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옥 박사
김현옥 박사

닥치고 나서야 후회하는 것들이 있다. 사고와 건강이 대표적이다. 흔히 사고라고 하면 갑자기 들이닥친 느낌이 있지만 사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고 중 아무런 이유나 전조 없이 발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 10월 발생한 평택 빵 공장 소스 배합기 사고의 경우 연일 계속된 야근으로 피해자는 업무 피로도가 높은 상황이었고 자동 방호장치는 물론 2인 1조 근무 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이 사고가 발생하기 바로 전 9월에도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노동자가 사망하면서 2016년 구의역 참사의 비극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면서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안전관리의 문제점이 지적됐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빵 공장 끼임 사고 후 정부가 전국 식품업계를 대상으로 안전조치에 대한 자율점검과 개선기간을 주고 실시한 안전점검에서 여전히 49.6%의 업체는 기본적인 안전관리 수칙을 지키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빵 공장 사고 후 보름도 되지 않아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 올 10월엔 유난히 행사들이 많았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방역을 목적으로 시행되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온갖 지역 축제들이 개최되었고 청명한 가을 날씨와 시너지를 일으켜 어딜 가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대한민국 할로윈 축제의 성지라고 하는 이태원도 당연히 많은 시민들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었던 만큼 적절한 안전조치가 마련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안전조치는 사전에 준비되지 않았고 긴급상황에서도 대응은 부실했다. 그 결과 157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는데 부실한 대응의 책임을 져야 할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라고 하고, 행정부를 총괄지휘하는 국무총리는 외신기자회견에서 이태원 참사(disaster)를 사고(accident)로 규정하면서 대한민국 정부의 안전에 대한 저급한 의식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쯤 되면, 국어사전에 설명된 사고의 정의(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가 사고라고 일컫는 대부분의 경우는 뜻밖에 즉, ‘생각이나 기대 또는 예상과 달리’가 아니라 “방심하다가”가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방심하다가 낭패를 보기는 건강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이상징후가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다고 무시하거나 바쁘다는 핑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후회하기 일쑤다. 사람의 건강도 그렇지만 환경과 생태계의 건강도 일단 훼손되고 나면 좀처럼 복구가 어렵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지구 곳곳에서 보내오는 갖가지 경고들에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여름의 무더위와 겨울의 한파 사이에 버퍼가 되어주던 봄과 가을이 짧아지면서 급격한 기온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동식물들이 있다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고 투덜거린다.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여름철 이상고온의 근본적인 원인보다는 밤새 켜 놓은 에어컨 때문에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까 봐 더 걱정이다. 겨울이 따뜻하면 곤충생태계가 교란되어 이듬해 농작물의 병충해가 늘고 나아가서 작황 악화로 인한 식량난까지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한 채 스키장 개장이 늦어진다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이 정도로 무심히 지나치기에는 인류가 당면한 지구온난화의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설마 내가 하다가 혹시나 싶어 병원을 찾았더니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암세포가 퍼져 있다는 진단을 받은 것처럼 수많은 연구와 실험들에서 밝혀진 객관적인 지표들을 바탕으로 판단하건데 지구환경과 생태계에 대한 학계의 진단은 심각한 위기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구관측 인공위성에서 얻어지는 사진을 통해 분석한 북극의 해빙은 지난 10년간 유래 없이 빨리 녹아 그 면적과 두께가 줄어들었고, 전 세계 재난재해 지역의 긴급 촬영을 지원하는 인터내셔널 차터에 접수되는 자연재해의 반 이상은 해수면 온도 상승에 의한 열대성 저기압의 발달로 발생하는 태풍과 싸이클론, 허리케인이 차지하는데 해가 갈수록 피해 규모가 커지고 빈도는 잦아진다. 또 세계난민감시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연간 약 4,000만 명의 난민 중 정치적 갈등으로 인한 분쟁이나 전쟁보다 자연재해로 발생하는 난민의 규모가 거의 두 배에 이른다. 숫자도 숫자지만 지역적인 분포도 더 넓다. 일례로 2021년 신규 발생한 난민 중 전쟁 난민은 48개국 약 1,400만 명으로 집계된 데 비해 기후난민은 137개국 약 2,400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우리나라도 자연재해로 발생하는 이재민의 규모가 늘기는 마찬가지다. 2년 전에는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최장기간의 장마와 홍수는 물론 세 번의 태풍이 연달아 지나가면서 약 7,000명의 이재민과 1조원 이상의 재산피해가 있었고, 올해는 봄철 가뭄이 지속되다가 유래 없는 6월에 기상관측 이래 최고치의 폭우가 서울과 수도권 일대에 집중적으로 내리면서 대형 홍수피해가 발생했다. 이렇게 가족을 잃고 생계에 타격을 입는 경우 천재지변에 그저 운이 나빴던 것이라고 운명을 탓해야 하는 것처럼 넘어가지만, 정말 누구의 잘못도 누구의 책임도 아닌지는 짚어 볼 문제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건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고, 피해를 당한 이유가 그저 운이라면 나도 언젠가 그 운을 맞닥뜨릴 수 있다는 것이므로 제발 방심하지 말자. 책임감과 더불어 주인의식도 갖자. 그리하여 다가오는 2023년 새해에는 모두가 함께 안녕할 수 있도록!

[한국조경신문]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