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고는 김한배 (사)한국조경학회 수석부회장이 본보 제172호 4면에 게재되었던 ‘조경의 영역과 전문성 확보(박봉우 교수)’ 제하의 글에 읽은 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도시숲법’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서 보내온 것입니다. <편집자 주>

도시공원은 법률상 ‘도시숲’ 돼선 안돼
‘숲’ 이미지 가져온 허구적 언어논리 불과
조경 전체 존립기반 흔들…역대 최대 위협


요즈음 ‘이름바꾸기’가 대유행이다. 사람 이름바꾸기부터 시작해서, 기업과 공공기관의 이름은 물론 법률상 용어에 이르기까지 마구잡이식 새 이름이 창작되고 있다. 새 이름만들기는 소위 전략적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기존의 사회통념을 휘저으면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법률상 전문영역의 이름바꾸기는 기존 영역구조를 침해하는 심각한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연전에 건축기본법에서는 ‘공간환경’이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용어를 만들어 내면서 이 속에 도시와 조경, 토목, 공공디자인까지 포함시키고 이를 건축의 고유영역이라고 해서 관련분야의 공분을 터뜨리게 한 바 있었다. 최근에는 산림청이 ‘도시숲’이라는 조어를 도입한 입법을 시도하면서 산림이라는 그들의 전통적 영역을 넘어서서 공공연히 도시공원녹지라는 조경의 핵심적 영역마저 침범 내지 접수하려는 야욕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김효석 의원에 의해 발의된 소위 ‘도시숲조성및관리에관한 법률안(이하 도시숲법)’의 개략요지를 보자면, 시행주체는 산림청으로 적용대상은 ‘도시 내의 기존 산림(자연체험숲)’ 및 ‘공한지와 공공공지, 주택, 공동주택, 병원, 요양소, 공장, 공단, 인공지반(도시환경숲)’은 물론, ‘도로변의 가로수를 위시하여 보행자전용도로, 자전거전용도로(가로숲)’, ‘학교숲’, 그밖의 ‘생활환경 개선 도시숲’ 등을 포함하여 그간 조경에서 다뤄오고 있던 도시 내 오픈스페이스와 녹지의 전 구간을 망라하고 있다. 또한 전문연구기관으로서 ‘도시숲지원센터’를 세우고 인력으로는 국가자격제도에 의한 ‘도시숲조성관리사’를 육성하여 ‘도시숲조성기본계획’을 수립, 시행하게 하고, 그 시행조직으로서는 ‘산림조합’을 명시하고 있다.

이 법안이 그대로 시행된다면 우리 조경분야의 설계, 시공 등 현업분야는 물론, 조경기사 및 기술사의 자격증의 실질적 효력을 위축시킴으로써 배출기관인 대학 조경학과들의 입지를 포함해서 조경분야 전체의 존립기반을 흔들어 놓을 수 있어 조경 역사상 최대의 위협요인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숲은 아름답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숲을 싫어할 리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숲’이라는 말의 낭만적 환타지를 이용해 국민 대중을 현혹시키는 것이다.

도시숲법은 산림업 분야에서 산림 조성과 임목 생산이라는 고유의 업무가 거의 완성기에 도래함으로서 그들의 활동영역을 지속적으로 넓혀가기 위해 안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새로운 용어를 내걸면서 임업 스스로의 본령을 망각하고 이웃분야를 불법점령하려는 치졸한 ‘꼼수’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임업분야는 실상 우리나라의 근대학문 도입 초기부터 국가기간분야로 성장해 왔으며 산림청이라는 견고한 국가기관과 막대한 예산, 전국의 임업직 공무원이라는 치밀한 인적조직, 산림조합이라는 든든한 산업 전진기지를 갖춘 구조적으로 막강한 분야이다. 이러한 집단이 마음먹고 영역확장을 기도한다면 우리 조경분야의 현실로서는 실력대응이 쉽지 않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우리가 초극적 각오로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자연환경에 대한 인류문명의 역사는 야생의 숲에서 길들여진 정원으로, 개인의 정원에서 시민대중의 공원으로 진보해 온 역사이다. 특히 공원녹지는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도래에 따라 발명된 도시의 기반시설로서 도시민의 다양한 여가공간과 생태적 환경, 풍요로운 경관을 제공해온 계획된 자연환경이다.

이 공원 속에는 그 구성요소로서 조성된 숲도 있고 들도 있고 물도 있을 수 있지만, 임업의 기술과 논리에 의해 조성된 숲이 아닌, 조경의 미학적, 기능적, 생태적 논리에 의해 조성된 숲인 것이다. ‘숲’은 ‘들’과 ‘내’ 등 자연형상의 한 분류용어이지 제도적 용어도 아니고, 도시계획상의 공간시설의 분류도 아니다.

즉, 환경계획의 용어가 아닌 도시숲 조성을 위한 법률이라는 명칭은 언어논리상 허구성이 현저하다. 특히, 공원녹지는 시대가 진전될수록 창의적 도시공간이라는 문화예술적 접근과 공동체 참여의 장이라는 사회환경적 접근이 더욱 요구되는 등, 다양하고도 실험적인 도시환경으로 진화해가고 있다.

아무리 ‘숲’의 이미지가 친환경적이고 낭만적이라 할지라도 접근의 기본방식이 ‘산림’의 임업적 사고에 기반하고 있다면 이러한 진보적 시대정신을 충족시키기는 어렵다.

산림분야는 시대착오적 발상과 집단행동을 철회하고 다시 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다. 최근 이상기후로 문제시되고 있는 산사태의 예방과 지속가능한 산림의 관리가 그들에게 요구되는 현 시점의 역할이라고 보인다. 돌아가지 않으면 돌려보내는 것이 조경인들의 당연한 책무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최근 우리 조경분야는 그간 소홀히 해왔던 제도 및 정치적 입지강화를 위해 백방의 노력을 해오고 있다. 조경기본법의 추진과 녹색인프라 구축운동 등 범조경계가 추진하고 있는 여러 사업들은 불철주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도권적 뒷받침의 취약으로 그 실현에 많은 시련들을 겪고 있다.

현 상황은 이들 새로운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 내려는 노력과 함께, 아니, 그보다도 기존의 우리 영역을 외부세력의 침탈위협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현재 전반적인 건설경기의 침체 속에 조경인들의 사기가 위축되어 있지만 지금이야 말로 역설적으로 심기일전하여 일전불퇴의 의지를 다질 시점이다.

90년대 우리가 학교와 학생, 기업과 실무자들 등, 전 조경인의 힘을 결집한 ‘조경살리기 운동’을 통해 이루어냈던 승리의 기억을 되살려 이제야말로 가열찬 행동에 나설 때이다.

김한배(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 (사)한국조경학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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