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근 박사
박대근 박사

우리나라에서 경부고속도로가 의미하는 상징성, 역사성, 중요성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만약 서울로 범위를 좁힌다면 어떤 도로가 가장 높은 위상을 차지할까? 필자만의 생각일지 몰라도 조선 시대 육조거리였던 세종대로가 아닐까 싶다. 이곳은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광화문 광장의 주변 도로로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변화의 흐름을 함께 한 장소이기도 하다. 한동안 세월호 희생자들의 천막과 정권 교체의 촉매가 된 천만 시민의 촛불시위 등 광화문 광장에서 벌어지는 행위에 집중될 때도 있었다. 그 당시 필자의 시선은 쉼 없이 세종대로의 바닥을 살피고 있었다. 그때 보았던 세종대로 도로포장의 숨은 진실을 기술자의 시각에서 재조명하고자 한다.

2009년 기존에 아스팔트 포장이었던 세종대로에 ‘돌 포장’이 설치되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상징적인 이유가 있다. 기존 도로를 차량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꾸고자 하는 의지와 전통적인 육조거리를 재현하여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국가적 상징 거리를 조성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또한 광화문 광장 포장재료(돌)와의 통일성과 연속성을 고려한 결과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의미와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세종대로 돌 포장은 2년도 지나지 않아 처참하게 파손되기 시작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50m 도로구간을 보수하는데 들어간 비용만 24억 원이었다. 유지보수는 그 후로도 계속되다가 2020년 11월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시작하면서 종료되었다. 광장 서쪽 도로는 광장으로 확장하여 도로기능을 없애고, 동쪽인 주한 미국대사관 앞 도로를 편도 5차로에서 양방향 7∼9차로로 확장하여, 2022년 7월에 공사를 마칠 예정이라고 한다. 계속 유지관리가 필요했던 돌 포장은 구간은 이미 아스팔트 포장 도로로 바뀐지 오래다.

세종대로 포장에 어떤 문제가 있었던 걸까? 첫째, 돌의 모양과 크기 문제다. 광화문 광장 주변 세종대로는 버스 등 중차량이 하루에 적게는 1,200대에서 많게는 3,400대가 다니는 도로다. 이 정도 통행량이라면 유럽에서는 절대 돌 포장을 적용할 수 없는 도로로 분류된다. 돌 포장을 적용할 수 있는 경우 중 가장 극한 조건이 최대 중차량 통과량 400대 이하이며, 필요한 돌의 두께는 최소 150㎜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다. 게다가 마치 사람의 송곳니처럼 아래가 뾰족한 형태를 띠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차도에서 흔히 사용하는 포장용 돌은 사괴석으로 두께 100㎜의 단순한 정육면체 또는 직육면체 모양이다. 이 돌이 하루 최대 3,400대의 중차량이 지나다니는 세종대로에 설치된 것이다. 유럽의 골목길 수준에도 못 미치는 두께와 형태로 말이다.

두 번째 문제는 ‘빨리빨리 문화’에서 비롯되었다. 광화문 돌 포장은 강성공법으로 설계되었다. 강성공법은 연성공법과 달리 돌 포장 아래에 붙임 모르타르 층을 반드시 포설해야 한다. 붙임) 모르타르는 말 그대로 하부의 기층과 상부의 돌 포장을 붙여 하나의 물체처럼 거동시키기 위하여 현장에서 모르타르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다. 모르타르는 시멘트와 모래를 물로 섞어서 갠 것이다. 반면 물 없이 시멘트와 모래만 섞은 것을 사모래(현장용어, 표준용어 없음)라 하는데, 우리나라 돌 포장 시공현장에서는 거의 모르타르 대신 사모래를 사용하고 있다. 사모래를 깐 후 바가지나 물뿌리개를 사용하여 물을 대충 부어서 시공하는 것이다. 사모래 위에 아무렇게나 대충 부은 물이 시멘트와 모래에 잘 섞여 단단하게 굳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속임수를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는다.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는 것이다. 문제를 지적하더라도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쟁점화되지 않는다. 정말 대안이 없는 걸까? 모르타르 대신 사모래를 사용하는 이유는 뭘까? 앞의 물음에 대한 답은 ‘모르타르를 쓰면 된다’이고, 그 다음 물음의 답은 ‘빨리 시공하기 위해서’다. 모르타르를 포설한 후 이어지는 공정은 돌을 올려놓는 일인데, 굳기 직전까지 일정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혹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빨리 굳는 성질을 가진 시멘트를 사용할 수도 있다. 기다리는 시간과 빨리 굳는 시멘트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돈이다. 굳기를 기다리는 시간만큼 인건비가 추가로 들어가며, 빨리 굳는 시멘트는 보통 시멘트보다 매우 비싸다. 사모래에 물을 부린 후 돌을 올려놓는 포장은 강성시공도 연성시공도 아니다. 외국 어느 나라에서도 표준화된 공법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은 족보 없는 공법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문제는 지리적 특수성과 기관별 이해관계에서 기인한다. 세종대로는 청와대에서 출발하는 차량이 가장 먼저 진입하게 되는 대로이다. 필연적으로 대통령의 주요 동선이 될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이런 이유로 세종대로 돌 포장 설계 당시 서울시와 청와대 관련자가 면담을 진행하였는데, 청와대에서는 설계 원안대로 차도를 돌 포장으로 하되 주행 시 아스팔트 도로와 유사한 쾌적성을 확보할 것을 요구했다. 경찰청의 요구사항도 있었다. 설계 당시인 2008년은 공교롭게도 광우병 관련 촛불시위가 광화문 주변에서 격렬하게 발생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세종대로 도로포장 공사를 시행하기 위해 서울시는 경찰청으로부터 교통규제심의를 받아야 했다. 심의 결과, 경찰청에서는 차량의 운행과 관련하여 돌 포장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점(속도 저하, 미끄럼 등)을 통보하였는데, 특이한 사항이 하나 있었다. 포장재로 사용되는 돌이 시위용품으로 이용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차단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청와대와 경찰청의 요구사항은 바로 설계변경으로 이어졌다. 당초 모서리가 둥글둥글한 사괴석으로 설계되었던 돌은 승차감 개선을 위해 네모반듯한 직사각형 화강석으로 변경되었다. 돌의 투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돌과 돌 사이 공간을 채우는 재료까지 모래에서 모르타르로 변경되었다. 기술적 검토보다 청와대와 경찰청의 요구사항을 우선시 한 잘못된 행정 사례가 되고 말았다. 돌 포장을 설치하는 목적은 차량의 속도를 줄여 보행인의 안전을 지켜주고 차량 운전자에게 불편한 승차감을 인위적으로 유발해 보행자와 차량이 적절히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운전자의 쾌적함보다 역사성, 전통성, 경관성 등 주변 환경과의 조화로움을 유지하는데 있다.

기관별 견해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요구조건은 우선 기술적으로 검토되었어야 했다. 수용하지 못할 부분이 있으면 ‘아니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기술자라 할 수 있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족보에도 없는 돌 포장이 아닌, 역사성을 과감히 포기한 아스팔트 포장으로 가는 것이 최악을 피하는 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돌 포장에 관한 심도 있는 성찰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며, 최소한 그만큼의 실력은 키웠다는 점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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