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걸 서울대 교수가 지난 30일 유기디자인에 대한 특별강연을 펼쳤다.


외형적 아름다움만 쫓으면 쓰레기만 남게 돼
자연 돌아가는 ‘녹말 이쑤시개’ 최고 디자인

“기능과 미적인 것만 추구하는 디자인 시대는 지났다. 이제 생태계 순환까지 고려한 ‘유기디자인’에 주목해야한다”

공공디자인의 대부로 통하는 권영걸 서울대 교수가 이번에는 에코디자인과 그린디자인,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아우르는 신개념 디자인인 ‘유기디자인’을 들고 나섰다.

지난 30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개최한 도시텃밭디자인 교육 수료식 현장에서 권영걸 교수의 특별 강연이 펼쳐졌다.

‘궁극의 선택: 유기디자인’을 주제로 강연을 펼친 권영걸 교수는 유기디자인이란 ▲자연의 도를 따르고 인간을 섬기는 디자인 ▲자연과 인간의 건강을 제1목표로 삼는 디자인 ▲잉태하고 기르고 돌보고 가꾸는 디자인 ▲누구나 할 수 있고, 더불어 하는 디자인 ▲발생적인 속성과 진화를 지향하는 디자인 ▲제조되는 것이 아니라 재배하는 디자인이라고 정의했다.

그의 강연에 따르면 20세기는 산업 디자인·공업디자인이 각광받던 시기였다. 디자이너들은 제품들의 기능과 외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했고, 사람들은 그 매력적인 디자인을 찬사했다. 그러나 산업디자인·공업디자인의 종말은 결국 생활쓰레기에 불과했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 불리는 자동차, 삶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휴대폰 등 다양한 제품들이 등장했지만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해 산업폐기물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권 교수는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 섬이 약 1억 톤으로 태평양 면적의 8.1%를 차지하고 있다”며 “아름다운 디자인들이 썩지도 않고, 분해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려 결국에는 쓰레기가 되고 만다. 이 순환을 바꾸어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디자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시대 최고의 디자인으로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녹말 이쑤시개’를 꼽았다. 녹말 이쑤시개는 다른 이쑤시개와 기능은 같되, 수분이 닿으면 다시 자연으로 순환되는 디자인이기 때문이라는 것.

또 종이에 물을 부은 후 시간이 경과하면 종이가 딱딱하게 굳는다는 점을 착안해 표백하지 않은 폐지를 딱딱하게 만들어 종이와 자석만을 가지고 만든 의자와 테이블 등의 디자인을 소개했다. 이와 함께 트럭의 비닐덮개를 재활용한 가방, 쌀겨·톱밥 등에 버섯균사를 넣어 스티로폼 대신 활용하는 디자인 등도 선보였다.

그가 제시한 이 디자인들이 바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유기디자인’인 것이다.

권 교수는 “애플사에서도, 삼성에서도 편리성과 새로운 디자인을 고려해 핸드폰을 만들려고 하지만 그들은 재생성 있는 재료를 사용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때문에 한국에서 연간 폐기되는 1409만 개의 휴대폰은 그저 쓰레기가 돼버리고 만다”며 다시 한 번 유기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또 그는 “6년 전 공공디자인이라는 말을 만들기 전에는 인간을 위한 디자인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공공디자인의 개념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이 시점에서 공공디자인은 인간을 위하고 건전한 도시를 만들기보다는 기능과 디자인에 치우친 경향이 많다”며 “이제 공공디자인도 유기디자인 개념을 통해 보다 인간과 자연을 위한 디자인으로 거듭나야 한다”면서 공공디자인의 발전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이밖에도 권 교수는 자연·인간·주거공간에 대한 의식의 전환, 근본주의적 접근방법, 생태주의 이념에 기초한 LH의 디자인 비전 ‘지생가’, 자연과 상생하는 이념을 보여주는 우리나라 전통 건축 방법 등을 통해 유기디자인에 대해 설명했다.

권 교수는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지금 가고 있는 곳에서 막을 내릴 수 밖에 없다’는 중국 격언을 인용해 근현대 디자인에 대한 자성과 우리 시대 디자인을 향한 경고 메시지를 남기며 강연를 마쳤다.

한편, 권영걸 교수의 ‘유기디자인’  강연은 지난 4월 11일 매일경제 본사에서 열린 ‘매경 디자인경영최고위 과정’과 6월 9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컨벤션홀에서 개최된 ‘신경관 심포지엄’에서도 진행된 바 있다.

▲ 권영걸 교수의 유기디자인 강연 현장 모습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