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에게는 시련의 한 해였다. 조경분야를 2차 산업인 건설 산업으로만 인식해 온 우리들 스스로의 경직된 시각도 문제이겠거니와, 복지산업의 한 축이자 거점임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설득하지 못했던 우리들의 노력부재 역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조경은 주로 공공의 영역을 다루면서 지역 주민 나아가 불특정 대다수 국민들에게 공원녹지를 제공함으로서, 맑은 공기나 그늘과 같은 공공재를 생산해 내고 일상의 휴식처와 재해시의 피난처를 제공하는 동시에, 지구온난화와 탄소저감을 위한 거점을 형성하는 산업이다. 즉 3차 산업인 복지 산업의 핵심으로 소수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닌, 국민 모두를 위한 산업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자랑하지 못하고 있다. 감추고 겸연쩍은 맘으로 겸손을 강조하는 것이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모든 것이 개방된 사회 구조 속에서 제 때에 제공되지 못하는 정보와 논리는 더 이상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알림과 설득의 메시지가 필요한 때이다.

1.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는 교육기부를 통한 진로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입시점수로 진로를 결정토록 강요하기 보다는, 하고 싶은 진로를 직접 체험하고 생각해봄으로써, 미래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취지도 좋고, 성과도 제법 좋아 앞으로 학교마다 파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시점에서 이런 조경 알리기 사업들이 학교마다 주먹구구식으로 추진되는 것보다는 전 조경계 차원에서 좀 더 큰 그림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함께 오신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조경이 뭔지 알아야 학생들에게 소개를 시켜 줄 텐데, 전혀 아는 바가 없으니, 제가 배우기 위해서 이렇게 학교 행사에 직접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순간 필자는 부끄러움과 함께 조경인으로서의 역할 방관자가 되었다는 죄책감을 느꼈다. 물론 지금도 조경박람회와 같은 행사가 비정기적으로 벌어지고 있으나,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더욱이 한국 조경의 현황과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마땅한 전시자료들이 상설로 전시되지 못하고 일회성 행사로 끝나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조경인 개개인이 국민들에게 복지정책으로서의 조경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홍보를 위한 상설전시관도 도입해 봄직하다.

2. 일본으로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박사 후 연수과정을 갔을 때의 일이다. 필자가 공부하러 간 곳은 일본 경관연구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니시무라유키오(西村幸夫) 교수의 연구실이었다. 어느 날 니시무라 교수가 연구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지방 마을의 재생사업에 대한 참가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재생사업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대학원생들과 함께 답사를 가게 되었다. 답사지는 항구를 끼고 있는 ‘토모노우라(鞆の浦)’라는 작은 마을로서, 과거에는 조선통도사들이 에도(江戸)에 방문하기 전, 중간기착지로 활용했던 제법 역사적 의미가 있는 마을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민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근래에 와서는 마을의 공가율(空家率)이 50%를 넘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마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미 마을 사람도 더 이상의 가능성을 포기한 채, 떠나가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면서 하루하루 떠날 생각만 하고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니시무라 교수와 대학원생들은 지역의 NPO와 연계하여 재생의 가능성을 마을 주민들에게 설득하는 동시에, 공가(空家)를 손수 개조하여 마을가꾸기 사업의 현 주소와 미래 모습을 알리기 위한 소박한 홍보관도 만들었다. 필자가 찾아갔을 때는 이미 마을주민들이 해당 사업에 적극 동참하여 학생들과 함께 마을 곳곳을 누비며, 보완이나 개선이 필요한 곳을 찾아내고 여러 방안을 강구하면서, 재원마련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는 단계로 발전해 있었다. 설득을 통해 주민들에게 재생의 가능성을 알려준 것이 주효했다.

3.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중도탈락자들의 음원이 각종 음원차트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순위 지상주의도 어느 정도 마무리 단계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만큼 다양성에 대한 호기심과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의 성숙도가 무르익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럴 때 일수록 국민들에게 조경에 대한 바른 알림을 통해 조경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타 분야는 이미 적극적으로 자기 분야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출발선은 다르겠지만, 그래도 많이 뒤처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조경은 복지라는 훌륭한 운동화를 신고 달리고 있지 않은가?

필자는 알림과 설득을 통한 조경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싶다.
건설위주의 조성사업이라는 어감이 아직까지도 시민들에게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조경의 현실이다. 조성이 1년을 내다본 사업이라면 관리와 운영은 10년을 보장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이들을 잘 포장하고 알리며 지속적인 사업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100년 이상의 가능성을 담보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본 필자는 이러한 조경알리기와 홍보를 통한 Landscape Marketing이 앞으로 조경에 있어서는 향후 100년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보이지 않는 성장사업임을 직감한다. 최근 공포되어 2012년 5월 시행 예정인 ‘도시농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도시농업공원이나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상의 다양한 도시의 주제공원들, 나아가 앞으로 추진하게 될 용산공원과 같은 국가도시공원 등은 도시와 지역의 마케팅에 있어서 매우 핵심적인 홍보요소들이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던 작은 소공원과 녹지들을 연결하여 축을 형성하고 거점을 마련하는 것은 Landscape Marketing의 핵심 사업이 될 것이다. 이들의 조성 주체가 조경이라는 것을 단순히 사업 시행단계에서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공원들을 엮는 다양한 마케팅 전략 예컨대, 도시공원탐방로나 도시공원조망점, 공원도시사업 등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도시마케팅을 위한 핵심적인 사안으로 적극 제안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복지산업으로서의 조경을 알리고, 공원과 녹지를 통한 다양한 마케팅 사업을 전개하는 것이 바로 Landscape Marketing의 실체가 될 것이다.
...
연초 조경신문에서 논설위원으로 위촉한다는 제안을 듣고, 글쓰기의 괴로움을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적잖게 고민을 하였다. 하지만, 조경신문의 새로운 개편과 함께 시작된 기획연재를 통해 필자의 평소 생각을 ‘알리고 설득할 기회’를 놓친다는 것 역시 아쉬움이 많이 남을 터인지라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신묘년이 어느덧 지나간다. 임진년이 다가온다. 개인적으로 나름대로의 생각을 일곱 차례에 거쳐 두서없이 표현하였지만, 주어진 기회에 무척이나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면서 마지막 연재를 마치고자 한다.

변재상(신구대 환경조경과 교수)

키워드
#조경 #변재상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