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우리 대학 3학년 학생들과 졸업여행을 다녀왔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여행으로는 모처럼 해외로 여행지가 결정돼 태국 방콕과 파타야 지역을 여행했다. 전에도 해외로 여행을 가겠다고 졸업여행을 추진했던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진행과정에서 논란이 많아 결국은 국내 여행으로 수정해 진행하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태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고 지난 여름방학이 끝날 즈음 학생대표가 내게 알려 왔다. 아마도 대표를 맡은 학생들이 부단히 노력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대학에 학생들이 입학하면 새내기들에게 두 가지를 강조한다. 그 하나는 ‘전공과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문사철(文史哲)을 비롯해 소설까지 가능한 많은 책을 읽으라’고 강권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여행을 많이 하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지방 소도시에 위치하고 있는 대학이다 보니 우리 대학의 학생들이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좁은 울타리에 머무르게 될 것 같은 노파심에 학교 근처에서만 늘 술 먹지 말고 더러는 서울 종로거리로, 대학로로, 신촌으로 원정을 좀 다녀보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 중에서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여행’이다. 그것도 가능하다면 대학생활 중에서 해외여행을 꼭 한번 해보라고 권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해외여행은 반드시 배낭여행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단다.

학창시절은 배움을 통해 자기를 완성하는 시기다. 예로부터 선비는 일생동안 세 가지의 의무를 이행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 첫 번째가 배움을 통한 자기완성이고, 두 번째는 출사를 통해 국가에 헌신하는 봉사이며, 세 번째는 은퇴와 함께 다음 세대를 책임질 후학을 양성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학창시절의 배움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배움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당연히 ‘지식’을 축적하는 것으로서, 오늘날 이것은 대학 내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강좌를 통해, 책을 통해, 교수와 선배를 통해 충분하게 완성할 수 있다. 지식을 얻는 것 외에 또 다른 하나는 지혜에 대한 배움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지식은 당연히 매우 중요한 바탕이 된다. 그러나 지식 못지않게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지혜’다. 지혜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지식보다도 훨씬 더 필요한 덕목이다. 공부를 많이 하고 학력이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지혜를 많이 갖고 있다고 할 수 없다. 학교 근처에는 가본 일도 없고, 글을 읽을 줄조차도 모르던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에는 아주 슬기로운 지혜를 지녔던 분들도 많다. 지혜는 지식과 달리 대부분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경험의 산물이다. 지혜를 얻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자신을 조건 없이 도와주지 않는 위치에서 스스로 크고 작은 어려움을 집약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여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은 인간을 완성시키는 또 하나의 배움터인 것이다. 여행은 곧 길 위의 학교이며 지혜의 학교다.

이번에 학생들이 계획한 여행은 30여명이 단체로 다녀오는 여행이라서 어쩔 수 없기는 했지만 마치 휴양지를 중심으로 한 패키지 여행 비슷한 것이었다. 크게 신경 쓸 일 없고,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안내하는 대로 다니는 것이라서 학생들도, 함께 간 나도 편안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여행에서는 그다지 많은 경험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패키지 형식의 단체여행은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없는 여행이다.

얼마 전 한비야라고 하는 이의 단행본 중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그건 사랑이었네’라고 하는 책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젊은 조경학도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한비야는 여성으로서 세계의 오지를 수없이 여행한 여행가이며, 그는 여행 중에 여러 번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행은 그가 비록 여자이기는 하지만 세계 어느 곳에 놓여 있다 해도, 또 인생살이에서 아무리 큰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그녀를 스스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바탕과 지혜를 길러 준 중요한 계기였다고 그는 강조하고 있다. 또 그는 이 여행을 통해서 자기인생의 목표를 확고하게 정했다고 한다. 인생의 길을 찾는 젊은이에게 있어서의 여행은 한비야의 여행처럼 반드시 지도 밖의 여행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패키지로 운영되는 여행은 지도 안의 여행일 뿐이다.

인생의 길을 묻는 젊은 조경인들이여! 젊은 조경학도 들이여! 지도 밖의 여행, 배낭을 둘러 멘 여행을 떠나라. 그리고 울타리 밖의 억센 풍파와 한 번 부닥쳐 보자. 그리하여 거센 세파를 뚫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강한 투지를 가져보자.

김학범(한경대 교수·한국조경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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