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근 박사
박대근 박사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확대되면서 안전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사람이 편안함을 추구하면서 생긴 일들이 온실가스 증가로 이어지고,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으로 진화한 후 부메랑이 되어 사람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불안을 떨치기 위한 후속 대책은 진지한 성찰이 아닌 땜질식 처방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수십 년에 걸쳐 지속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사람이 불편을 감수하며 살아간다면 좀 더 안전한 환경이 만들어 질 수 있을까? 속단할 수는 없지만, 목표를 분명히 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인 협력과 노력을 기울인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지난 8월 서울의 집중호우로 많은 재산 및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예방을 위한 가장 강력한 대책은 엄청난 예산이 수반되는 대심도 빗물터널이다. 큰돈이 들더라도 시민들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반론은 크지 않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든다. 강남이 개발되지 않았더라도 이렇게 큰 홍수가 발생했을까? 개발이 되지 않았다는 말은 우리가 걸어 다니는 땅이 인공지반이 아닌 자연지반이라는 말과 흡사하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과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산이나 논, 그리고 밭 등이 있는 상태라는 말이다. 급속한 도시화, 인구증가로 인한 개발행위는 피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인공지반(불투수)에 생태적 기능과 자연순환기능을 부여할 수는 있다. 이러한 영역을 담당하는 중요한 용어가 ‘생태면적률’이다.

생태면적률은 환경부에서 적용대상 및 산정기준을 정하고 있다(환경영향평가서등 작성 등에 관한 규정). 먼저, 적용대상을 살펴보면 가장 먼저 보이는 항목이 ‘도시의 개발’이다. 이미 개발된 도시에는 적용이 안 된다는 의미이다. 나머지 대상(산업단지 조성, 관광단지 개발 등)도 이미 개발된 도심지를 생태적 기능이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개발행위가 수반되는 신규 사업에만 생태면적률이 적용된다면, 이미 개발이 완료되었거나 진행중인 도심지는 영원히 인공지반과 함께 살아야 한다. 개발이 완료되다시피 한 도심지에 생태면적률을 적용할 수 있도록 환경부 공무원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에 도심지 인프라와 시설을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와는 피할 수 없는 갈등이 생길 것이다. 이 갈등이라는 불편함을 견디고 이겨내야 도심지 피부가 숨을 쉬고, 생태적으로 살아날 수 있게 된다. 빗물도 머금고 필요시 다시 꺼내다 쓸 수 있게 말이다.

말이 나온 김에 생태면적률 산정기준도 살펴보자. 여러 가지 유형 중에서 인공지반을 자연지반으로 바꿀 수 있는 유형은 인공지반녹지(옥상녹화 등)와 투수포장이 전부다. 인공지반녹지는 건축물 옥상을 대상으로 하기에 이를 제외하면 남는 건 투수포장 뿐이다. 투수포장은 빗물을 땅속 깊은 곳으로 침투시키는 포장공법이다. 얼핏 쉬워 보일 것 같지만, 특별한 기술과 공법이 필요한데, 이미 투수포장과 관련된 많은 재료와 기술이 보급되어 있으며 기술진화도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우리는 현재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고 있기에 기술은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요가 적어 공급 또한 적을 뿐이다. 작은 시장규모에서는 기술혁신을 꾀하기 어렵다.

기술혁신 다음으로 필요한 항목은 ‘불편’ 극복이다. 포장은 주로 도로(보도+차도), 공원, 광장 등에 설치된다. 빗물을 땅속으로 집어넣어야 지구가 건강해진다는 데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지만, 유독 토목 기술자, 도로 기술자들은 반대를 한다. 도로는 빗물을 신속히 하수구로 배제해야 할 대상이지 품어야 할 시설이 아니라며, 도로에 빗물이 들어가면 침하가 발생하여 큰 일이 난다고 손사래를 친다. 도로의 땅꺼짐(함몰)은 오히려 땅속 지하수가 유실되거나, 노후 하수관로 틈새로 세어나온 물로 인한 세굴이 주요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도로 하부로 빗물이 침투하여 지하수 함양을 촉진시키게 되면 지반은 오히려 더 견고하게 되어 안전한 상태가 된다. 다만 투수포장 설치시 일반적인 불투수 포장보다 신경 써야 할 항목이 많은 건 사실이다. 전통적인 포장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관계 공무원이 귀찮아하고,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고 반대하게 된다. 이러한 불편함을 감내하고 극복해야만 기후변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

서울시는 2014년에 ‘서울특별시 빗물관리에 관한 조례’를 전부개정하여 전국 최초로 ‘물순환 회복 및 저영향개발 기본조례’를 만들었다. 이 조례에는 빗물과 관련된 내용들이 새롭게 신설되었는데, 빗물관리시설(투수 포장 등 빗물침투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것은 매우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 중 ‘보도’와 ‘8m 이하의 도로’의 신설 및 전폭 보수시 투수포장을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으며, 각각 2015년과 2017년부터 시행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시행일로부터 보도는 8년, 8m 이하의 도로는 6년차에 접어 들었다. 하지만 현재 서울시 보도의 투수포장 비율은 약 10%이며, 8m 이하 도로는 거의 제로이다. 2016년 서울시 도로통계현황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보도면적은 9.9 k㎡, 12m 미만의 차도면적은 34 k㎡ 로 이 둘을 합하면 44 k㎡ 가 된다. 서울시 전체면적(605 k㎡) 중에서 7.3%를 차지하며, 산림을 제외한 도심지 면적만 계산할 경우에는 10~20%로 커진다. 서울시 전체 면적에서 산림을 제외한 상태에서 불투수율을 계산해 보면 거의 80~90% 에 근접한다고 한다. 도심지 대부분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도와 8m 이하의 도로만 투수포장으로 바꿔도 많은 빗물을 땅속으로 넣을 수 있으며, 집중호우시 수많은 골목길 도로가 물길이 되어 큰 도로를 하천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앙을 조금이나마 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다.

8년 전 애써 만들어 놓은 조례를 현실에 맞게 바꾸거나 이행여부를 조사하여 독려를 하는 등의 적절한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불편을 감내할 공무원 및 전문가들의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요즘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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