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이후 지어진 유명 건축물 가운데 한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라고 생각하는 건물이나 공간 ‘BEST 5’를 꼽아주시고, 각각의 이유를 간략히 적어주십시오. 건축물에는 공공 건축과 상업용 오피스건물, 공공 스페이스 등이 포함됩니다”

지난달 29일자로 기사화된 ‘한국 대표 건축물’ 선정과 관련해서 조선일보가 건축가들에게 보낸 설문지의 첫번째 질문이다.

이 질문에서 조사자는 선택 범위를 단순히 ‘건물’이 아닌 ‘건물이나 공간’의 Best 5를 꼽으라고 주문하고 있으며 질문 끝에 건축물에 대한 해석을 또 한 번 언급했다. ‘공공건축과 상업용 오피스건물 그리고 공공 스페이스 등이 포함된다’는 언급을 통해서다.

2번 질문인 ‘Worst 5’ 역시 ‘유명 건축물이나 공간 가운데’라는 전제를 붙였고 ‘마찬가지로 공공건축물과 사업용 오피스건물, 공공스페이스 등이 포함된다’고 언급했다.

이 질문의 답으로 선정된 Best 5 중 1등은 ‘한강 선유도공원’이 선정됐다. 13표의 과반수가 넘는 응답률도 눈에 띈다. 이외에도 원서동 공간그룹 사옥, 서울 인사동 쌈지길, 경기 파주출판도시, 서울 장충동 웰콤시티 등이 뽑혔다. 

Worst 5로는 광화문광장이 10표라는 최다득표수를 보였고, 예술의 전당, 타워팰리스, 청계천, 종로타워, 용산구청 신청사 등이 선정됐다.

이 조사를 정리한 기사의 제목은 ‘‘한국 대표 건축’ 물어보니…선유도공원 1등, 광화문광장 꼴지’였다. 제목이나 기사에서는 질문지에서 재차 언급했던 ‘공공공간’과 ‘공공스페이스’가 포함된다는 내용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커다란 오해의 소지를 남긴 것이다.

실제로 설문에 참여했던 한 건축가는 오히려 조선일보 기사를 보고 의아해 했다고 한다. “설문지에는 좋은 사례, 나쁜 사례 선정 기준을 건축물로 제한하지 않고 공공시설 및 도시 공간 등을 총망라해 달라는 의도로 질문하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기사에서는 ‘건축(물)’으로 정의돼 있어서 충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인적으로 이 설문이 건축물을 비롯해 도시공간을 총망라해 공공성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청계천이 장점도 많지만 그 장소의 역사성이나 문화적 가치를 고민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쁜 사례로 꼽은 것이고, 자연환경적인 의무와 더불어 정수장의 역사를 공간적으로 재해석해 후대에 이어갔다는 측면에서 선유도공원을 좋은 사례로 꼽은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 건축가는 실제 공공공간에 대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행정 입안자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을 이런 기회를 통해 알릴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공공성과 역사성’에 대한 고민을 했던 것이지 건축물인지 아닌지 부분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조경계에서는 이 보도가 일주일 내내 쟁점으로 회자됐다. 조선일보 인터넷 사이트를 비롯한 각종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도 의견과 댓글이 줄을 이었다. 일각에서는 그저 신문사 기자가 독자적으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의도 하에 목적성을 가지고 구성된 것은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번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기사의 베스트와 워스트로 꼽힌 선유도공원과 광화문을 설계해 본의 아니게 이 이슈에 중심이 된 조경설계 서안(주)에서는 “조경에 대한 인식 부족”의 아쉬움을 거듭 강조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 본인이 건축법과 조경법 등 민감한 사항들과는 무관하게 작성했다는 점을 밝혔다는 점을 감안,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해도 일반 대중에게 그 프로젝트를 건축으로 생각하게끔 하는 인식의 아쉬움은 저버릴 수 없다는 얘기다. 또 전문가인 건축가가 공공프로젝트의 진실까지 왜곡했다는 측면에서는 강한 불만을 표명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는 건축이 아닌 조경이 중심이 되어 추진한 사업들을 건축물로 해석한 데에 대한 공분도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아이디 ‘morninggml’의 네티즌은 조선일보 100자평에 “공원과 건축물의 구분이 안 되나? 조경가 주도로 진행된 프로젝트를 마치 건축가가 다 한 것처럼 썼다. 제대로 해석하고 쓰길 바란다”고 경고했다.

또 ‘scaper96’ 아이디의 네티즌은 “조경과 건축의 업역 조차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기사를 올린 기자도 문제지만, 이 투표를 한 국내 유명 건축가 및 교수의 자질과 의도 또한 의심스럽다. 조경이 아닌 건축물로 호도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kotaelove’ 네티즌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건축물이 어찌 그리도 없기에 공원을 베스트로 선정했단 말인가”라면서 “한국 건축이 발전하기 기대한다. 대신 자기 자신 발등 찍는 기사는 참아주길 바란다”라고 역설했다.

아이디 dola01 네티즌은 역시 “선유도공원은 조경가 정영선 씨 주도로 설계된 것인데 왜 건축가 이름이 먼저 거론되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광화문 광장이나 청계천에서 건축가들의 참여도 있었고 디자인 경쟁에 밀려 참여를 못하게 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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