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남 박사
김광남 박사

도시뿐만 아니라 농산어촌의 경관은 그 지역다움을 상징, 유지하고 내부 고객의 정서와 심리적 안정감을 줄 뿐만 아니라 외부 고객을 끌어당겨 지역 발전을 도모하는 기제로 작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관련 법령과 제도, 현장에서는 경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농어촌기본법(농어업ㆍ농어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제44조(농어촌의 자연환경·수산자원·어장환경 및 경관 보전)는 농어촌의 자연환경과 수산자원·어장을 보전하고 농어촌경관, 해안의 형성·보전·관리 및 농어업 생태계 보전 등에 필요한 정책을 세우고 시행하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삶의질법(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산어촌 지역 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법)」 제30조(마을 단위 경관보전협약)는 시·도지사나 시장·군수·구청장은 주변 경관을 고려한 주택의 형태 및 색채 정비 등 경관 보전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관할구역에서 마을 단위로 농어촌 주민과 경관보전협약을 체결하고 협약의 목표·이행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사항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해 협약을 체결한 마을에 대하여는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편, 윤상호 등은 일찍이 <해안지역의 경관관리 방안 연구(KMI, 2003)>에서 우리 어촌의 경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해안지역은 풍부한 해양자원, 수려한 자연경관, 다양한 관광명소, 어촌·어항 고유의 정취가 남아있어 해양관광 수요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천혜의 입지 여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해안지역에 대한 관광수요가 증대하면서 각종 개발과 정비사업 등으로 해안지형과 배후구릉지가 훼손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해안지역은 그 주변의 자연적·경관적 가치에 비교하여 어항시설과 같은 콘크리트 위주의 인공구조물이 대표경관을 형성하고 따라서 지역적인 정체성(Local Identity)을 부각시킬 수 있는 특징적인 경관이 없어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면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어촌경관은 과연 이런 법령 규정이나 연구 결과에 따라 나아지거나 문제가 개선, 극복되었을까? 인공 요소 측면의 경관은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부조화하게 조성되었지만, 자연경관과 생활경관은 그렇지 못하다. 문재인 정부 어촌뉴딜사업의 근거가 된 「어촌·어항법」 제4장의2(어촌ㆍ어항재생)에서도 어촌의 삶의 질, 관광 등에 장기적으로 근본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경관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 「어촌·어항법」에서 조차 계획 및 사업의 내용에서 경관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으며, 전체적으로 오로지 어촌·어항의 정비, 개발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어촌뉴딜사업은 ‘가기 쉬운 어촌, 찾고 싶은 어촌, 활력 넘치는 어촌’이라는 목표로 낙후된 어촌어항을 현대화하고 어촌의 성장 잠재력이 있는 자원을 특화 개발함으로써 어촌의 활력을 높이려는 사업이다. 그런데 ‘찾고 싶은 어촌’이 과연 이러한 물리적 시설 중심의 사업에 집중한다고 이루어질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는 연안의 바다 생태계와 무분별한 개발, 물리적 시설 위주의 사업으로 인해 오히려 어촌다움이 사라지고 있다는 실태에 대해서는 여러 조사보고서와 연구에서도 이를 지적하고 있다.

AURI(건축공간연구원)는 그동안 <농어촌 경관관리체계 개선을 위한 정책방향 연구(2012)>, <국토경관 향상을 위한 농촌 경관관리체계 개선 연구(2016)> 등 몇 개의 선행 연구에서 어촌경관에 대해 문제와 개선방안을 다루고 있다. 한편, AURI는 「어촌어항법」 제42조의6에 따라 어촌·어항재생사업 추진지원단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소위 선도지역에 대한 기본계획수립을 책임 관리하였다. 그런데 기본계획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동안 이들이 연구하고 제안했던 어촌경관에 관한 내용조차 거의 반영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AURI가 관리한 2021년 어촌뉴딜 선도지역 중 하나인 태안 ‘황도항 어촌뉴딜사업기본계획’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경관과 관련된 내용은 사인물 설치(1억 원), 마을야간경관 특화사업 3억 원 등 단 두 가지에 그치고 있다. 그 내용도 시설물의 설치여서 어촌뉴딜사업에서 자연, 생태경관이 철저하게 외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선도지역인 속초 ‘초곡항어촌뉴딜기본계획’에서도 마을골목길 경관개선 1.12억 원, 황영조기념공원 경관개선 12.4억 원 둘뿐이며 문체부, 산림청 등이 시행하는 38억 원에 이르는 연계사업도 경관이란 이름이 붙긴 했지만, 시설물을 만들고 길을 내는 개발사업 위주라는 점이다.

어촌뉴딜사업은 2024년에 종료되는 한시적 사업이다. 비단 경관 홀대뿐만 아니라 출발부터 선정방식, 기본계획수립기간, 사업기간, 사업내용 등에서 끊임없이 적정성 논란이 제기돼왔다. 어촌뉴딜사업은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서는 농촌형 지역개발사업 버전을 빌린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이란 이름으로 시행된다. 해수부는 기존 어촌뉴딜사업 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던 사업지 선정-기본계획 수립-사업시행 전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들을 정확히 진단, 평가하고 이러한 결과가 제대로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몇 십 년이 지나도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하고 오히려 어촌다움을 훼손하고 있는 어촌의 경관과 생태환경에 관한 관심과 배려가 ‘어촌신활력증진사업’에는 제대로 반영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어촌에서 경관과 생태환경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주민의 쾌적한 생활과 심리 안정에 직접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어업과 관광산업에도 절대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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