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각 지자체가 공공디자인(Public Design)이라는 간판을 들고 경쟁적으로 사업에 나서고 있다. 과거 대기업에서 강조하던 디자인은 이제 상업적 성격을 벗어나 21세기 새로운 키워드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기업이 아닌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디자인 경영’ ‘디자인 도시’ ‘디자인 전략’을 외치며 생활 곳곳에 빠르게 파고 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디자인 사업은 법제도 및 조직의 미비 속에서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왔다. 그러나 최근 공공디자인법이 국회에 제출되고, 디자인직류가 신설돼 내년부터는 디자인 공무원을 채용할 수 있게 돼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맞고 있다.

◇공공디자인 태동 =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05년 8월 공간문화팀을 신설하고 공공디자인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 서울시는 2007년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발족시키고 25개 자지구에도 전담부서를 조직하는 등 광역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디자인을 행정에 접목시켰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이에 걸맞는 행정조직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 중심에는 각 지자체의 수장이 있었다. 공공디자인에 대한 인식의 깊이는 단체장의 관심이나 의지에 따라 도시환경 조건과 함께 공공디자인 전담 부서의 설치위치나 인력구성 형태가 달라지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공공디자인이란 용어가 생소했을 2007년 하반기에는 전담부서나 관련 기구들의 형태는 단체장이나 부단체장 직속의 T/F형 조직으로, 국비지원 시범사업과 같은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이를 지원 관리하는 업무를 수행하며, 프로젝트가 끝나면 해체되거나 성장단계의 조직 형태로 발전해 고정 업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지자체와 주민들의 도시디자인에 대한 니즈가 증가하고, 단체장의 활용의지가 강해지면서 이를 전담할 부서를 정규 조직으로 신설했다. 나아가 도시 재정비나 신도시 개발과정에 공공디자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이를 민간이 주도할 수 있는 조직의 형태로 설립하는 민관 통합형 기구들도 등장했다.

◇공공디자인공모전 ‘춘추전국시대’ = 각 지자체들의 공공디자인에 대한 열정은 공모전의 개최 횟수로 그 열기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전국 16개 시도에 따르면 지난해 7개 시도에서 디자인 관련 공모전은 모두 8개가 실시됐다. 서울시의 경우 ‘벤치, 의자 디자인 공모전’과 ‘내가 디자인하는 서울 공공디자인 공모전’ 등 2개 공모전을 개최했으며 부산시, 인천시, 광주시, 울산시, 강원도, 경기도 등이 각각 1개 공모전을 치렀다.

반면 올해는 지난해보다 두 배 많은 16개 공모전이 이미 개최됐거나 진행 중에 있다. 대구시의 경우 지난해 단 한 개의 공모전도 개최하지 않았지만 올해는 무려 4개의 공모전을 연달아 치렀다. 또 울산시는 기존의 공모전에 하나를 더 추가했으며, 대전시와 충남은 올해 처음으로 공모전을 실시했다. 기초 시군구 주최로 열린 공모전을 포함하면 줄잡아 40여 개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이 각 지자체들은 없는 예산에도 불구하고 공모전을 통해 도시재생사업을 위한 아이디어 뿐 아니라 지역의 역사성과 정체성 등을 찾기 위해 앞 다퉈 공모전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입법 발의된 ‘공공디자인 관리 등에 관한 법률안’에는 공공기관장이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공모를 통해 공공디자인안을 선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법안이 통과된다면 중구난방이던 공모제도가 체계화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공디자인 사업현장 문제점 = 이처럼 일선 지자체들은 저마다 디자인조례를 제정하고 기본계획을 수립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공공디자인 관련 제도 부재로 인한 사업 전개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강원도 관계자는 “중앙정부 수준의 상위 법령이 없는 관계로 지자체에서는 조례 및 규정을 작성하는데 한계가 있고, 행정조직에서 공공디자인의 기본 계획이나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사업의 근거가 없어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전담부서 구성 시 존재하는 갈등이 디자인 리더십을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디자인 전문직은 대부분 행정직이 아닌 기술직의 신분과 2년 계약직 형태로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디자인 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사업 지원이나 타 부서 사업조언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아 소신 있는 사업추진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든 실정이다.

이와 함께 정치적 목적에 따라 변화하는 지역상징 디자인도 문제다. 현재 지자체 디자인 사업은 지자체장의 교체에 따라 인력, 조직, 사업내용이 바뀌는 경우가 많아 일관된 디자인 사업을 하기 힘들며 정치적인 목적으로 사업이 이용되는 경우도 있어서 이 또한 근본적으로 넘어서야 할 과제에 속한다.

지자체를 상징하는 디자인은 단체장이나 지자체 행정기관의 정체성이 아닌 그 지역과 주민의 정체성이 되어야 함에도 전시 행정적 발상으로 정체성을 급조하고 나머지 사업을 끼워 맞추는 경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아울러 광역지자체와 기초지자체간 공공디자인 사업이 연계가 되지 않아 사업의 중복과 난립을 야기하고 있으며 통합된 디자인 사업 추진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밖에 디자인 사업을 능동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예산확보가 어렵고, 디자인 담당자 외의 공무원 대부분이 디자인 인식정도가 낮아 디자인 사업을 꾸려 나가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공디자인 발전 방안 = 일선 지자체 디자인 담당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공공디자인의 제도적 기반의 구축여부가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또한 공공디자인의 일관성과 정착을 위해서는 중앙의 여러 부처가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공디자인 관련 업무를 하나로 통합하고 추진 중인 공공디자인에 관한 관련 법률의 제정이 시급한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여기에는 공공디자인 관련 법률 정비 및 제정과 함께 국가 차원의 통합적인 관리가 가능한 중앙정부의 공공디자인 총괄기구도 필요하다.

행정실무자의 전문성 확보와 공공디자인 전문가 참여도 우선 과제다. 일반 공무원보다는 공공디자인 전문가의 채용을 통해서 체계적인 공공디자인 사업 수립과 집행을 하는 조직구성이 필요하고, 공공디자인 사업의 획일적인 집행을 지양하기 위해 외부 전문가들이 폭넓게 참여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지역정체성과 공공디자인의 연계 또한 중요하다. 국가의 경우 국가브랜드의 통합적인 관리로 국가 정체성을 살리는 이미지의 창출이 필요하다. 또 지역차원에서는 지역의 문화, 삶, 경제적 여건, 역사성, 도시의 구조에 맞는 정체성 있는 공공디자인 사업이 시민의 정주를 가능케 하고 결국 시민참여의 활성화를 도모함으로써 성공하는 공공디자인 사업을 보장할 수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우리 생활에 밀접한 공공디자인이 진정한 창의성과 독자성을 갖기 위해서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공디자인이 아닌 지역주민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공공디자인을 해야 할 때”라며 “지역의 장기적 발전 전략 속에서 주민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차분하게 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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