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아름(서울 종로구청 공원녹지과)

 

‘껌뻑, 껌뻑’ 몇분째 깜빡이는 커서의 움직임에 어제의 긴 여정을 짧은 글로 표현해야 하는 마음은 점점 조급해져 간다.  사실 수원은, 29년 전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나의 고향이다. 1997년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내가 태어난 허름한 주택가는 지금의 화산공원으로 새롭게 단장되었고, 화성행궁을 중심으로 복원공사가 진행되면서 20세기 난개발로 어지러웠던 화성 일대는 찬란했던 18세기 본래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어릴적 화성을 보고 자란 덕분인지 아직 20대인 나는 문화재와 유적을 좋아하여 전국으로 답사여행을 다녔고 때마침 알게된 뚜벅이 프로젝트는 내 마음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더구나 나의 고향 수원이라니! 고향으로 수원을 방문하는 것이 아닌, 답사의 목적으로 방문하는 수원은 어떠할지, 여행 전날의 설렘은 언제나 그러하듯 잠 못들게 만든다.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렸을까, 눈에 익은 거리의 모습을 보니 이곳이 수원이다. 먼저 수원화성 박물관에서 간단한 브리핑과 박물관 관람이 이루어졌고 곧 본격적인 화성탐방을 시작하였다. 박물관에서 이동한 곳은 방화수류정과 화홍문, 어릴적 내 동생의 모교이자 시험이 끝나면 늘 놀러갔던 소위 남문이 바로 이 근처이니, 문화재를 만나는 기쁨과 옛추억을 대면하는 즐거움이 만나 마음속에 벅차오르는 기쁨은 배가 된다.

봄의 초입이라 방화수류정과 화홍문 인근의 수목들이 다소 쓸쓸해보였으나, 봄철 파릇파릇 돋아나는 버드나무의 싱그러운 잎사귀와 불이 타오르듯 피어나는 철쭉꽃의 모습이 머리속에 오버랩되면서 나만이 아는 비밀이야기를 떠올리듯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화홍문은 수원천의 범람을 막아주는 동시에 방어적 기능까지 갖추고 있는 다기능적 건축물임과 동시에, 미학적 측면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큰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7개의 홍예문 중 중앙의 1칸만이 높이와 폭이 다르니 이것은 착시효과를 고려하여 만든 선조들의 지혜이며, 여름철 수구를 통해 흘러 넘치는 수원천 위로 일곱빛깔 무지개가 떠오를때면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화홍문을 통과하여 화성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만나게 되는 포루와, 적대, 공심돈 등은 그 모습과 기능이 각기 달랐고, 곳곳에 숨어 있는 방어시설들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린시절 추억으로 가득한 장안공원, 장안공원은 서북공심돈과 성곽을 따라 만들어진 나선형 공원으로 사계절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이곳에선 사생대회, 글짓기대회 등 수원시내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기량을 뽐내었을 장소이다.

화성의 최정점이라 생각되는 화성행궁 도착하여 때마침 시작한 무예24기 공연을 감상한 후 본격적인 행궁 답사를 시작하였다. 수원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그 지역에 살고 있던 백성들을 수원으로 이주시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라 할 수 있다. 당쟁의 희생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안타깝게 생각한 정조대왕의 효심이 행궁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고, 조선시대의 전통조경 양식인 화계, 화성성역의궤 등이 보기쉽게 설명되어 있어 우리들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행궁 답사 후 간단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정조대왕과 사도세자의 릉인 융건릉으로 자리를 옮겼다. ‘신들의 정원’이라 말할 수 있는 조선왕릉 40기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풍수지리사상의 음택풍수의 원칙에 따라 이 일대의 가장 적합한 땅에 릉을 조성했다.

금천교를 지나자 좌측으로 보이는 곤신지는 조선시대 전통연못의 형태인 방지원도와는 다르게 원형의 형태인데 이것 또한 용의 이야기와 관련된 것으로 정조대왕의 효심을 엿볼 수 있었다. 릉의 구성요소인 홍살문과 수랏간, 신도와 어도, 정자각과 예감, 비각 등 책으로만 읽어오던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지금도 그 영상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문인석과 무인석, 석호, 석양의 얼굴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으나, 능침공간은 출입이 어려운 곳이라 멀리서만 보고 돌아서니 용주사로 가는 발걸음에 아쉬움이 남는다.

왕릉을 지키는 원찰인 용주사, 성리학의 나라였던 조선에서 사찰을 짓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겠건만, 정조대왕은 또 다른 비책으로 아버지의 릉을 지키는 원찰을 건립하였고, 전국을 물색하여 가장 아름다운 범종을 설치하게 된다. 지극히 높디 높은 정조의 효심이란!

화성과 화성행궁, 융건릉과 용주사, 이 모든 곳곳에 정조대왕의 효심이 뭍어나 있음을 생각하니 또 한번 가슴이 먹먹해진다. 일정의 끝으로 이번 답사여행을 후원해 주신 ‘이노블록’ 공장을 견학하고 다같이 저녁식사를 하였다. 처음으로 조경인 뚜벅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다소 어색한 점도 있었지만, 어느새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소감을 발표하면서 ‘조경인’이라는 하나된 주제아래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과 ‘공감’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더군다나 나의 고향 수원이 나날이 아름다운 세계의 유산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내 마음이 뿌듯하였다. 그로인해 나 또한 지금의 내 자리에서 또 다른 고향인 서울을 아름다운 세계의 유산으로 가꾸어 나가야겠다는 다짐도 해보게 됐다.

이제 다음달 일정은 강릉의 선교장, 곱디고운 연꽃으로 가득한 연못과 신선이 머물었다하여 ‘선교유거’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그 곳을 놓칠수야 없지! 벌써부터 강릉으로 향해있는 내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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