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호 조경감리분과위원장 ⓒ한국조경신문DB
유재호 조경감리분과위원장 ⓒ한국조경신문DB

모 발주청에서 다급한 연락이 왔다. 조경분야 감리용역(건설사업관리용역)을 발주했는데 응찰자가 없어서 계속 유찰이 된다는 것이다. 조경분야 감리(건설사업관리기술인)의 나이가 너무 많거나 업무능력이 부족하다는 친분 있는 발주청 직원의 하소연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배치될 현장이 없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보라를 무릅쓰고 국토교통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기억이 있다.

조경감리가 갑자기 부족해진 이유가 무엇일까 무척 궁금했다. 발주청은 알아볼 방법이 없고 설사 알아본다 해도 상담에 응한 업체가 진솔한 대답을 할 리도 없다. 한국조경협회 감리분과위원회에서 봉사한지 6년 차다. 그 동안 노력은 했다고 자부하지만 이뤄낸 성과도 없고 칭찬을 받을 만한 일도 없다. 그래도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최소한 정확한 팩트라도 찾아서 응답해 주어야 할 사명은 있다고 생각했다.

모 발주처에서 올해 초부터 몇 건의 조경공사 감리용역을 발주했다. 여기서 말하는 조경공사 감리용역이란 조경분야 감리가 단장(책임건설사업관리기술인)으로 임명되어 다른 분야 기술자를 총괄하며 건설사업관리 과업을 완수하는 용역을 의미한다. 그러나 응찰자가 없어 몇 번의 유찰과정을 되풀이 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코로나로 인한 고용악화 이후 급작스런 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 등의 전 세계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인력 고용 공급부족 현상으로 봐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오랜 기간 지속된 고용 기피현상과 비정규직화에 따른 구조적인 인력수급 불안 문제에서 기인된 것일까? 나는 후자의 결과가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 협회는 오랫동안 공동주택 건설공사 조경감리제도 개선을 위해 싸우고 있다. 현행 1500세대 이상에만 조경감리를 배치하도록 규정되어 있는 공동주택 감리자 지정기준을 「건진법」 기준에 준하는 300세대 이상으로 기준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광주광역시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사고에서 알 수 있듯이 주택법 감리발주와 이에 대한 관리는 건진법의 그것보다 느슨하고 법적 기준이 타이트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2018년의 조경감리 제도개선을 위한 협회서명운동, 2019년 국토교통부 면담, 2019년 조경지원센터의 심도 깊은 보고서, 2020년 공동주택 감리자 지정기준 개정시 조경감리 배치기준 강화 요청, 2021년 국토교통부 앞 1인 시위와 기술인협회 간담회 등 조경관련 단체의 끈임 없는 노력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주무부서인 국토교통부 주택건설공급과는 감리업체의 경영난을 이유로 조경계의 간절한 요청을 외면해왔다.

2022년에는 국토교통위원회 국회의원에 대한 호소문 발송운동을 하였다. 우편으로 두 번 이메일로는 세 번 그리고 보좌관들과 일일이 전화통화를 하였다. 광주 아이파크 붕괴사고로 인해 주택법 감리제도를 개선할 때 끼워 넣지 않으면 조경감리 제도개선은 물 건너 갈지도 모른다는 다급함과 안타까움이 있었다. 마치 외진 시골길 마지막 버스를 향해 뛰어가는 마음이었다. 결국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니어서 힘들 것 같다는 보좌관과의 대화에서 다시 한 번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국토부의 국민신문고 답변은 더 가관이다.

▶「주택건설공사 감리비 지급기준」에 따라 산출된 감리인·월수 내 조경감리원을 배치할 경우에는 추가 비용이 발생되지 않으나, 건축·토목·설비 분야 감리인·월수를 대체하여 조경감리원이 배치되는 경우 주요공종 감리원 인·월수 감소로 건설공사의 품질 및 안전에 대한 관리가 저하될 우려가 있습니다.

조경감리 배치기간으로 산출된 기간에 조경감리를 배치해 달라는 요청에 무엇을 위해 누구를 대체하여 배치했다는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오히려 조경감리를 배치하게 되면 공동주택 건설공사의 품질 및 안전에 대한 관리가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게 도대체 무슨 논리인가?

▶소규모 단지의 조경공사는 난이도가 낮아 높은 수준의 조경 학문·지식 없이도 토목 감리원이 충분히 수행이 가능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현행 1500세대 이상은 대단지 공사로 판단하고 조경감리 배치를 명문화 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1499세대 이하는 소규모 단지로 판단했다는 의미인데 판단 근거가 모호하다. 모법인 건설기술진흥법에 의하면 300세대 이하의 단지의 경우 소규모 단지로 판단하여 책임감리 대상에서 제외하지만 소규모 건축이나 토목공사를 조경공사로 발주하는 사례는 없다.

▶후반기 토목공사 기간에 포함되어 있는 조경감리 업무를 토목감리원이 수행함으로서 발생하는 업무공백은 미비할 것으로 판단되며, 소규모 공사의 감리원 투입인원은 4~5명 수준인 바 조경 감리원 배치는 비효율적일 것으로 사료됨을 알려드립니다.

토목감리는 조경교육을 받지 않는다. 이런 논리라면 현행 조경관련 각종 제도뿐만 아니라 조경학과도 필요 없으며 각 발주청의 조경부서를 모두 토목부서로 통합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파트의 주요 토목시설 설치공사가 완료된 시점부터는 조경공사의 비중이 훨씬 높다. 부대토목은 조경기술자도 감리가 가능하며 그에 필요한 기술교육도 받는다.

조경감리의 부족을 논하다가 옆길로 너무 빠졌다. 그렇다면 조경감리 용역에 투찰하지 않는 대형 감리회사(종합엔지니어링업체)의 이유는 무엇일까? 자랑은 아니지만 근무하는 현장에 따라 이리저리 회사를 옮기다 보니 몇 명의 발주영업 담당들과 연락이 닿았다. 회사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조경감리 보유 인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한 번에 2~3명을 투입해야 하는데 당장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제대로 대우를 해주고 고용을 하면 된다. 수요가 불안정 하니까 상시 고용을 기피하게 되고 결국 현장 계약직(특정 현장만 고용했다가 현장이 끝나면 자동퇴사하는 계약직)으로만 버티려니까 조경감리가 없는 것이다.

두 번째, 다른 분야 감리용역에 비해 용역금액이 적다는 것이다. 대형 토목공사보다 공사기간이 짧으니 당연히 용역금액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규모가 작은 토목공사 감리용역은 없을까? 그래서 최근 발주된 비슷한 규모의 감리용역을 비교해 본 결과 인·월당 용역비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 점에 대해 다시 이야기 해보니 중요한 속내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규모가 작은 토목감리 용역에는 대기하고 있는 토목감리를 급여만이라도 건질 수 있게 투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류의 토목감리 용역은 적격심사 기준이 낮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급여가 적고 열악한 지역의 용역사들이 투찰해서 수행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조경감리는 대형 감리회사들만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규모가 작은 용역에는 투찰을 기피하는 담합 아닌 담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회사의 요구사항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조경감리용역 내 조경감리 배치를 줄이고 토목감리를 배치하면 투찰하겠다고 한다. 조경감리가 상대해야 할 실체는 바로 자신들이 몸담은 회사였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결국 남는 토목감리가 많으니 토목감리로 대체하면 되는 것인가?

근본적인 사유는 결국 조경감리 발주물량의 지속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거리가 없는데 사람을 고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갑자기 조경감리용역이 쏟아져 나온들 투입할 기술자가 없으니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업무능력이나 기술자격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회사의 정규직과 계약직은 복지혜택 차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소속감의 차이가 다르다.

앞으로도 국토부 주택건설공급과에 300세대 이상 공동주택 조경공사에 조경감리를 배치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보고 계신 발주청 분들께 조경감리용역을 지속적으로 발주해 달라고 호소한다. 마지막으로 많은 조경기술자들이 망설이지 말고 조경감리분야에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한다. 특히 젊은 기술자들의 많은 도전과 지원을 바란다. 조경감리라는 직업이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직업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앞으로 당분간 조경감리가 부족하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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