼 괴물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 괴물은 다름 아닌 ‘불법 배드민턴장’이었다.

배드민턴 운동은 특별한 시설이나 장비 없이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좋은 운동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산속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면서 마음 맞는 분들과 즐길 수 있어 산속 배드민턴 운동을 생활의 큰 즐거움으로 삼는 분들도 많이 보았다.

산속 배드민턴, 바람 불면 운동 곤란
그러나 배드민턴공이 가벼워 바람이 불면 야외에서는 운동을 하기 어려운 단점이 있기 때문에 불법 배드민턴장이 계속 발생하고, 경관·안전 등의 측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되고 있다. 비닐 등으로 불법 바람막이벽과 지붕을 가설물 형태로 설치함으로써 산속 자연경관을 크게 저해하고, 붕괴우려가 높으며, 폐쇄된 배드민턴장 내에서 동호회 회원들끼리만 취사를 해 악취, 산불발생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동우회를 만들어 회원에 가입하지 않으면 이용을 제한하고 있으며, 비탈진 산속에 평평한 배드민턴장을 조성하기 위해 지형을 심하게 훼손한 경우도 많다.

공원이나 산림의 관리에 있어서 불법 배드민턴장과 애완견 데려오기는 공통점이 있다.

배드민턴을 즐기거나 애완견을 데려오는 주민은 아주 열성적이고 적극적이며 서로 단합도 잘 하나, 일반 주민들은 불법 배드민턴장이나 애완견에 대하여 대부분 불만이 많아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불법 배드민턴장을 철거하려고 하면 강하게 반대하고 압력을 행사하며, 애완견 이용제한 규정변경 시에는 하루에 수십 명이 반대 민원을 올린 적도 있다. 봉화산 이용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배드민턴장을 이용하고 있지 않는 주민은 대부분 철거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과·안전 등 여러 문제점 야기
2012년 현재, 서울시에는 111개 공원 351개소에 1243면의 배드민턴장이 있으며, 그 중 45%인 161개소(559면)가 무단 설치한 부적한 시설로 조사되었다.

그동안 서울시와 구청에서는 배드민턴장 정비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불법 바람막이벽 철거와 지형복원은 동호회원들의 단합과 로비, 강한 저항 등으로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1997년 중랑구청에 근무할 때에 투명한 바람막이벽을 설치하고자 모델을 개발하여 추진하였으나, 불법 지붕만 설치하게 하는 바탕을 마련해주는 꼴이 되어버린 경우도 있었다. 지붕 없이 벽만 설치할 경우 배드민턴공이 돌기 때문에, 투명벽은 눈이 부셔 시합이 곤란하다는 핑계로 동호회에서 지붕을 불법으로 설치하려고 하여 후임 직원들이 오히려 고생하였다. 동우회 수가 너무 많고 이용하는 배드민턴장이 가까이 있으며 서로 배타적이라 통폐합하여 개소를 줄이려고 하였으나 동우회연합회에서 의견을 조정하지 못하였다.

몇 군데 성공한 사례가 있다. 강서구 일대는 한강변 다리 밑에 실내 배드민턴장을 만들어 주고 산속 배드민턴장은 철거하여 적은 비용으로 효과를 올렸으나, 신규로 설치할 수 있는 장소가 많지 않은 것이 아쉽기만 하다. 배봉산 입구인 촬영소 고개에 배드민턴장을 비롯한 실내체육관을 짓고 산속은 철거하였으나, 많은 예산이 소요되었다. 구청별로 배드민턴장 철거에 인센티브를 주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경량형 실내 배드민턴장 건립 추진
최근 서울시에서는 불법 배드민턴장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정비사업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정비대상은 불법 바람막이벽이나 지붕이 있는 곳 뿐 만 아니라 공원조성계획에 반영되어 있고 바람막이벽과 지붕이 없으나 지형을 많이 훼손한 곳도 포함된다.

경작지, 채석장 등 이미 훼손된 산 입구에 경량형 실내 배드민턴장을 건립하고 산속 불량 배드민턴장을 철거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다. 파형강판 등의 경량형 구조로 하는 것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이며, 현재 금천구 관악산과 은평구 백련산에 시범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비용, 경관, 안전성, 건축기준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세밀하게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규모는 통폐합 면수의 70% 이하(최대 8면 이하)로 제한하고 있으며 남산, 현충공원, 초안산, 온수공원, 오동공원 등 4년간 15개소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제 시민의식도 많이 성숙하였고, 최근 생태복원과 자연환경의 중요성이 널리 인식되어 때가 무르익은 것으로 판단된다. 배드민턴 동호인들은 주민들의 눈초리를 강하게 의식하게 되고, 주민들은 불법 배드민턴장을 용납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 산속 배드민턴장 정비는 시대적으로 중요한 과제일 뿐 만 아니라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지형 훼손이 거의 없는 산속 야외 배드민턴장은 공원조성계획 반영 등으로 합법화하고, 훼손된 곳은 대체 실내 배드민턴장을 건립하여 생태복원을 추진하는 사업을 연차적으로 추진해 나가면 산림은 제 모습을 찾고, 배드민턴을 생활의 큰 즐거움으로 여기는 시민들은 바람이 부는 날에도 산속 배드민턴 시합을 즐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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