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봄기운 가득한 날에 서울숲으로 산책을 갔다. 공원 내 산책로는 습지생태원으로 이어졌으며 주택가와 인접하여 낮은 지역에 잘 정비된 체육시설지와 주차장이 보였다. 그곳에는 팀별 축구복을 입은 사람들의 준비운동이 한창이었고, 한편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가족들의 바쁜 움직임이 있었다. 주변의 빼곡한 주거지와 인접하여 서울숲과 연결되는 이곳에는 뚝섬유수지 체육공원이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물이 노니는 못이라는 한자어의 ‘유수지(遊水池)’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물이 찰랑거리는 못이 아니라 집중호우시를 제외한 일년의 대부분이 텅 비어진 공간이다. 이는 도시방재시설로써 유수시설과 저류시설로 구분되며, 이중 유수시설은 집중강우로 인하여 급증하는 제내지 및 저지대의 배수량을 조절하고 이를 하천에 방류하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시설이다.

서울에는 52개소의 유수지가 있다. 이는 한강, 중랑천, 안양천의 국가하천과 도림천, 성내천 등의 소하천에 인접하여 있다. 이전에는 도시하천이 도시의 언저리 혹은 경계부로 한계를 지었지만 오늘날 도시와 하천은 서로의 영역이 중첩되어 연접하고 있다. 도시의 골격을 형성하는 하천변을 따라 포도송이처럼 달려있는 유수지는 도시와 하천을 연결하는 접점으로 수변공간의 가능성을 가진 공간이다.

도시 내 열린공간으로의 유수지는 대부분 국·공유지로 공공의 목적에 부합하는 시설로의 활용이 적합하다. 서울시의 전체 유수지 면적은 약180만㎡로써 이는 대표적인 문화 스포츠시설인 올림픽공원의 1.2배에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고밀화 된 도시에서 새로운 오픈스페이스의 면적확보는 쉽지 않은 상황으로, 공원의 경우 막대한 토지보상비는 새로운 공원조성을 어렵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유수지는 수해방지시설로 설치되어 도시발전과 맞물려 이용의 변화가 있었다. 70-80년대에는 도시하천이 복개도로로 쓰임과 같은 과정과 맥락으로 유수지도 복개하여 주차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90년대 후반에는 주민이용시설의 체육공원, 물과 관련되어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유수지에 대한 낮은 인식과 부적합 시설의 입지는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현재 민간자본으로 복개된 주차장은 기부채납 후 20년의 관리운영권의 완료시점이 도래함으로 그이후의 활용방안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에는 관련법 개정에 의하여 도서관, 체육관 등의 복합문화시설의 설치가 가능해짐으로 유수지가 지역의 친수문화공간이 되도록 하였다.

물 중심의 도시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물 관련 시설은 새로운 가능성과 잠재력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러한 도시방재시설과 우리분야의 결합은 서로 다른 기능이 상충하지 않고 상승하는 다층의 복합공간이 될 수 있다. 이는 정수장, 공장 등의 산업시설 기능이 폐쇄되면서 만들어지는 이전적지의 활용과는 다른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

유수지의 공공적 활용은 본래의 치수적 기능을 유지하면서 여기에 새로운 도시공간의 기능이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유수지가 도시와 하천의 접점에 있듯이 기술 분야의 접점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현재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특히 토목 엔지니어링 분야에서의 조경은 협업과 조정자의 역할로 우리 업역의 경계를 넓히는 유연성이 필요한 때이다.

이제는 도시기반시설의 복합적 활용을 통해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며, 새로운 오픈스페이스의 등장을 기대 할 만한 시기가 아닌가 한다. 가까이 걸어서 찾아 갈 수 있는 지역의 문화커뮤니티 허브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곳. 그곳이 우리의 관심과 손길을 필요로 한다.

채선엽(동부엔지니어링 전무·한국조경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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