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형근 박사
온형근 박사

 

‘열린원림문화’ 향유는 우아한 거닐기

새벽 일찍 어둠이 채 가시기 전 원림에 다가설 때가 있다. 아뿔싸! 벌써 내려오는 사람을 본다. 이런 기시감은 처음이 아니다. 나는 이를 불가사의라고 일컫는다. 새벽에만 생기지 않는다. 밤늦게 내가 마지막 야간 산행이라 여기고 올라서는데 부스럭 하산의 인기척을 만나면서 급하게 ‘아! 이건 정말...’라면서 혼자 중얼대는 방언. 이때의 언어는 외계어였을 것이다.

 

동틀 무렵 – 임천한흥.178 / 온형근

 

임천으로 어둑한 발걸음 헛디디지 않아

방금 터져 나오는 잎새에 형광처럼 번지는

반짝반짝 교질의 끈적임 닮은

청딱따구리 저음의 육성

동틀 무렵

 

꽃은 환하게 주변 잎새 빛내고

참새 부리를 닮았거나 오리 발바닥

세웠거나 고개 숙인

세상의 흔한 날갯짓 닮아가는 새순

 

잎새의 기운으로 꽃 피는 산벚나무는

사람의 온도에 뜨거웠다가 시들었구나.

 

동트는 새벽 원림을 거닐자니

동이 튼다는 말은

항아리를 깨며 터져 나오는 눈부심 같아

어둡던 씨간장의 묵은 감칠맛

-2022.4.12

 

누구에게나 어둑한 시간은 필요하다. 새벽을 기다리는 오롯한 시공간이 주어진다. 그 오롯함을 몸소 겪는 일은 희미하고 매우 까마득하다. 심오하고 유장한 느낌을 통째로 체득한다. 사람의 움직임 부산해지는 한 해의 시작이 벚꽃놀이의 붐빔이라면, 위의 시 「통틀 무렵 – 임천한흥.178」은 그 열기도 식은 시점이다. 도심의 왕벚나무 꽃이 시들할 때면 임천에서는 미미하게 피어오르는 산벚나무가 진가를 발휘한다. 잎보다 먼저 꽃이 피어 처음부터 환한 왕벚나무와 다르다. 잎새와 함께 피면서 순순한 빛을 내며 꽃이 나오는 산벚나무야말로 ‘한국정원문화’에 어울린다. 은은한 눈부심이다. 청딱따구리의 울음소리도 교질의 끈적임으로 산벚나무 환한 꽃과 어울려 묵직한 빛을 쏜다. 함께 동트는 광경을 이뤄내느라 놀랍다.

급경사로 허리 숙여 한참을 올라간 원로분지(元老盆地)는 이미 부산스럽다. 사방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미명인 상태이다. 가까이 스치듯 지나치면서 보는 원로분지의 행태는 다양하다. 다리를 뒤로 번갈아 찢는 이, 원형 돌림판에서 허리로 축을 삼아 엉덩이를 돌리는 이, 쪼그려 의자에 앉아 두 발로 차고 끌어당기면서 종아리를 다스리는 이, 저 어둔 숲에 기대어 훌라후프(hula hoop)를 돌린다. 빈자리가 없다.

 

루틴(Routine)화된 원림의 관행

행위의 시간은 이르고 늦다는 차이가 있다. 저마다의 몸 푸는 패턴은 주어진 시공간에서 창안하여 훈습된다. 습관이 매우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굳건해진 행동으로 나타나면 관행이 된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최상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하는 일련의 행동이나 절차를 ‘루틴(Routine)’이라 한다. 원림에서 창안된 우아한 거닐기도 ‘루틴’으로 자리 잡는다.

 

조원동 원림의 '원로 분지'(2022.01.03, 좌측), 금쇄동 원림의 '휘수정' 영역(2020.11.15)
조원동 원림의 '원로 분지'(2022.01.03, 좌측), 금쇄동 원림의 '휘수정' 영역(2020.11.15)

 

관찰과 사색으로 ‘열린원림문화’ 향유에 맡겨진 거닐기의 ‘루틴’은 어떠한가. 어둑하다가 환해지는 원림의 순간을 즐긴다. 짧은 찰나에 세상이 환하다. 득도의 각성처럼 시원하다. 미지의 깨달음을 새롭게 눈 뜨듯 수시로 체험한다. 내게 주어진 ‘루틴’의 나날을 꾸준하게 이어간다. ‘열린원림문화’의 향유는 다종다양한 독창에 기댄 사람들의 ‘루틴의 힘’으로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시전된다.

 

자연에 깃든 거닐기의 품격

고산 원림에서도 윤선도의 나날은 루틴화되었다. 외형적 정형율인 형태 구성의 문법(Shape Grammar)을 지녔다. 윤선도는 잘 짜여진 ‘형태 문법’을 통해서 내재적 자유로운 시경(詩境)을 열어 놓는다. 그런 다음 거닐기의 품격에 기대어 시창작이라는 심미의식을 구가하였다. 이 모든 것이 윤선도의 루틴화된 원림 소요에서 비롯된 ‘우아한 거닐기’인 ‘미음완보(微吟緩步)’에서 비롯되었다. 여러 번 논의하였듯이 고산의 원림 경영은 거점공간이 중심이 되어 비롯된다. 거점공간을 구축하여 넓은 원림 공간을 ‘내 것’으로 사유화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한다. 활동, 기능, 효과, 관심 따위가 미치는 일정한 범위인 영역(領域)은 시간이 지나면서 공간의 장소성을 공고하게 매긴다. 그러면서 원림 문화를 이루며 영지가 되는 수순에 든다.

‘한국정원문화’에서 거닐기의 품격이 돋보이는 고산의 ‘금쇄동 원림’을 톺아본다. 윤선도는 <금쇄동기>에서 무릉도원을 숨겨 놓고, 누설하지 않는 ‘비밀의 정원(Secret Garden)을 거닐기의 품격으로 삼아 안목을 끌어올렸다.

길고 희게 늘어진 물줄기가 바위의 북쪽을 돌아 굴러서 또 동쪽으로 아래 병풍의 위에 떨어지는데, 일단 떨어진 뒤에는 쌓인 돌의 밑바닥으로 스며들어 폭포에는 미치지 못하니 물이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물이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 까닭에 골짜기가 있는지를 더욱 알지 못하니, 이는 조물(造物)이 신령한 지경(地境)을 깊숙이 숨겨서 무릉도원(武陵桃源)의 봄빛을 누설하지 않고자 함이리라.

-<금쇄동기>, <고산유고> 제5권 하, 한국고전종합DB

금쇄동 원림의 경물 중 휘수정과 지일 영역을 표상한 내용이다. 바위와 계류가 만들어 낸 수석의 풍경을 시니피에(Signified)로 삼아 서술하였다. 물줄기가 돌아 굴러 떨어지면서 바위 밑으로 스미니 폭포에 물이 없다. 물이 없으니 골짜기도 없다. 이 얼마나 교묘한 자연의 한 수인가. 계류의 전락(轉落)을 비밀리에 숨겨 놓은 의경으로 내세운 것이다. 자주 거닐며 관찰과 사색으로 신선의 지경을 깊숙이 숨겨 무릉도원으로 삼았다. 결코 이곳 무릉도원의 봄빛은 발설하지 않겠다는 거닐기의 의지를 표상한다. 금쇄동 원림조영은 거닐기의 품격에 대한 사유의 지평을 한껏 끌어올린 전례라 할 수 있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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