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형근 박사
온형근 박사

 

진달래는 힘겨운 찬란함의 내재율을 지녔다.

춘분 지나 청명이 가깝다(2022.04.02.). 이곳 원림은 진달래 활짝 피느라 분주하다. 꽃 자체는 얼마나 화려한지 모른다. 곳곳에서 군계일학이다. 그러다 다시 주변과 함께 둘러보면 단아하다. 청초하다. 검소한 것인가 싶다가 아하 저것이로구나 소박함! 아무리 추워도 향을 팔지 않는다는 매화가 진한 향내로 압도하는 가운데 숲에서 띄엄띄엄 진달래 들어섰다.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가주’의 꽃이 진달래이다. 주변 숲은 아직 겨울 풍경으로 칙칙하여 아무리 진달래가 눈부셔도 청딱따구리는 그게 아니라고 노래한다. 잿빛 숲에서 진달래는 잠시 등촉 하나 밝히는 소박한 풍경이다. 소박의 근거가 되는 내재율은 ‘힘겨운 찬란함’이다. 진달래 풍경 채집은 소박을 일깨운다.

 

진달래 풍경을 채집하다 – 임천한흥.177 / 온형근

 

기쁜 소리로 다가오는 열음정 근처

호수로 묵직한 산줄기 하나 풍덩

깎아지른 울퉁불퉁 오래된 절벽으로

추야대에서 호안정을 이으면서 벼랑마다

진달래 풍경을 채집한다.

 

너는 무심한 듯 치명적인 백치미로

호안을 내려다보면서 꽃잎 열어

금방이라도 재즈 선율 터져 나올 나팔을

바람에 이리저리 좌고우면하며

단전으로 끌어올려 불어댄다.

 

이미 잠휴정, 봄비에 씻긴 폭포

긴 여운 울리며 쏟아지는데, 진달래 피어

너는 화려한 듯 검소하여 막 피어났고

겨울 잿빛 깨우며 햇살을 이고 번져들어

한나절 원림의 풍경이 되면 그만이라며

송간세로가 진달래 고갯길로 내달린다.

-2022.04.02

 

풍경은 끊임없이 흐른다. 채집하고 또 채집하더라도 넘친다. 단연 진달래 풍경의 채집은 이 계절의 압도적 ‘열린원림문화’의 향유이다. 원림의 열음정(悅音亭), 기쁜 소리를 들려주는 정자에서는 멀리 형제봉과 광교산이 두루 펼쳐진다. 열음정이 자리한 산줄기는 울퉁불퉁 남성의 근육질을 자랑하며 호수로 내리꽂는다. 열음정 지나 추야대(秋野臺), 가을 낙엽 이후에야 호수 건너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곳과 좌우 호수가 가장 편안하게 툭 터지며 보이는 호안정(湖安亭)으로 이어지는 벼랑마다 진달래 풍경을 채집하기에 바쁘다. 무심한 듯 백치미로 호수 쪽을 향해 벌어진 진달래 꽃잎은 나팔을 닮았다. 눈부신 햇살 연하게 일렁이는 물살을 악보 삼아 저음의 음률로 묵직한 재즈를 연주한다. 잠휴정(暫休亭), 잠시 쉴 수 있는 정자까지 진달래는 소박하여 힘겨운 찬란함을 잃지 않는다. 폭포 소리는 다발성 생각의 폭주를 가라앉히고 고요한 집중에 들게 한다. 송간세로(松間細路), 소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조차 진달래 고갯길에 가려 눈에 띄지 않는다. 진달래는 그렇다. 겨울 잿빛 원림을 어루만지면서 소박한 채색으로 번지는 옅은 수채화이다. 이제 청명 지나 곡우로 이어지면서 온갖 나무의 새순은 튀어나와 푸른 잎으로 싱그러워질 것을 예고한다.

 

한국정원문화에서 「소박」이라는 심미의식이 지닌 가치

한국정원문화의 심미의식에서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게 있다면 그건 ‘소박’의 미학이다. 소박만큼 표상하기 어려운 미적 요소는 드물다. 꾸밈없고 거짓이 없는 순수함의 표상이다. 뽐내지 않으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자연의 속내용이다. 불쾌함이나 꾸밈이 없는 자연미를 언표하면서 미적 쾌감을 되돌려준다. 소박은 위선과 꾸밈에서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고, 근원을 향해 다가서는 힘을 키우는 미적 범주이다.

아호가 ‘정원에 물을 주다’의 뜻인 관원(灌園) 박계현(朴啓賢, 1524~1580)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의 독락당(獨樂堂) 앞의 계정(溪亭)을 자계십육영(紫溪十六詠)에서 소 박의 시경으로 묘사하였다.

 

소박한 정자가 시냇가에 서 있으니 / 朴素溪亭壓水頭

십년 동안 계획하였던 하나의 토구라네 / 十年心計一菟裘

그 당시 직접 심은 솔과 대나무는 / 當時手種松兼竹

풍상을 이겨낸 지 몇 년이나 되었나 / 戰勝風霜閱幾秋

<계정溪亭>

 

 

계곡물에 걸쳐 정자가 놓여 있는 계정은 독락당의 중요거점 경관이다. 관원은 회재 선생을 그리며 옥산마을의 열여섯 풍경을 읊었다. 그중 일곱 번째가 계정이라는 시이다. 정자의 소박함을 시경의 맨 처음에 표상한 동시대 인물의 심미의식을 공유할 수 있다. 계정은 독락당의 후원이다. 정자의 앞과 뒤로는 소나무와 대나무를 심었는데, 모두 회재 선생께서 직접 손수 심었다는 것이다. 소박한 정자이지만 10년이나 마음먹고 계획하였던 원림이라는 것이다. ‘토구(菟裘)’는 벼슬을 내놓고 은거하는 곳이나 노후에 여생을 보내는 곳을 말한다. 돌이켜 보건데 세월은 지났지만 회재 선생의 소박하고 질박한 성품을 그대로 여실하게 느낀다. 이른바 ‘풍경의 품성’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원림을 누린다는 것은 벗삼아 귀 기울일 줄 안다는 것

거문고 소리를 들어주던 친구가 죽자 연주를 멈췄다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의 고사가 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지음(知音)’이라고 한다. 원림을 누린다는 것은 자연을 벗으로 삼아 지음이 되는 일이다. 자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것은 큰 행복과 통하는 일이다. 높은 산을 연주하면 태산과 같다 하고 흐르는 물을 연주하면 출렁출렁하는 것이 장강이나 황하 같다고 한다. 장맛비의 곡조라고 산이 무너지는 소리라고 한다. 원림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마음을 열어두는 일이다. 원림은 계절마다 절기마다 모습을 달리하며 곳곳의 경관을 바꾼다. 언뜻 보면 무심한 듯 표정이 없지만, 지음이 되면 세세한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는 청음 능력이 높아진다.

진달래꽃 하나만으로도 이곳 원림은 홍조를 띤 채 분주하다. 예고되는 바 녹음방초(綠陰芳草), 우거진 나무와 아름다운 풀꽃들이 전개된다. 봄의 원림을 노래한 조선 초 정극인(丁克仁, 1401~1481)의 상춘곡(賞春曲)에서 녹음방초는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몇 칸 초가를 푸른 시내 앞에 지어 놓고 / 數間茅屋을 碧溪水앏픠두고

송죽이 우거진 속에 풍월 주인 되었도다/ 松竹鬱鬱裏예 風月主人되여셔라

엊그제 겨울 지나 새 봄이 돌아오니 / 엊그제겨을지나 새봄이도라오니

복사꽃 살구꽃은 석양 속에 피어 있고 / 桃花杏花 夕陽裏예퓌여잇고

푸른 버들 꽃다운 풀은 가랑비에 푸르도다 / 綠楊芳草 細雨中에프르도다

-정극인, 상춘곡의 일부, 한국고전번역원, 김홍영 역, 1998

 

몇 칸 안되는 소박한 초가를 맑고 푸른 계곡물 앞에 짓고 소나무와 대나무 우거진 곳에 거점 공간을 마련하여 원림 생활을 즐기는 봄 풍경이다. 겨울 지나 새봄이 오니 온갖 꽃이 피어나고 녹음방초는 가랑비에 더욱 푸른 원림으로 나아간다. 도래할 지어라, 녹음방초의 ‘열린원림문화’를 즐길 지어라. 온갖 새들이 교태를 부릴 것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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