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5일 창간호를 낸 한국조경신문이 오늘(7월14일) 제15호를 발행하면서 ‘창간 백일’을 맞았습니다.
이 날이 되면 ‘신생아의 발육이 큰 고개를 잘 넘었다는 뜻’으로 주변에 널리 알려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숱한 밤을 편집국에서 지새우며 무조건 앞만 보며 달려온 것 같아 감회가 특별하기만 합니다.
‘한국조경신문’의 많은 독자들께서 창간 배경을 궁금해 하고 계시고 여태 한번도 말씀드린 적이 없어서 오늘 백일을 맞아, 그 과정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한때 벤처사업에서 크게 실패한 후 지역에서 조경사업을 하고 계시는 부친 밑으로 내려와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조경업에 몸담기 시작했습니다.

6년 여의 세월동안, 영세한 부친의 사업체에서 일하다 보니까 농장관리, 현장관리, 일꾼출력, 자재구매, 견적서 작성, 공무처리, 경리업무까지 모든 실무를 혼자 처리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부친의 회사는 지방 건설업체로부터 하도급 전문으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대부분의 공정을 직접 시공하지 않으면 이윤을 남기기 힘든 시스템으로, 20년 동안 그렇게 사업을 해 오신 부친의 손발이 되어 결국 안 해본 일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아파트 단지 조경현장만 6번을 수행했으며, 수목식재는 기본이고, 파고라 제작/설치, 철평석 놓기, 놀이터 제작, 데크 설치, 휀스 설치, 모델하우스 실내조경, 건물 옥상조경, 씨거적 덮기, 황토 포장, 고무매트 포장, 연못 조성 등 가히 종합조경이라 할 만큼 전 과정을 두루 시공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포크레인 자격증 취득은 물론 5톤 크레인까지 1년 넘도록 직접 운전하면서 경비절감을 실천에 옮겨야 했고, 낮에는 현장에서 밤에는 사무실에서 ‘조경이란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제가 부친의 슬하를 떠나 신문을 창간하겠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말리는 것은 당연했으며 부모님께서도 극심한 반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조경산업이 눈부신 발전을 거듭할수록 혼자서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으며, 중소 조경업체라면 누구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줄 알지만 이러한 조경산업의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조경인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자 하는 취지에서 고집스럽게도 창간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처음부터 자본이 없었습니다.
무명의 조경 신인에게 누가 선뜻 후원해 줄 리도 없었기에, 제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바늘구멍 같은 ‘대중신문의 길’을 설계하게 되었고, 그것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지난 4월 5일에 썼던 창간사를 다시 찾아 보았는데, 한국조경신문은 ‘조경인의 눈으로 만드는 신문이고, 유용한 소통의 도구로 쓰이기를 바라며, 본격적인 대중지를 지향한다’고 기록했더군요.
그러면서 ‘아직은 착공 수준에 불과하므로, 대형매체에 익숙한 독자들께서 보시면 부족한 게 먼저 눈에 띄는 신생매체일 테지만 지켜봐 주시면 틀림없이 건설분야의 여느 매체와 견줘봐도 손색없는 매체로 성장하겠노라’는 다짐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앞으로 한국조경신문은 지면의 다양한 구성, 보기에 편한 디자인, 전문가 그룹의 편집 참여, 대중적인 소통의 공간, 인터넷신문을 통한 뉴스속보 활성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마련 등의 과제를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창간 100일을 맞았지만, 조경분야에서 하나 뿐인 신문이라는 위상에 부끄럽지 않도록 끊임없는 지면혁신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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