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서울역사박물관이 2021년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사업 결과로 ‘노량진, 삶의 환승지대 도시화의 전이지대’ 보고서를 발간했다고 20일(월) 밝혔다.

오늘날 노량진은 전국을 대표하는 공무원 학원가와 고시촌, 수도권 최대 수산물 도매시장인 노량진수산시장, 개항기 최초의 철도역이자 지하철 1‧9호선 환승 노량진역, 컵밥거리 등 다면적 성격을 형성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이러한 노량진의 다면적 성격이 언제, 어떻게 형성됐으며, 현재 어떤 변화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지를 살펴봤다.

노량진은 조선시대 이래 도진촌락(渡津村落)으로서 도성을 오가는 사람과 물자가 지나는 길목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까지만 하더라도 한강 이남에 위치한 노량진은 서울에 속하지 못하고, 서울(경성)에 땔감을 파는 공급처에 지나지 않았다.

20세기 들어 한강철교(1900)와 한강인도교(1917, 한강대교)가 놓이면서 노량진의 나루터 기능은 상실됐지만 1936년 경성부에 편입된 노량진은 철도와 전차가 지나며 서울과 인천, 강북과 강남을 잇는 도시화의 전이지대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보고서에는 정조가 노들강 기슭에 세운 월파정의 변천사도 나온다. 조선 중기 이래 장유(張維, 1587~1638)의 별서로 명성이 높았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재벌 아라이 하치타로(荒井初太郎)가 이 일대 땅을 소유하며 양식 별장으로 신축, 해방이후에는 사교장, 정치인 별장으로 이용돼 오다 최근 소유권이 일반인에게 양도됐다.

“월파정이 정조가 뱃놀이했던 곳인데, 지금이라도 잘 보존해야 해요. 안 그러면 나중에 흔적으로만 남고 사라질 거예요. 월파정 있던 자리에 수백 년 된 나무가 그대로 있어요. 거기서 옛날 사람들이 달 보고 용산과 마포를 왔다 갔다 하면서 시를 쓴 것 도 많아요. 요즘 사람들이 거기가 강이었다는 걸 누가 알겠어요? ” 박소강(1950년생, 노량진 토박이) 인터뷰 중

노량진은 해방 이후에는 서울의 확장과 노량진 도시기반시설이 지역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상수원 등의 시설 증가로 노량진수원지의 확장과 한강변 도로, 수원지 주변의 여러 입체 교차로의 모습은 서울의 급속한 팽창이 만들어 낸 도시 경관의 대표적 사례다. 1960년대 후반 한강변 도로 건설이 상습 침수에 대비해 제방 역할을 하며 한강변에 택지가 조성, 노량진수산시장이 건립됐다.

그밖에 도시학원 이전계획과 함께 탄생한 노량진 학원가 탄생 배경 및 변화과정 등이 기술돼 있다.

‘노량진, 삶의 환승지대 도시화의 전이지대’ 보고서는 서울역사박물관 누리집에서 열람할 수 있다. 구입은 서울책방에서 할 수 있다.

가격은 2만5000원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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