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는 세계적인 명물의 가로이다. 이곳은 과거의 낭만과 전통을 간직한 채 문화적 다양성을 내뿜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개선문과 콩코드 광장을 연결하는 아름다운 가로수길 사이에는 하나하나 이야기꺼리가 있는 오래된 레스토랑과 노천카페들이 있고, 라파예트 계열사의 모노프리 슈퍼마켓과 문화의 공간인 고몽 시네마홀 등 수천 년을 거쳐 한겹한겹 만들어온 가로의 숨결들이 수많은 관광객을 찾게 만들며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 모든 요소들은 유기적으로 작용하며 샹제리제 거리를 살아 숨쉬게 만들었다. 하지만 얼마 전 샹제리제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프랑스 정부가 샹제리제 거리에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하나인 H&M의 입점을 허가했다는 뉴스이다.

그 배경에는 관광객 증가로 인한 임대료 인상이 있었다. 해마다 늘어나는 관광수요로 인해 샹제리제의 임대료는 가히 폭발적으로 인상되었으며 세계적인 여러 기업들이 그 자리를 얻기 위해 많은 자금을 쏟아 부으면서 임대료는 더더욱 치솟게 되었다. 현재 샹젤리제 거리는 뉴욕의 5번가와 메디슨애비뉴, 홍콩 코즈웨이베이 등과 함께 세계에서 임대료가 가장 비싼 곳이 되었다. 월 평균 임대료가 ㎡당 세금과 관리비를 제외하고도 1만 유로(약 1500만원) 이상이다. 이는 지난 10년간 무려 4배나 오른 가격이다. 결국 소규모 카페, 극장, 예술 갤러리, 샌드위치 판매점 등 샹젤리제스러운 샹젤리제만의 명소들은 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하나둘씩 사라지게 되었으며, 그 곳에는 1만유로의 자리세를 감당할 수 있는 ZARA, H&M과 같은 다국적 대규모 유통 매장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물론 샹젤리제의 명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으로 파리시 당국과 CDEC(지역상업설비위원회)가 샹젤리제 거리를 ‘파리지엔들의 생활과 상징성, 파리의 예술적인 면을 지닌 곳’으로 지키고자 H&M의 입점을 막기 위해 애쓴 적이 있었다. 또한 '푸케'라는 전통적인 유명 식당이 임대료 상승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으려 하자 그 식당의 입주 건물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지원 작업을 펴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샹제리제 한복판에 H&M 매장이 입점하는 거대한 변화는 도저히 막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전통과 낭만의 거리로 사랑받은 샹제리제’가 그 낭만을 느끼러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인해 임대료가 상승하고, 그러한 이유로 관광객들의 바람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며 그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10년 후, 20년 후 샹제리제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때에도 샹제리제는 지금처럼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가치있는 명소로 남아 있을까? 아니면 ‘거대한 쇼핑몰 샹제리제’로 퇴색되어 있을까?

사실 공간의 '미래 가치'는 당장 눈앞에 숫자로 보여줄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가치 이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 오히려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공간의 현재 가치에만 집착하고 그곳에 잠재된 미래 가치와 그로 인해 창출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수백 배의 값어치가 있는 미래가치를 헐값에 포기해버리게 되는 것이다. 마치 샹제리제 거리처럼 말이다. 현재 1000억 달러 이상의 가치를 가진 페이스북의 예를 보라! 그 페이스북도 창업초기 야후에게 1억불의 매각 제안을 받은 바 있었다. 당시로는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었을 것이다. 만약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가 설립 초기, 눈앞의 이익과 가치에 안주하여 야후라는 대기업에게 1억달러를 받고 페이스북을 매각하였다면, 아마도 1000배에 달하는 지금의 미래가치는 창출될 수 없었을 것이다. 페이스북의 미래가치에 대한 꼼꼼한 점검과 그들의 철학이 있었기에 지금의 가치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몇 해 전 미국의 ‘랜드마크보존위원회(NHL, National Historic Landmark)’에서 지정한 중요한 랜드마크 하나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1960년대 미소 냉전의 정치적 산물이었던 타이탄미사일 기지였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왜 이런 시설을 국가적인 랜드마크로 지정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곧 이은 해설가의 설명을 통해 그들의 공간철학을 짐작케 되었다. 어떠한 장소이든 의미있고 교육적인 가치가 있는 곳이라면 미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일제점령기에 세워진 광화문의 중앙청 건물이 그것이다. 단순히 철거하는 것이 옳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정치적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래 가치 즉 후손들에게 안겨줄 수 있는 교육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철학이 있었는지를 묻고 싶다. 물론 정답은 없다. 그 당시의 판단이 옳을 수도 있고, 그릇되었을 수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판단의 기회는 이미 지나가버렸으며 향후 동일한 상황이 발생한다 해도 공간과 도시에 대한 미래가치 측정은 명확한 철학이나 척도, 또는 그 결정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채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인사동과 같은 장소가 전통과 문화에 대한 가치가 인정되면서 시민들과 관광객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이로 인해 샹젤리제처럼 지가가 상승하면 오랫동안 인사동을 지켜온 상인과 시민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사라지고 지가 상승의 벅찬 부담을 떠안을 수 있는 다국적 대기업 체인점들로 채워진다면 오히려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전통문화의 존재기반을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지 않을까? 다시 말해 미래 가치가 서서히 소멸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어느 장소이건 미래 가치에 대한 척도와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원칙과 신념 속에서 보다 신중한 결단이 내려져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10년의 미래가 아닌 100년, 나아가 1000년의 미래가치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우리나라의 DMZ는 반세기 이상을 개발 없이 보존해 온 곳이기에 지금 그 가치는 개발로 얼룩진 도시지역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DMZ는 우리나라 어느 곳보다도 세계인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는 곳이고, 이로 인해 많은 관광객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곳이 되었다.

공간에 있어 개발이든 보존이든 왕도는 없다. 다만 그 공간의 미래가치는 문화적 가치로 대변될 수도 있고, 자연적 가치, 교육적 가치 심지어 경제적 가치로 대변될 수도 있다. 다만 지금의 시대적 흐름과 표피적인 상업적 가치에만 국한되어 생각하지 말고, 미래가치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과 잣대를 새롭게 점검하고 따져볼 수 있는 조직과 제도가 필요함을 말하는 것이다. 현재가치와 미래가치의 이익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그저 단기 차익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체계적으로 따져봐야 마땅할 것이다.

변재상(신구대 환경조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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