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이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면서 온 나라에 걷기열풍이 불고 있다. 이에 따라 산림청, 문화관광부 등 국가기관은 물론이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앞 다투어 ‘걷기 편한길’들을 쏟아내고 있다.

외국 도시들도 유사한 사례가 많다. 미국 보스턴시는 이미 1837년에 시내 중심가를 가로지르는 9개의 공원을 연결한 총길이 11㎞의 ‘에머랄드 네클리스’를 완성해 쾌적한 도시의 모범이 되었고, 뉴욕시는 강과 바다를 따라 맨하튼 외곽을 숲길로 연결하는 ‘뉴욕 그린웨이’ 계획을 2020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아시아의 대표적 금융도시국가 싱가폴은 1960년대 말부터 추진한 공원과 공원을 연결하는 ‘파크 커넥터’를 통해 도시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여왔다.

물론, 서울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개국 당시 서울의 위치를 정하게 된 중요한 요소였던 풍수지리설에 따른 외사산인 북한산(북), 용마산(동), 관악산(남), 봉산(서, 원래 고양시에 자리잡은 덕양산)을 연결하는 157㎞의 서울둘레길과 내사산인 북악산(북), 낙산(동), 남산(남), 인왕산(서)을 따라 축성된 21㎞의 서울성곽을 연결하는 작업이 시작단계에 있다.

여기에다 서울의 척추인 북한산에서 관악산까지 남북녹지축과 팔다리인 한강과 지천이 도시 전역으로 펼쳐지고, 도심에서 외곽까지 사방으로 걷고 싶은 길들이 연결되면 거미줄 형태로 중요한 걷고 싶은 서울길은 어느 정도 구축되는 셈이다. 이미 북악산-북한산 연결로, 남산-서울숲 연결로, 청계천길은 이미 많은 분들이 걷고 있으며, 인왕산-안산-홍제천 연결로나 남산-용산공원-한강으로 이어지는 길들도 시간만 조금 더 필요할 뿐이다.

이와 별도로 지역마다의 걷고 싶은 길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생태문화길은 벌써 110개 노선 721㎞가 지정되었다. 우수노선 30선에 대한 소책자를 발간하였고 스마트폰 어플도 배포하고 있으며, 민간기업의 도움을 받아 안내리본도 달았다. 보행약자를 위한 무장애숲길인 근교산 자락길도 여러 곳 추진 중이다.

그러나 잠시 되돌아 볼 시간도 필요하다. 열풍처럼 너무 빨리 만들어지는 다양한 걷기 좋은 길들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부응하는 밝은 면에 비하여, 쓰레기 무단투기, 소음, 먼지 등으로 인한 지역주민의 불만 등 어두운 부분 또한 커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유행 따라 급하게 만들다 보니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탓이다.

서울시는 이러한 부정적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성과중심’의 방식이 아닌 ‘과정중심’의 방식으로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올해 본격 시작하는 서울둘레길 사업의 시범구간인 관악산 노선의 경우 여러 가지 노선들을 지역주민, 걷기 전문가들과 함께 모여 ‘사랑방 좌담회’를 통해 노선(안)을 만들고, 지역 대학생과 관련 동호회는 안으로 만들어진 노선에 표식리본을 달고, 또다시 지역주민과 탐방객들의 엄정한 평가를 통해 최적의 길을 정하는 지난한 작업을 1년 가까이 진행해와 거의 완료단계에 있다.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일을 해나가다 보니 덩달아 얻어지는 것들도 많았다. 남산 서울성곽에 면한 반얀트리클럽(옛 타워호텔)은 6억원의 자비를 들여 자기 땅에 직접 데크길을 만들어 시민에게 개방했다. 여기에다 장충단길을 가로질러 국립극장까지 연결하는 생태통로와 서울성곽 복원를 위해 소유부지도 할애해 주었다. 올해 버티고개 생태통로와 내년 장충단길 생태통로가 완공되면 남산에서 서울숲, 한강까지 이어지는 연결로는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품 산책로로 탈바꿈 할 것이다. 또한, 사유지를 시민들에게 내어준 신라호텔과 민주평통, 서울클럽의 통 큰 양보도 시민들에게 큰 기쁨이 되고 있어 이러한 걷고 싶은 길 주변의 기업이나 NGO 등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참여 또한 지속적으로 늘어가길 기대한다.

길을 만드는 일은 당연히 선만 긋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한번 정비된 길이라도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한다. 지역주민, 전문가들과 반복해서 함께 걸으며 여러 가지 불편으로 인해 꼭 손을 대야할 수밖에 없는 곳들을 추려내고, 기존에 있는 인공적인 시설들 중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들어내는 계획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여기에 더해 지역주민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들과 지속적으로 함께 걷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다시 이 과정에서 모니터링과 새로운 의견들이 덧붙여진다. 이러한 피드백을 통해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진정한 걷고 싶은 길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이 서울시 전역으로 확대되면 산의 푸르름이 하천과 길을 따라 사람들이 활동하는 공간으로 내려오고, 도로변 보도가 걷기 편하게 넓어지고 산속의 숲길처럼 푸르게 바뀌고 다시 산과 공원과 강으로 편안하게 연결될 것이다. 이를 통해 걸어서 5분이면 산과 공원과 강에 다다를 수 있는 쾌적한 공원도시가 되고, 걷기 좋은 도시를 넘어 건강한 도시가 되는 서울을 곧 마주하길 기대한다.

최광빈(서울특별시 푸른도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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