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친구의 집은 오늘 그 자리에 없다.
도시의 변화는 유년의 기억장소를 남겨두지 않았다.
친구 집은 남산 소월길에서 지붕과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지금의 도로보다 한참 낮은 곳에 있는 집이다. 한눈에 다 보이는 집을 들어가려면 계단을 세며 한참을 내려가곤 했다. 계단 중간의 철대문을 지나 기역자로 꺾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방공호가 있던 큰 바위와 경사를 따라 작은 마당이 곳곳에 있어서 숨을 곳이 많았던 그 집은 다락방만큼이나 어린 우리들만의 기억을 담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남산은 나의 어린 시절의 시크릿 가든이다.

올해 초 단연 화제의 드라마는 ‘시크릿가든’이다.
이 로맨틱 환타지 드라마에는 중세유럽의 장원을 떠올리게하는 아름답고 거대한 대저택과 숲, 연못으로 둘러싸인 환상적인 공간이 나와 시청자로 하여금 스토리와 연결하여 배경의 장소를 체험하는 즐거움을 주었다. 봄에서 시작된 배경은 종영시점인 겨울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사계절의 풍부한 정원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종결되는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도대체 저곳이 어디일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하였다. 이곳은 조경가의 손을 거쳐서 자연과 조경의 힘을 드러내는 ‘마임빌리지’이다.

드라마에는 주인공과 이야기 그리고 배경과 장치가 있다.
이 시대 우리 삷의 모습을 실체적이고 함축적으로 보여 주는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또한 파급효과가 큰 매체이다. 따라서 드라마에 나타나는 장소는 특정한 공간적 규모의 물리적 실체이며 동시에 경험을 통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이다. 이는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시청자의 머릿속에 잔상처럼 남아 실제 장소를 방문해보고 싶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배경의 시각적 이미지와 공간해석은 스토리의 전개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여 드라마를 든든히 받치고 있게 되며, 여기에 우리의 관심인 조경공간이 놓여있다.

조경공간과 드라마의 공간은 무형에서 시작하여 대상을 시각화한다는 것에서 공통점이 있다. 조경은 공간을 다루어 장소를 만드는 과정에 많은 이미지와 경험을 바탕으로 가상의 것을 시각화 하며, 드라마는 글로써 표현된 공간과 장소를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찾아내는 작업을 한다. 시나리오의 행간에 숨은 공간 이미지는 앵글이라는 구획된 틀 안에 꼭 들어맞게 가장 확실하고 인상적인 장면으로 표현된다. 여기에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맞추어진 배경의 공간이 있다. 드라마에서 표현되는 공간은 바로 우리가 만드는 도시공간, 조경공간을 수요자나 소비자는 어떻게 읽고 느끼고 경험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우리가 계획가로 상상하여 만들어내는 공간과 상상하여 찾아내는 공간은 같은 공간이기도 하지만 전혀 다른 의미와 경험으로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만드는 드라마, 공원에도 주인공과 이야기 그리고 배경과 장치가 필요하다.
우리는 주인공을 제한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시청자이기도 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되어야 하며 될 수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또한 주인공, 공원 시청자는 그 안에서 자신만의 시크릿 스토리를 만들어 갈수 있어야 한다. 주인공이 되어 엮어내는 이야기와 장소는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그 이야기는 감동과 마음을 움직이는 따스함이 필요하다. 공원은 일일드라마이며 주말드라마이고 연중드라마이기도 하다. 그 어느 때 보다도 관심과 호응을 얻고 있는 만큼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공원 드라마’는 유연하고 흡인력과 침투력이 강하여 모두의 공간이라는 공공성과 개별성이 함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두 경계의 애매함이 새로운 가능성의 풍성함으로 구현되어져야 한다.
우리의 드라마, 모두의 시크릿 가든을 품고 있는 공원이다.

채선엽(동부엔지니어린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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