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15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서울 강남 개포지구 아파트의 재건축이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통과하면서 최종 결정됐다. 개포주민을 위해선 참 잘된 일이다. 또한 개포지구의 재건축이 바닥을 헤매고 있는 민간 건설부문 경기 회복의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심각한 대량 아파트 미분양을 초래했던 지방 건설경기의 침체도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다가 최근 지방 건설경기의 지표라고 알려진 부산의 분양 상황이 호전되면서 점차 기지개를 필 조짐을 보이고 있다. 모두 다행스럽고 희망적인 신호다.

하지만 이런 희망에도 불구하고 과거처럼 주거시장의 전성시대가 다시 도래할지는 의문이다. 몇달 전 한 메이저 건설사의 임원들과 향후 주거시장의 동향과 관련된 내부 세미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오고 간 얘기들을 종합해 볼 때, 이미 거의 모든 메이저 건설사가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주거시장은 좋게 얘기하면 안정기에 들어 와 있고 나쁘게 얘기하면 하락기 또는 침체기에 들어 와 있다.

일본의 주거시장이 십년 전에 부딪쳤고 계속 겪고 있는 상황이 우리가 당면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현재 호전되고 있는 민간부문 주거시장의 상황이 옛날과 같은 수준으로 회복되기 보다는 잠시 유지되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까지만 호전되다가 말 것이란 의미이기도 하다.

조경의 분야가 건설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타 분야와 좀 다르다. 토목은 거의 대부분을 공공부문에 의존하고 있고, 건축은 공공에 비해 민간부문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훨씬 크다. 반면 조경은 민간과 공공부문에 거의 같은 비중으로 발을 대고 있다.

건설경기는, 내 감으로는, 민간이 약해지면 공공부문이 커진다. 국가나 지자체가 경기 활성을 위해 전략적으로 도로, 택지개발, 댐, 방조제, 하천정비 등의 사회 기반시설 조성 사업들을 내어 놓는 탓이다. 민간경기가 좋아지면 반대로 예산이 사회복지나 문화 쪽으로 우선 집행되는 까닭에 공공부문의 발주 물량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조경은 민간과 공공 양쪽 부문에 고른 활약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경기의 변동에 다른 분야보다 덜 민감하다는 장점이 있다.

타 분야에 비해 조경분야가 갖고 있는 장점은 또 있다. 어느 정도 건물들이 지어질 만큼 지어지고 또 도로 등의 토목 기반시설이 마련될 만큼 마련되더라도 필연적으로 여타 공간의 빈자리에 공원이나 녹지 그리고 기타 조경공간이나 시설을 채우게 되는 과정이 따라와야 한다.

우리에게는 건축과 토목의 자리 채움이 어느 정도 끝나가고 있고 - 그 때문에 건축이나 토목이 예전처럼 전성기를 되찾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 그 후의 조경의 자리 채움 과정이 유럽, 북미 그리고 일본 등에 비해 우리에겐 아직 많이 남아있다. 조경공간조차 모두 채워진 유럽, 북미, 그리고 일본 등과는 달리 아직 우리 조경의 성장 가능성이 많은 이유다. 그럼 그 가능성은 언제까지일까?. 글쎄. 내 감으로는 짧게 십년, 길게 이십년이다. 그 뒤는 건축이나 토목처럼 조경도 작은 시장 규모의 리모델링이 주도하는 시대가 될 것이 확실하다.

민간과 공공의 양쪽에 모두 밀접한 관련을 갖는 특성과, 아직은 건축이나 토목보다 조경 건설 물량이 많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현재의 민간 주거 경기가 다시 회복되든 아니든 조경의 가능성은 아직 크다.

단지 민간과 공공을 공히 아우르는 시공사에 비해 민간 또는 공공물량의 어느 한쪽에 좀 더 특화되어있는 설계사무소들은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민간과 공공을 모두 다룰 줄 아는 쪽으로 체질을 다양화하거나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설계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사실상 설계물량이 준 탓도 있지만 민간 건설부문에 좀 더 특화되어 유연함이 적었던 탓도 있다.

향후 십년이나 이십년 뒤의 상황을 예견해 미리 준비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필요이상 겁먹을 필요는 없다. 조경분야에 위기는 항상 있어 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조경분야에 위기가 없었던 적이 있었는가 말이다. 되돌아보면 늘 아슬아슬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한결같이 그 위기들을 잘 극복해왔다.

모든 상황을 위기로 감지하는 우리의 조심성 - 간혹 지나치다 싶을 때도 없진 않았지만 - 이 우리를 더 강하게 하고 지금까지 우리 조경분야를 지키고 성장시키는 큰 힘이 됐다. 힘을 내자. 크고 작은 부침이 없을 수 없겠지만 앞으로 적어도 이십년은 강건할 우리의 바탕과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아직 남은 시간이 많다. 하지만 남은 시간은 우리의 체질을 보다 강화하고 어차피 줄게 될 조경 시장을 위해 해외로 진출하는 방식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진양교( CA조경기술사 사무소 대표·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