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가 하늘을 날듯,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입니다. 온전히 걷는 사람들만을 위한 길, 걷고 싶은 만큼 걸을 수 있는 긴 길. 제주올레는 도보 여행자를 위한 길입니다.” - 제주올레 소개 글에서

지난 주말 백화점의 구두 매장을 찾았다.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찾는다는 내말에 판매원들의 대부분이 추천하는 것은 워킹슈즈, 트래킹슈즈, 컴포트화 등 이름도 다양한 걷기를 위한 운동화였다. 다양한 기능과 디자인의 워킹슈즈는 고르기 어려울 만큼 종류가 많았으며 연령층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아웃도어 매장 역시 새로운 브랜드가 입점하고 있었다. 아웃도어 상품군이 최근 백화점의 두 자리 매출신장을 보이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보며 다시금 대한민국이 걷기 열풍에 빠져있다는 것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걷기문화의 붐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얻어 2007년 9월 비영리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서명숙씨를 통해 만들어진 제주 올레길에서 시작되었다. 올레길은 도보 여행자를 위한 작은 길로 제주의 남쪽 해안가를 따라 이어지고 있다. 제2의 올레길을 꿈꾸며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든 길인 누리길, 솔바람길, 마을길, 둘레길은 지역관광수익, 향토홍보를 위한 사업으로 계획되고 있다. 그 지역의 자연경관, 지역문화를 활용한 다양한 길들은 주말 색색의 등산복을 입고 워킹슈즈를 신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걷기문화는 서양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걷기 랑도네(randonn)는 1500만명의 사람들이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일주일의 산책을 통해 건강과 함께 걷는 사람들과 소통을 이루고 있으며, 벨기에에서는 청소년의 교화목적으로 걷기를 활용하고 있으며 그 효과도 매우 높다고 한다. 이처럼 걷는 것은 단지 건강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소통되고 교감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걷기는 차량을 통한 여행과는 다른 경험을 전해준다. 속도의 증가는 경험의 소멸을 가져온다. 주행이 일상적 경험이 되면서 장소간의 이동은 있으나 그 사이에 누적되는 여정은 없어져 버렸다. 우리는 천천히 걸으면서 풍경을 느끼게 된다. 즉 우리 몸이 지닌 속도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으므로 풍경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즉 걷기문화는 나 자신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장소를 체험하는 소통과정인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길들은 과도한 홍보와 관광수익에 대한 기대효과로 비대해져있다. 그러나 그 지역다움과 손대지 않은 자연이 경쟁력이며 길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열린 길이며 걷기를 위한 길은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 질 수 있는 도로가 아닌 지속적 걸음에 의해 열리는 것이다. 시작과 끝을 연결하는 노선의 여행이 아니라 공감각적 체험과정이다. 즉, 길은 목적이 아니라 그 길을 걷는 사람 앞에 놓여진 미지의 경험이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걸어야할 길들이 많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스스로 길을 잃어보는 것이다. 이 땅 구석구석 널려있는 자연 산하, 도시와 숨겨진 장소들을 찾아 걸어가면 어떨까? 그 속에서 길을 잃어 길이 아닌 곳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 자신만의 진짜 체험이 길 잃어보는 데에서 찾는 즐거움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그것이 걷기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걷고 싶은 곳을 걸어라. 발길 닿는 데로 걸어라. 그리고 길을 잃어보자. 온전히 내 두다리와 체력에 맡겨 잃은 길에서 그 길을 읽고 느껴보자. 걷다보면 그곳이 길이 된다. 길을 걷는 이가 늘면 그 곳이 길이 되고 또 길이 열릴 것이다.

채선엽(동부엔지니어링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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