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형근 박사
온형근 박사

가을비가 주는 안개의 풍광은 신선이 놀다 간 흔적

가을비 심하게 흔들린다. 우산대를 똑바로 세우는 게 어렵다. 산발로 흔들린다. 추분 지나면 초목에 찬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인데, 이 지점의 가을비는 방향을 특정할 수 없다. 수시로 흔들리는 게 바람의 항로일지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일지 아니면 둘 다일지 모른다. 평일 아닌 휴일의 원림 향유는 의지와 상관없다. 들쑥날쑥 산만하다. 월요일이라는 기점에서 마땅히 진진한 의미의 변화를 꿈꾼다. 새로움은 곧 변화이고 이윽고 구태이다. 그러니 원림은 늘 변하지 않으면서 자세히 보면 지극정성의 다정다감과 생기발랄의 약동을 품고 있음을 요량한다.

제법 파인 노쇄한 화강암이 밤새 씻겨 벌개진 뼈마디를 희끗희끗 드러낸다. 밤새 내린 가을비에 씻겨 흙은 파이고 쓸려나갔다. 내비친 뼈마디는 매혹의 관능이다. 내원재 급경사를 통해 이미 별유천지 짙은 안개가 송간세로(松間細路)의 꼭대기 층을 가린다. 은근 무덥다. 가을이고 비 오는 날 젖은 밤송이만 무게를 지녔다. 밤송이도 물먹으니 쇳솔처럼 위용 갖춘 묵직함을 배태한다.

밤낮없이 내린 젖은 ‘원로 분지’를 둘러보니 나이든 어르신 원로들은 한 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가을비는 원림을 찾는 사람들의 떠들썩함과 억척스러움을 일순간 재운다. 이 좋은 안개의 풍광을, 신선이 내려와 놀다 간 흔적을 놓친다. 발그스름하게 드러난 화강암의 관능이 얼마나 고혹적인지를 알지 못한다. 안개로 고요의 바다를 이룬 곡진한 부유의 운행은 원림이 주는 최고의 선물인 평온(平穩)의 미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

 

원림이 주는 선물인 평온(平穩)의 미적 범주

원림에서 느끼는 평온은 조용하고 평안한 고요의 마음 상태이다. 내적 충만의 한 형태이다. 이것은 그윽하게 바라보는 관조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일상에서의 반목과 갈등이 해소되는 경지이다. 바쁠수록, 번뇌가 많은 일상일수록 평온의 미의식이 필요하다. 계절에 비유하면 적막한 겨울의 기운에 닮았다. 왕카이(2013)는 <소요유, 장자의 미학>에서 평온은 사람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하는 ‘재계(齋戒)’를 통해 감관을 완전히 막고 영혼과 외물의 관계를 끊는 장자의 ‘좌망(坐忘)’과 통한다고 하였다. ‘대종사’에서 장자는 안회와 공자의 대화를 통해 ‘좌망’을 다룬다.

 

안회가 답했다. “팔다리와 몸을 늘어뜨리고 눈과 귀의 작용을 물리치고, 육체를 잊고 지식을 내버리고 대통(大通), 완전한 소통의 세계와 같아지는 것을 좌망이라고 합니다. (출처 : 안병주·전호근, <장자>1, 전통문화연구회, 2003, p.310)

 

고요하고 잔잔하여 원림에 머물게 하니 원림은 모성의 온화가 있다. 편안하고 친근하여 포용하는 여백이 있다. 친근하다는 것은 깊이가 있어 조용히 안으로 파고든다. 그리하여 내면의 아름다움을 높인다. 한국의 반가사유상이나 석굴암 본존불처럼 깨달은 자의 미소와 포용의 인자하고 친근한 마음의 표현이 ‘평온’의 미적 범주의 특질이다.

원림에서의 평온은 그윽한 관조가 주는 심미의식이다. 집착이나 불화의 소모적 감정을 해소한다. 안정된 심리 상태를 안겨준다. 원림에서의 소요유는 평온의 미적 체험이다. 원림의 소요유를 통하여 정신적 자유를 실현한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사가집(四佳集)에 수록된 「가산기(假山記)」에는 성임(成任, 1421~1484)의 뜰에 만든 석가산 기법을 통하여 그윽하고 고요한 평온의 미적 범주를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농암집(農巖集)> ‘청청각기(淸淸閣記)’에 수록된 경기 포천에 조영된 청청각(淸淸閣)도 맑은 못이 고요하고 시원하여 평온의 미를 소화시킬만한 규모이다. ‘부지암기(不知菴記)’에는,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이 자리 잡아 사는 곳으로 남쪽 깊은 골짜기에 ‘부지암(不知庵)’을 조성하였는데, 산첩첩 물첩첩 에워싸여 깊은 골짜기의 흐르는 물소리에 세속을 재울 수 있는 평온의 심미의식을 만날 수 있다.

박윤묵(朴允墨, 1771~1849)의 <존재집(存齋集)> ‘유일섭원기(遊日涉園記)’에 수록된 서울 인왕산에 조영된 일섭원(日涉園)은 인왕산의 뾰족한 풍광 일대에서 그윽함과 고요함이 돋보여 평온의 미적 범주에 들만한 원림조영이었다 한다.

 

원림으로 며칠 째 내리는 가을비의 풍광

노쇠한 화강암의 골격을 비집고 빗물이 흐른다. 실낱 갔다가 엄지였다가 팔뚝 굵기로 흐른다. 큰 암석투성이의 여름철 장마 계곡처럼 계류를 이룬다. 흐르다 낮은 샛길로 새어나간다. 그럼 다시금 실낱 갔다가 엄지였다가 팔뚝 굵기를 되찾는다. 비의 무게에 늘어져 오솔길로 휘청 늘어진 나뭇가지의 비호 아래 작은 물웅덩이가 반짝거린다. 길로 떠올라 짓밟혔던 나무들의 뿌리는 새 옷을 입은 듯 환하다. 교목의 임연부 근처 오솔길에서 우산은 물폭탄을 맞듯이 쿵쾅댄다. 지난 해 우수 지난 원림의 봄 풍광에서도 평온의 심미의식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연둣빛 버드나무의 평온 체험(2022.3.29) / 생강나무 꽃의 평온 체험(2022.3.18)
연둣빛 버드나무의 평온 체험(2022.3.29) / 생강나무 꽃의 평온 체험(2022.3.18)

 

 

실컷 뛰놀다 - 임천한흥.170 / 온형근

 

우수 흐르면서 속얼음 헤어지는 소리로

호수는 저수의 본성에 한층 더 파묻히더니

경칩에서야 잔잔해져 흰뺨검둥오리

군데군데 무리 짓거나 혹은 외따로

파장의 메아리로 물살을 저어가는 평온

 

​아침 햇살 지극하여 눈부신 틈을 타서

은빛 반짝이는 댕기흰죽지가 한꺼번에 난다.

마음껏 뛰논다는 광경이란 저렇듯

군더더기 없이 천진난만하여 시원한데

 

헤엄치고 도약하고 비행하는 큰 동작도

도화지에 그려진 크레파스 그림처럼

오랜만에 담아보는 마음껏 뛰논다는 것

어쩌면 저리 곱고 평온할까.

-(2022.03.06.)

 

원림에서의 평온의 심미의식은 고요하고 그윽한 관조에서 체험된다. 가을 지난 겨울의 적막함과 닮았지만 지난봄 호수의 속얼음이 쩡쩡 갈라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평온의 미적 체험이 가능하였다. 겨우내 고요하였던 침묵을 조용히 움직여 나가며 물살의 파장만으로도 평온의 심미의식은 다가온다. 어찌 그리도 햇살이 눈부신지, 흰뺨검둥오리나 댕기흰죽지가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실컷 뛰놀던’ 어린 시절의 그 ‘실컷’의 풍광이 참으로 평온하다. ‘마음에 하고 싶은 대로 한껏’하는 행위가 ‘실컷’이니, 내적 충만의 온화함이 깃들어 있다. 한껏 부풀어 오르는 호숫가 버드나무의 연둣빛만 보아도 미소와 포용의 친근한 마음으로 편안한 것처럼.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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