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4.0. 최근 한번쯤은 들어본 적 있는 낯익은 용어일 것이다. 윈도우 7.0과 같이 소프트웨어의 진화 단계에 따라 숫자를 붙이는 이러한 방식을 자본주의에 적용하여 네 번째 단계가 임박해 있음을 알리고 있다.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을 바탕으로 한 자유방임의 고전적 자본주의(1.0), 1930년 대 이후 뉴딜 정책을 시작으로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수정자본주의(2.0), 1970년 대 말 자원전쟁의 서막을 알리면서 시작된 시장 자율의 신자유자본주의(3.0)에 이어 등장한 것이 바로 자본주의 4.0이다.

자본주의 4.0은 자본주의 3.0에서 나타난 금융계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반성을 통해, 자본주의 혜택의 스펙트럼을 빈민들에게까지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융합과 통섭의 시대적 이데올로기를 통해 사회속에서 낙오하는 사람 없이 모두가 함께 나갈 수 있도록, 가진 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공생의 패러다임이다.

우리나라 조경의 진화 단계는 어떠할까? 제도적 무방비 속에서 별다른 제약이나 계획 없이 수행되어 오던 자유방임의 조경시대가 지나가고(이것을 조경 1.0이라고 하자), 1970년대를 기점으로 각종 제도적 정비의 뒷받침 속에서 다양한 정부 발주의 사업들과 함께 처음으로 조경 관련 단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조경 2.0의 시대가 시작된다. 이 시기야말로 정부의 보호아래 조경의 풍요로운 기반이 다져지기 시작했다. 사업에 대한 별다른 구애 없이, 정부와 지자체에서 주어지는 일들을 열심히 수행하면 되는 시기였다. 더욱이 1990년대부터는 신도시와 각종 공동주택사업들의 발주와 함께, 민간투자도 활성화 되면서 조경은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풍요로운 조경의 시대는 21세기를 맞으면서 그 기세가 꺾이게 되었고, 잘 나가던 기업들의 부도 소식과 함께 익숙했던 조경업체들이 눈뜨고 일어나면 하나둘씩 사라지는 어려운 시기가 됐다. 2003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제정으로 시작된 건설업계의 지각변동은 각종 제도의 정비를 낳으면서 여러 건설관련 법령들의 수정을 통해 조경이라는 산업 영역을 혼돈의 중심에 몰아넣었다. 조경의 독자적 영역성은 부인된 채, 서로가 조경을 자기의 업역으로 포장하면서 조경의 과실을 수확하려고 모여 들면서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선동의 중심에는 조경의 친인척이나 다름없던 인접 분야들이 있었다. 조경을 바라보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이 도를 지나치게 된 것은 아닐까? 관련된 인접 분야들의 도덕적 해이가 느껴진다. 조경 3.0 시대를 맞이하면서 건설업의 자유방임은 조경이라는 영역의 공중분해를 야기하려하고 있다. 결국 조경을 비롯한 모든 건설업 분야를 싸움터로 만들어 놓았다. 건축기본법, 산림자원법, 자연환경보전법, 도시숲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과 같이 조경 분야와의 협의 없이 이루어진 기득권 법령의 확산은 중요한 복지산업인 조경의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조경 산업의 종속화를 초래하여 제대로 된 조경 사업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의 진화를 뜻하는 조경 4.0은 어떠한 방향 속에서 전개되어야 하는가?

이화여대 석좌교수인 최재천 교수는, 통합(Unification)은 물리학적 표현이고, 융합(Convergence)은 화학적 표현이며, 통섭(Consilience)은 생물학적 표현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미래 사회의 발전은 단순한 물리적 통합보다는 융합과 통섭을 통한 발전적 결합이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건설업 분야도 힘겨루기를 통한 분야 간의 물리적 통합보다는 합리적 지성과 협업을 통한 분야 간의 통섭과 융합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의 건설업이 20세기 고루한 산업의 답습이라는 오명을 벗고, 국제화 시대에 어울리는 발전적 해법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보자. 더 이상 골방에 파묻힌 사고로 밥그릇 챙기기에 치중한 법 제·개정으로는 사회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존의 통합적 사고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적 발전 지표를 구상해야 한다. 미래 사회의 국민들은 더 이상 건설 산업 분야의 문외한이 아닐뿐더러, 이미 깊숙이 우리의 행동과 판단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 집단 지성을 기반으로 한 위키피디아 방식과 같이, 개방된 사회 속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참여와 협력이 담보되어야 미래 사회를 대비하는 올바른 제도가 정착될 수 있다. 관련 분야의 참여를 통해, 융합하고 통섭하는 위키피디아 방식의 열린 법 개정이 요구된다. 미래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바뀌어 가듯 타 분야 간에도 서로 발전할 수 있는 상생의 문화가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조경 4.0 시대에는 모든 분야가 함께할 수 있는 융합과 통섭의 조경이 되기를 기대하며...

변재상(신구대 환경조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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